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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얼마만한 존재일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엄마는 모두였습니다.
#피재현 시인은 그 엄마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렸습니다.
이름 없이 한 평생을 산 엄마의 이름을...
그 엄마의 이름은 『원더우먼 윤채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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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바람처럼 / 피재현
아주 잠깐 사이 풍을 맞아
말씀이 어눌해진 엄마를 병실에 눕혀 놓고
수발드는 봄날
나물국에 밥 말아 먹은 엄마는
입가에 이팝꽃처럼 붙은 밥알도 떼어 내기 전에
약을 찾고
혈압약, 뇌경색약, 우울증약
인사돌, 영양제, 변비약까지 한 손바닥
가득 쌓인 약 알갱이
두 번에 나눠 삼킨다
내가 빨리 죽어야 니가 고생을 않을 텐데
말로만 그러고 죽을까 봐 겁나서
꽃잎 삼키듯 약을 삼킨다
병실 창밖 한티재에는 산살구꽃도 지고
마구마구 신록이 돋아나는데
엄마가 오래오래 살면 어쩌나
봄꽃 지듯 덜컥 죽으면 어쩌나
내 마음이 꼭 봄바람처럼
지 맘대로 분다
* 입원 / 피재현
우리 엄마를 잘 부탁해요
키는 작지만 한때 사람 키만 한 우엉 뿌리를
쑥쑥 뽑아 올렸어요
내 참 기가 막혔거든요
지심 뽑느라 손마디가 휘고 더덕 같지만
우리 마을에서는 칼국수의 달인으로 통했어요
그 일정한 두께며 칼질이라니
지금은 몹쓸 병에 걸렸어요
약을 안 먹으면 손을 떨어요 이빨도 다 빠지고
무릎 연골을 갈고 귀도 점점 어두워지네요
간호사님들 우리 엄마를 잘 부탁해요
반말을 해도 좋아요 소리를 질러도 좋아요
그러나 엄마 팔에 주삿바늘을 꽂을 때는
소아과에서처럼 친절하게 엄마를 얼러 주세요
회진을 돌 때는 엄마처럼 작은 키가 되어서
엄마의 눈을 들여다봐 주세요
그러면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수줍게 웃을 테고
앞니 없이 웃을 때의 그 귀여움이라니
우리 엄마를 잘 부탁해요 간호사님들
* 소반에 콩 고르듯이 / 피재현
엄마 옆 침상의 할머니는 엄마보다 열 살이
많아서 올해 아흔한 살이고
엄마의 병동에서 오 년 차 왕고참이다
어제도 오늘처럼 가을비가 내렸고
앞방 할배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데
엄마가 꼭 죽은 어매 같다는 왕고참 할머니는
재밌다는 듯 껄껄 웃으면서 어제 죽은
영감 이야기를 시작했다
둘 내외가 같이 들어왔는데요
치매 걸린 할망구를 그 영감이 때때로
들여다보고는 죽을상이 되어서는 제 방으로
가곤 했는데요
한 며칠 안 보이더니 어제 죽었어요
좀 덜 바쁠 때 죽지, 꼭 명절 앞두고 바쁠 때
많이들 죽어요
여기는요
소반에 콩 고르듯이 사람이 죽어 나가요
저 보소 저 할망구
지 서방 죽은 줄도 모르고 뭐가 좋아서
또 춤을 추네요
소반에 올라앉은 콩처럼
여섯 할망구가 들어앉은 요양병원 병실에서
나는 모두들 실한 콩이 되어 오래오래
소반 위에 앉아 계시라고
두유 한 통씩을 돌리고는 엄마 자리로 돌아와
엄마는 아직 실한 콩인가 한참 들여다보았다
* 별이 빛나는 감나무 아래에서 / 피재현
아버지는 가을이 깊어지면 감 따러 오라고
성화를 부렸다
나는 감 따는 게 싫어 짜증을 냈다
내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 아느냐고
감 따위 따서 뭐 하냐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다시 가을이 왔을 때
엄마는 내게 말했다
니 애비도 없는데 저 감은 따서 뭐 하냐
나는 별이 빛나는 감나무 아래에서
톱을 내려놓고 오래도록 울었다
* 포옹 / 피재현
누가 나를 좀 안아 줘
나와 같은 체온이
내 밖에
또 있다는 것을
알려 줘
* 빈혈 / 피재현
울고 나면 속이 시원해진 적 있었지요
아부지 죽고 한 열흘 지나 새벽에 일어나
엉엉 울었지요 아내 몰래 뒷방으로 가서
퍼질러 앉아 울고 나니 말갛게 해가 떴지요
어느 해 여름에는 파도치는 바닷가
빈혈로 노래진 등대를 붙잡고 펑펑 울었지요
그날은 하루 종일 울어서 해거름에는
나도 슬쩍 빈혈이 왔었지요
모과꽃 한창일 때 엄마 죽고 검은등뻐꾸기는
새벽마다 곡을 하는데 눈물이 안 나요
빨리 울어야 할 텐데 그래야 엄마도 날
용서할 텐데 그 많던 눈물은 다 어디로 갔을까
모과는 그사이 젖살이 올라
제법 대추 알만큼 컸는데 눈물이 안 나요
엄마랑 문지방에 나란히 앉아 먹던
쑥떡 생각 자꾸 나서 목만 막히고 눈물이 안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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