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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소개

『나무의 시------------간』

by 정가네요 2020. 12. 22.

『나무의 시------------간』

 

아주 재밌는 책을 읽었습니다.

낮에 커피를 많이 마신 탓에 쉬 잠이 오지 않아

새벽 4시까지 단숨에 읽은 책입니다.

 

강원도 홍천 내촌목공소에서

목재 컨설팅 및 강연을 해 온 저자는

40여 년 동안 목재 딜러로 일했다고 합니다.

북미, 유럽, 파푸아뉴기니까지 그의 나무 여정은

무려 400만 Km였다고 하네요.

지구를 100바퀴 돌 거리라고 합니다.

 

나무와 함께한 오랜 경험은 말할 것도 없고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나무와 사람, 과학과 역사,

예술이 어우러진 깊고 넓은 나무 이야기가 가득하여

한번 잡은 책을 덮을 수가 없었습니다.

놀랍도록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수두룩합니다.

 

* (목차)

가로수길은 프랑스에서 시작됐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마차

자작나무는 어둠 속에 빛나고

셰익스피어의 뽕나무

동백의 여인들

크리스마스트리는 구상나무

보리수 오해

명차 속에 나무가 있다

악기를 만들 때

하이로켓 목재 건축

와인의 나무들

합판도 예술이다

감 먹는 나태한 녀석들

활엽수는 단단하고, 침엽수는 무르고

참나무는 없다

홍송이 잣나무입니다

대통령의 의자

박경리 선생의 느티나무 좌탁

에르메스의 사과나무 가구

안도 다다오는 왜 나무를 심는가

민둥산에 심은 나무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은 이유

빈티지 가구의 나무

포름알데히드 하우스

귀주 이야기

일본의 삼나무와 편백나무

세상에서 가장 비싼 나무

링컨의 통나무집

반 고흐의 여름 나무

소설의 나무들

나무는 겨울에 제대로 보인다

테네시의 느린 왈츠

목수를 부르는 이름

 

*

어느 것 하나 재밌지 않은 글이 없습니다.

저의 어설픈 독후감보다는 책 속의 글 두어 개를 소개하는 게

훨씬 더 나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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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다. 지리산은 깊기도 하지. 산길은 끝이 없고, 감 익는 산골 마을 빛깔은 화려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다. 시인 박재삼도 이 풍경에 배를 채웠을까. 멀리 그의 마을을 지난다. 감이 온 하늘을 채우니 골짜기 까치도 여유로운 날갯짓이다. 청도, 상주 등 경상도 북쪽에만 감나무가 있는 줄 알았는데 섬진강 가에도, 남도의 강진 영랑 생가 길에도 감이 열려 있었다. 더 당황했던 것은 일본에도 중국에도 곳곳에 감나무가 있었던 것. 심지어 이스라엘에도 ‘샤론 프루트’라는 다디단 감이 있었다. 자고로 곶감은 손 시린 겨울밤에 우리네 할머니들이 숨겨둔 광에서 나오고, 정다운 호랑이는 그 곶감 하나에 물러가지 않았던가. 그런데 호랑이 전설 없는 세상에도 감과 곶감이 널려 있었다. - 감 먹는 나태한 녀석들

 

문학관 해설자의 배려로 선생님 생전의 공간에 들어갔다. 이층 슬래브 집 현관을 들어서 만나는 오른쪽 넓은 방이 글을 쓰던 곳이며 선생의 침실이었다. 느티나무 교자상이 있었다. 다가가 보니 느티나무 원목으로 짜 맞춘 교자상!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다시 살폈다. 다리는 굳건했고 상의 판면은 세월을 보여주며 터지고 벌어진 데가 많았다. 원목 가구다. 원주 옛집에서 1980년부터 18년간 살며 이 교자상에서 글을 쓰셨다고 한다. <토지> 3, 4부를 낳은 낮은 테이블. 선생의 안경, 만년필, 국어사전이 놓여 있었다. 보고 또 살폈다. 느티나무 원목 교자상을 처음 보았다. 기성품 교자상이 아니라 선생께서 맞춘 집필용 테이블이 분명했다.

선생은 경상남도 통영 출신이다. <김약국의 딸들>에 등장하는 간난의 가족사가 펼쳐지는 통영이란 포구. 통영은 시인 유치환, 유치진, 김춘수, 또 작곡가 윤이상의 고향이다. 이뿐인가. 화가 전혁림, 조각가 심문섭까지. 북녘 사람 백석이 몽매에 그렸던 통영 처녀 천이가 살던 곳이다. 양반은 통영 갓을 써야 했고, 안방마님은 통영 자개농을 들였다. 아무리 세월이 운명을 뒤엎었기로, 통영 사람들은 문학과 예술을 안고 살아온 이들이다. 작은 지방의 소도시 통영에서 배출한 예인들만 열거해도 한국 현대 예술사가 충만할 정도다. 나는 취향의 표현이 모든 시대의 예술이라 생각한다. 박경리 선생의 모습은 그의 느티나무 책상에서, 그 방을 돌아 나오며 눈에 뜨이던 원목 맞춤 책장에서, 직접 지휘하셨다는 손주 물놀이 공간과 돌담을 쌓은 데서 어른거리고 있었다. - 박경리 선생의 느티나무 좌탁

 

한 가지 일을 보며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말로 “나뭇잎 하나 떨어지니 천지에 가을이 온 것을 안다”는 표현이 있다. 이 ‘일엽지추’라는 말은 중국의 고서 <회남자>와 당시에도 자주 등장하며, 한자 문화권에서 익숙한 표현이다. 이 나뭇잎이 오동나무 잎이다. 가을 오고 바람이 불면 떨어지는 잎이야 많겠지만, 오동나무 잎이 오롯이 이 서정을 차지한다. 우리 가요 중에 “오동잎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가을밤에”라는 노래가 있었고, 옛날 홍콩 영화 <스잔나>의 바람에 날리는 낙엽도 오동잎이다. 중국에서는 가을 낙엽을 가리켜 그저 ‘오동잎 한 잎’이라고도 한다.

가을 낙엽처럼, 2018년 늦가을에 쓸쓸한 소식이 전해졌다. 국민 배우 신성일이 유명을 달리한 것. 같은 해 2월, 영화 <스잔나>에서 『마지막 떨어진 오동잎』이란 노래를 직접 불렀던 주연 배우 리칭이 홍콩 자택에서 고독하게 운명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의 배우 신성일과 홍콩의 뮤즈 리칭은 1970년대 영화 <리칭의 여선생>에 남녀 주인공으로 함께 출연한 적도 있었다. 긴 세월 동안 뭇 아시아인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던 두 스타가 오동잎 떨어지듯 별이 되었다. -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는 이유

 

*

글쓴이는 무척 감상적입니다.

그러면서도 한 마디로 말해 모르는 게 없습니다.

나무에 대한 고급 지식이 가득합니다.

 

전국 1,500만 평의 산림에

50년 동안 나무를 심어온 SK그룹 최종현 회장의 어록을 보고

저도 작가처럼 가슴이 서늘해졌습니다.

“오지에 나무를 심어라. 그래야 오래간다”

우리나라는 산림 보유 비율 세계 4위의 나라가 되고

우리는 푸르고 푸른 국토 안에 살고 있습니다.

참 좋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