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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소개

『살아 보니 그런 대로 괜찮다』

by 정가네요 2021. 1. 5.

*

사는 게 재미없으신가요?

요즘은 웃을 일도 별로 없지요?

160쪽밖에 안 되는 얄팍한 책 한 권 소개합니다.

한 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천천히 새겨 읽으면 두 시간이구요.

『살아 보니 그런 대로 괜찮다』

 

교사인 #홍정욱 작가가

시골에 살고 계신 어머니의 말씀을 묶은 겁니다.

여든다섯 어머니의 말씀 곳곳에

촌철살인의 인생철학이 숨어 있습니다.

 

읽으면서 혼자 제 무릎을 치기도 하고

바보같이 빙그레 웃기도 했습니다.

사는 거 그거 별거 아닙니다.

허허 웃고 사세요!

--------

 

(홍정욱)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문득 끝없이 너른 들판을 건너온 사람의 말인 듯하다가,

또 어떤 날에는 높은 산에서

아래를 멀겋게 내려다보며 던지는 말 같습니다.

감히 말하자면 삶의 껍질 하나를 벗어 버린 듯합니다.

 

어머니는 종종,

“내가 글을 알아서 살아온 이야기를 쓴다면,

아무리 빽빽하게 쓰고, 매매 짜매도

베개 몇 개 쌓은 높이는 될 끼다.“라고 하십니다.

정말 어머니의 이야기는 한여름의 바깥마당처럼 풍성합니다.

수십 년 전의 사람들이 뚝뚝 걸어 나오기도 하고,

풀꽃의 아슴한 향기가 올올이 풍기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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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수

 

뜨신 물은 잘 나와요?

전기세 아깝다 생각 말고 보일러 틀어요.

 

그라고 있다. 그걸 아껴서 뭐 하겠노.

 

말만 그러지 말고 추우면 꼭 트시오.

 

그란다. 근데 나이가 든께 씻기도 싫다.

 

글쵸. 그럼 매일 씻지 말고 사나흘에 한 번만 씻으시오.

 

그래도 사람이 그라몬 되는가.

 

볼 사람도 없는데 뭐 어때요.

 

남 보라고 씻는가?

머리 감으면 모자는 털어서 쓰고 싶고,

목욕하면 헌 옷 입기 싫은 기 사람 마음이다.

그기 얼마나 가겠노만은 날마다 새 날로 살라꼬

아침마다 낯도 씻고 그런 거 아이가.

안 그러면 내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낯을 왜 만날 씻겠노?

 

 

* 제 길

 

요새 아아들은 똑똑하고 말도 잘 듣제?

 

흐흐. 아아들이야 언제나 그렇지요 뭐.

 

니는 아아들이 말 안 들어도 넘 아아들을 니 맘대로 할라고 하지 마라이.

 

내 맘대로 안 하요. 그게 내 맘대로 되는 일도 아니고요.

 

내 말 함 들어봐라. 나도 들은 이야기다만.

 

무슨 이야기를 하실라꼬?

 

예전에 책만 펴면 조불고* 깨면 항칠** 하는 아아가 있더란다.

선생이 불러내서 궁디를 때리고 벌을 안 세웠겠나.

그 아아가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자세히 보니 손꾸락으로 눈물을 찍어서 그림을 그리더란다.

산도 그리고, 새도 그리고.

 

요새도 그런 아아들이 있소. 벌 세우기도 겁나요.

 

그래서 선생이 썽이 나서 멀캤단다.

에라이 망할 넘아. 니는 그림이나 그리서 묵고 살아라!

그카니, 세상에!

그 아아가 울음을 뚝 그치고 헤죽 웃음서, 예! 카더란다.

 

흐흐. 그래서 아아는 우찌 됐는고요?

 

그건 내사 모르지.

모르긴 해도 글로 벌어먹고 살았겠나?

꿩 새끼 제 길 간다고, 제 길이 다 있는 긴데.

 

그게 뭔 말이오?

 

모르는 것도 많다.

꿩 새끼를 데려다 닭장에서 키워 봐라.

틈만 나면 산으로 내빼지.

그게 닭장에서 살겠나? 죽지.

본디부터 다른 넘인데.

(조불고*:졸고. 항칠**:낙서)

 

 

* 세상에

 

세상에! 짐승을 키아도 저라는 기 아이라.

마른 물꼬 밑에 올챙이처럼 몰아넣어서 총총 심은 듯이 키우는데,

우째 병이 안 나겄노?

 

그런 걸 뭐 하러 보요?

 

안 볼라 해도 절로 눈이 가는 걸 우짜노?

아무리 솔아도* 사람은 기지개 켤 만큼,

닭은 헤비고 보금자리 칠 만큼,

소는 뿔박기 할 만큼은 있어야 살 수 있을 긴데

아무리 짐승이라 캐도 옴다시도** 못하게 저리 총총 키우는데

우째 병이 안 나겠노?

 

그러게요.

 

요새 사람들은 마음이 비좁아서 짐승도 저리 비좁게 키우는 기라.

 

마음이 비좁아요?

 

저러는 사람 맘이 정상이가?

 

허 참.

 

그라다가 병이 났다고 산 놈을 포대에 넣어서 묻어.

평생 한 번도 날아 보지 못한 닭들이 퍼덕거려서

포대가 불룩불룩 하는데도 그대로 묻어 삐리.

소나 돼지는 안 끌리 갈라꼬 뻗대고 똥오줌을 지리는데,

아이구 무시라.

짐승이라도 한 새미서 나는 물을 먹으면 정이 드는 긴데.

 

그만 하소.

 

시상에 키아던 소나 돼지를.

차라리 죽여서나 묻든지.

그 주먹만 한 눈이 꿈뻑꿈뻑 하는 걸 빤히 봄서

땅에 묻고도 잠이 오까?

아이고 무시라!

(솔아도*:좁아도. 옴다시**:꼼짝할 만큼의 작은 움직임)

 

 

* 쓸데없는 게 어딨어

 

니는 넘의 아아들한테 씰데없는 넘,

이런 소리 함부로 하지 마라이.

 

그 말 않고 살기 어렵소.

 

세상에 씰데없는 말은 있어도 씰데없는 사람은 없는 기다.

하매.* 나뭇가지를 봐라.

곧은 건 괭이자루, 휘어진 건 톱자루, 갈라진 건 멍에,

벌어진 건 지게, 약한 건 빗자루, 곧은 건 울타리로 쓴다.

나무도 큰 넘이 있고 작은 넘이 있는 것이나,

여문 넘이나 무른 기 다 이유가 있는 기다.

 

그래도 쓸데없는 사람은 있소.

 

아이다. 니 눈에 그리 보여도 안 그렇다.

사람도 한가지다. 생각해 봐라.

다 글로 잘나면 농사는 누가 짓고, 변소는 누가 푸노?

밥 하는 놈 있고 묵는 놈 있듯이,

말 잘 하는 놈 있고 힘 잘 쓰는 놈 있고,

헛간 짓는 사람 있고 큰 집 짓는 사람 다 따로 있고,

돼지 잡는 사람, 장사 지낼 때 앞소리 하는 사람

다 있어야 하는 기다.

하나라도 없어 봐라. 그 동네가 잘 되겠나.

 

요새 세상은 그런 사람 없어도 잘만 돌아가요.

 

내사 잘 모르지만 사람 사는 기 별 다르지 않다.

지 눈에 안 찬다고 괄시하는 기 아이라.

내사 살아 보니 짜다라 잘난 넘 없고,

못 볼 듯 못난 넘도 없더라.

(하매*:하물며)

-------

 

너무 많이 소개하면 읽을 게 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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