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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소개

발로 뛰며 쓴 미국 자본주의 고발장 / 파멸의 시대 저항의 시대

by 정가네요 2013. 12. 24.

 

<펌>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05960.html - 등록 : 2013.10.06

 

 

미국에서 제일 가난하고 위험한 도시 중 하나로 꼽히는 뉴저지주 캠던의 뒷골목 풍경이다. 이 지역은 주민의 90%가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 제공

인간이든 자연이든 쓰고 버린다
기자와 만화가가 2년간 전국 돌며
무너진 하층민 생존 현장 기록
“저항 행동만이 변혁 싹 틔울 것”

 

 

파멸의 시대 저항의 시대
크리스 헤지스·조 사코 지음
한상연 옮김/씨앗을 뿌리는 사람·2만원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한때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미국만 가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일종의 ‘믿음’과도 같은 말이었다. 물론 그 믿음이, 비록 일부지만 실현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도 이젠 버틸 재간이 없다. 거대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횡행하며 미국이 거대한 수렁으로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나라, 미국(美國)은 더 이상 그 어떤 꿈도 실현시켜주지 않는다.

 

 

<파멸의 시대 저항의 시대>는 절대다수의 삶을 황폐화시키는 미국의 기업 자본주의를, 처절히 파괴된 하층민들의 생존 현장을 통해 고발하는 책이다. 책 서두에서 지은이는 ‘미국의 실상’을 고스란히 까발린다. 최고 수준의 빈곤율과 최고 격차의 소득 불평등 등 ‘최고’가 있는가 하면 어린이 행복지수와 사회적 약자 지원 예산, 평균 유급휴가 일수 등은 ‘최저’다. 눈을 의심하게 하는 ‘참상’도 여럿 있다. 세계 최고의 유아 사망률, 최고 수준의 의료 서비스 소외 비율, 최저 수준의 중고등학생 수학 성취도 등이 그것이다. 원인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간과 자연을 이용하고 폐기해 버리는 고삐 풀린 시장경제, 즉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 때문이다. 특히 기업 자본주의는 아메리카 원주민이나 흑인을 도심의 내부 식민지에 가두었고, 황폐한 탄전에 내팽개쳤으며, 생산 현장에서 농노처럼 살아가게 만들었다.

 

 

세계의 테러리즘 취재팀 일원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던 지은이 크리스 헤지스와 코믹 저널리즘의 선구자로 이 책의 만화를 그린 조 사코는 2년 동안 철저히 발로 뛰어 미국의 참상을 그려낸다. 책 중간중간에 가난의 숨결이 느껴질 듯한 풍경화와 하층민들의 육성을 담은 만화가 강렬하게 자리잡고 있는 독특한 구성이다. 사우스다코타주의 파인리지에서 만난 인디언들의 삶은 무너질 대로 무너졌다. 인디언 보호구역에서는 주류 판매가 금지되어 있지만, 파인리지의 알코올 중독률은 80%에 달한다. 실업률이 미국 최악 수준이다 보니 전체 인구의 48%가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산다. 미국 평균과 비교할 때 유아사망률은 5배가 넘고, 10대 자살률은 평균 자살률 대비 159%다. 문제는 인디언들의 피폐한 삶이 단지 현재의 경제위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청교도에 의해 뉴잉글랜드 인디언 공동체와 신앙 체계가 침략을 당한 그때부터, 즉 미국의 시작과 더불어 배태된 일이다.

 

 

흑인과 유색인종의 삶도 인디언들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때 미국에서 손꼽히는 공업 중심지였던 뉴저지주의 캠던은 이제 “제조하고 생산하는 게 하나도 없”는 죽은 도시다. 수많은 기업들이 “저임금 노동자와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아도 되는 노동자를 찾아 캠던을 비롯한 미국 전역에서 생산 시설을 챙겨 해외로 떠”났기 때문이다. 그곳에 남겨진 것은 대부분 히스패닉계나 흑인들로 “자급자족적 공동체의 도시 기능이 완전히 말살”된 그곳에서 90% 이상이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산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만 남은 자리는 곧바로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변했다. 카운티 당국이 매일 2만2천톤을 정화할 수 있는 하수처리장을 세웠고, 대규모 쓰레기소각시설, 교도소, 대형 시멘트공장 등이 곧 들어설 예정이다. 지은이는 “단기 이윤을 추구하며 단물만 쏙 빼먹고 그 찌꺼기와 환경 재앙만을 남겨놓을 때 무수한 미국인이 내몰릴 막다른 처지”라며 미국 기업 자본주의를 질타한다.

 

 

웨스트버지니아주 웰치는 기업 자본주의가 환경 파괴의 주범임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오랜 세월 탄광촌을 형성해 나름의 공동체를 유지하던 웰치는 1950년대 채광 작업이 기계화되고, 석유가 석탄을 대신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거대한 기계들이 파헤친 애팔래치아 산맥은 등뼈를 드러냈고, 방치된 시설들은 곧바로 환경오염으로 이어졌다. 석탄 채광으로, 다시 환경오염으로 이어진 재난은 웰치 주민들의 몸에 진폐증 등 각종 병으로 각인되었다. 그런가 하면 플로리다주 이모칼리 사례를 통해 불법 이주노동자들의 칼끝을 걷는 듯한 위태로운 삶을 포착한다. 노예 아닌 노예의 삶, 그것이 불법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이다.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11년 9월 뉴욕 주코티 공원에서 시작된 월가 점령 운동처럼 “대중 저항”을 시작하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저항 운동의 현장에는 백인들이 유독 많았다는 사실이다. 백인들도 이제는 기업 자본주의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비록 “우리 살아 생전에는 전면적인 변혁이 일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해도 “우리가 저항 행동에 나선다면 변혁이 일어날 가능성의 싹을 틔울 수 있다”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파멸의 시대 저항의 시대>는 미국 기업 자본주의의 폐해를 고발하면서 행간으로는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인간의 생명보다 화폐 가치를 우위에 두는 것을 거부”하고 “인간의 생명, 아니 모든 생명은 신성하다고 인정”하자는 지은이의 바람이 우리 모두의 바람이 되기를 기대한다.

 

 

- 장동석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