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정답은 아무도 모를 것이고 처음부터 아예 정답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내가 살고 싶은 대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사는 게’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아포리아)’를 읽었습니다.
그의 생각 또한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개인적, 정치적 호불호(好不好)를 떠나 순수 글쟁이가 되었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뻔했던 그의 얘기에 한번쯤 귀 기울여 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내용을 추렸습니다.
---------------------
나는 열정이 있는 삶을 원하다, 마음이 설레는 일을 하고 싶다. 자유롭게, 그리고 떳떳하게 살고 싶다. 인생이라는 짧은 여행의 마지막 여정까지, 그렇게 철이 덜 난 그대로 걸어가고 싶다. 내 삶에 단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싶다. 그렇게 사는 게 나다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내가 좋다. 자유로움과 열정, 설렘과 기쁨이 없다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열등감은 삶의 기쁨을 갉아먹는 부정적인 감정 중에서도 단연 고약한 것이다. 열등감에 깊이 빠지면 자기 자신을 비천한 존재로 느끼게 된다. 그래서는 기쁜 삶을 살지 못한다. 기쁘지 않은 삶은 훌륭하기 어렵다.
세상에는 오르지 못할 나무가 너무나 많다. 곳곳에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 서 있다. 도전하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도 어리석지만, 오르지 못할 나무와 넘을 수 없는 벽에 매달려 인생을 소모하는 것 역시 어리석다. 모든 나무와 모든 벽을 오르고 넘어서야 행복한 삶, 성공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삶은 욕망과 규범의 충돌이라는 말에도 나는 공감한다. 나는 주로 규범의 세계에 살면서 남들한테 욕을 먹지 않을 만큼만 욕망의 세계를 넘나들었다. ...... 욕망을 억압하면서 규범을 따르는 일이 참기 어려울 만큼 어색하고 불편하고 고통스럽게 느껴진다면 욕망을 표출할 수 있는 문을 더 넓게 열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규범은 자기 자신이 기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따르면 된다.
자유의지는 자신이 자기 삶의 주인임을 인식하면서 원하는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그 삶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밀고나가는 정신의 태도와 능력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철학자 밀의 말처럼,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어디 사는 것만 그렇겠는가. 죽는 것 역시 자기 방식대로 죽는 것이 바람직하다.
‘폐 끼치지 말고 살자.’ 이것이 내 죄우명이다. 남들에게, 사회에 폐를 끼치지 않고 살려면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착한 사람,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지만 기본은 ‘쓸모 있는 사람’이다.
열정과 재능의 불일치는 회피하기 어려운 삶의 부조리이다. 재능이 있는 일에 열정을 느끼면 제일 좋다. 그러나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이기만 하다면, 재능이 조금 부족해도 되는 만큼 하면서 살면 된다. 경쟁은 전쟁이 아니다. 져도 죽지는 않는다. 이겨서 꼭 행복한 것도 아니다. 사람은 저마다 가진 것으로 인생을 산다. 가진 것이 많다고 꼭 행복한 건 아니다. 적게 가져도 행복할 수 있다. 끝없는 경쟁 속에 살아야 하지만, 즐기면서 경쟁에 임하면 이겨도 이기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생 해도 즐거울 것 같은 일을 찾는 것이다. 사회의 평판이나 부모님의 기대에 맞추어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자유의지를 버리면 삶의 존엄성도 잃어버린다. 스스로 설계한 삶이 아니면 행복할 수 없다.
인생의 성공은 멀리 있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그것을 남들만큼 잘하고, 그 일을 해서 밥을 먹고살면 최소한 절반은 성공한 인생이다. ... 꼭 즐겁지 않더라도 최소한 괴롭지 않은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
소통과 인간관계의 비결은 자기의 마음을 닦는 것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해도 타인을 미워하거나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섣불리 평가하려 하기보다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교감해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을 바꾸어 놓을 수 없다. 바꾸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대한다. 이것이 재미있는 일을 즐겁게 하는 비결이다.
나는 늙어가고 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도 삶은 똑같이 귀한 것이다. 여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결정권이다. 자기 힘으로 삶을 꾸려가야 존엄과 품위를 지킬 수 있다. 자식이든 친구이든 타인에게 의존하면 삶은 존엄과 품격을 상실할 수 있다. 늙어도 젊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인생을 설계하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몇 가지를 제대로 준비해야 하는 것이 있다. 돈, 건강, 그리고 삶의 의미이다.
개인이 생존하는 데는 사회적 결속과 유대, 상호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경쟁에서 이겨 살아남으려면 다른 사람을 이기는 능력뿐만 아니라 타인과 쉽게 공감을 이루어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타인의 기쁨뿐만 아니라 아픔에도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대가 해고 노동자의 고통과 죽음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고 눈물이 나려 한다면, 그것은 그대가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임을 입증하는 생물학적 증거가 된다.
일과 놀이와 사랑만으로는 인생을 다 채우지 못한다. 그것만으로는 삶의 의미를 온전하게 느끼지 못하며, 그것만으로는 누릴 가치가 있는 행복을 다 누릴 수 없다.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공명하면서 함께 사회적 선을 이루어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자연이 우리에게 준 모든 것을 남김없이 사용해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런 인생이 가장 아름답고 품격 있는 인생이다. 공감을 바탕으로 사회적 공동선을 이루어나가는 것을 나는 ‘연대’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러한 연대가 이루어내는 아름답고 유쾌한 변화를 ‘진보’라고 이해한다.
생물학적 접근법에 따르면 진보주의란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은 타인의 복지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사적 지원의 많은 부분을 내놓는 자발성’이다. 이러한 의미의 진보주의자는 생물학적으로 부자연스러운 또는 덜 자연스러운 생각과 행동을 한다.
진보는 서민복지를 확대하기 위한 부자증세에 찬성하지만 보수는 반대한다. 진보는 외국인 노동자의 권리와 문화적 다양성을 옹호하지만 보수는 내국인의 이익과 민족문화의 고유성을 중시한다. 진보는 동성애에 대해 너그럽지만 보수는 동성애를 혐오한다. 진보는 전쟁에 반대하고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옹호하지만 보수는 부국강병을 좋아하고 외부 위협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선호한다. 진보는 여성과 장애인 등 소수자의 권익 보호를 매우 강조하지만 보수는 덜 그렇다. 진보는 무슨 문제가 있으면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강조하는 반면 보수는 개인과 가족의 책임을 중시한다.
뭉뚱그러 말하면 보수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진화적으로 익숙하고 생물학적으로 더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나와 유전적으로 무관한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능력, 그들의 복지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자기의 사적 지원을 기꺼이 내놓으려는 자발성, 이 모두가 자연이 인간에게 준 재능이며 본능이다. 이런 이타적 본성, 공감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나는 연대라고 부른다. 연대는 일, 놀이, 사랑과 더불어 삶을 의미 있고 존엄하고 품격 있게 만드는 제4원소이다. 나는 이렇게 외치고 싶다. “연대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지금 이곳의 행복이 그들의 것이리라!”
연대하지 않으면 불편하다.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이때 나는 잠깐 딴 데 봐야지, 하려는 순간 불편함이 생긴다. 연대를 어디까지 해야 하나,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없다. 연대를 하지 않는다고 나쁘다고 비난하는 건 옳지 않다. 연대는 내가 당당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앙이나 이념은 휼륭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조건이 있다. 다른 이념과 다른 신앙에 대한 관용을 갖추는 것이다. 그럴 때에만 신념은 삶을 풍요롭고 기쁘고 의미 있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래야 사람이 이념의 도구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는 것이다. 빛나야 할 것은 신앙이나 이념이 아니다. 정말 빛나야 할 것은 자연이 준 본성과 욕망을 긍정적으로 표출하고 실현하면서 영위하는 기쁜 삶이다.
아무리 자신의 의견과 생각이 옳아도, 그것을 상대에게 납득시키는 일은 신념만으론 되지 않는다.
인간은 선을 추구한다. 그러나 우리가 절대 선이라고 믿는 것들이 언제나 진리인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이성과 더불어 욕망을 가진 충동적 존재이다. 욕망에 휩쓸리고 충동에 빠지면 때로 이성이 무력해진다. 여기에 무지가 겹치면 터무니없는 망상에 빠져 자기 손으로 삶을 파괴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생불사에 대한 욕망이다. 인간은 모든 면에서 유한한 존재이다. 이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사랑, 기쁨, 행복, 열정, 환희 등 삶에서 귀중한 모든 것은 ‘지금 여기’에, 오로지 ‘지금 여기’에만 있다. 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 ‘지금 여기’를 넘어서려는 집착과 망상은 삶의 기쁨을 갉아먹는다. 열정을 엉뚱한 곳으로 인도한다.
'좋은 책 소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발로 뛰며 쓴 미국 자본주의 고발장 / 파멸의 시대 저항의 시대 (0) | 2013.12.24 |
---|---|
2천만 원으로 시골집 한 채 샀습니다 (0) | 2013.11.19 |
[스크랩] 책 소개 - 안철수의 생각 (0) | 2012.07.19 |
묘목을 사러 가다! (0) | 2012.03.26 |
숲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 (0) | 2012.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