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뜨르비행장과 송악산 올레길
제2차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반격으로 전세가 불리해진 일제는
제주도를 일본 본토 사수를 위한 최후의 방어기지로 이용하고자 병력 7만을 제주도에 상주시키고,
섬 전체를 요새화하기 위해 제주도민을 강제로 동원하여 온갖 군사시설을 지었습니다.
그 가운데 큰 공사가 지금의 제주국제공항인 정뜨르비행장과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건설이었습니다.
알뜨르비행장터엔 지금 감자수확이 한창이었습니다. 가운데 멀리 격납고들이 보이지요?
'알뜨르'는 아랫들, '해안 가까이 있는 들'을 뜻하는 말입니다.
제주도에서는 보기 드물게 갖가지 밭작물이 쑥쑥 크는 비옥한 땅으로 내가 갔을 때도 감자와 무 수확이 한창이었습니다.
일제가 모슬포에 처음 군사기지를 설치한 것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이곳에서 출격한 전투기들이 700km 정도나 떨어진 중국 난징을 폭격했다고 합니다.
일제는 알뜨르비행장 안팎에 20여 개의 격납고를 설치했으며, 섯알오름에도 고사포대와 포 진지 4개를 설치하였습니다.
또한 주변 오름과 해안가에 수없이 많은 굴을 파서 무기를 비축하고 군사훈련을 하였지만
8월 15일에 일본 천황의 무조건 항복으로 이 계획은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유황도와 오키나와에서는 두어 달에 걸친 전투로 군인과 민간인 20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만약 일본의 항복이 조금만 더 늦추어졌다면 제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무수한 제주도민의 희생은 말할 것도 없고 아름다운 국토도 초토화를 면키 어려웠을 것입니다.
알뜨르비행장에는 지금도 그 당시에 그들이 잠자리비행기를 숨겨두었던
20개의 격납고와 관제탑의 잔해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비행장 인근에 있는 섯알오름입니다. 그 앞에도 비행기격납고가 있습니다. 올레길을 걷는 올레꾼들이 보이지요?
서쪽에 있는 알오름을 뜻하는 '섯알오름'은
제주 4.3사건의 비극이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 무렵인 1950년 불법적인 예비검속의 광풍이 몰아쳐
무고한 제주도민 250명 정도가 무참히 학살당하여 암매장된 비극의 현장입니다.
1956년 유족들이 시신을 수습하여 모시고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之地)'라 하고 추모비를 세워놓았습니다.
앞으로 근대문화유산인 알뜨르비행장과 양민학살터인 섯알오름이 있는 이 일대를
'제주평화대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바닷속 관광을 하는 해저잠수함입니다.
제주10경의 하나인 산방산입니다.
아래 사진의 바로 앞에 보이는 섬이 가파도, 멀리 보이는 섬이 국토의 최남단 마라도입니다. 비가 오는 날씨라... ↓
송악산은 주변 풍광이 아주 뛰어난 관광 명소입니다.
올레길 10코스이기도 한 송악산 오름길을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오르면
가까이 형제섬이 보이고 조금 더 뒤로는 제주10경의 하나인 산방산이 보이고 맑은 날엔 멀리 한라산이 보입니다.
또 다른 쪽으로는 국토의 최남단인 가파도와 마라도가 보이기도 하고요.
송악산은 수중 분화와 육상 분화라는 2중 폭발을 거친 화산으로
큰 분화구 안에 두번째 폭발로 주봉이 생기고 주봉 안에 깊은 분화구가 형성된 것입니다.
오목한 밥공기에 해당하는 제2분화구 안에는 검붉은 화산층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데 이 검붉은 화산토를 '송이'라고 합니다.
난을 키우는 데 많이 사용하기도 하지요.
바닷가 절벽 쪽에는
일본군이 제주사람들을 동원해 뚫어놓은 15개의 인공 동굴이 있습니다.
'일오동굴'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 굴들은 일본군이 소형의 특수 잠수정을 숨겨두었다가
연합군의 함정이 접근해오면 어뢰를 싣고 돌진해서 자폭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들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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