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얘기가 아닙니다.
김천여고에는 저의 대학동기인 배창환 시인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착하고 정 많고 부지런한 선생님이지요.
아이들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사람입니다.
매일 늦도록 학교에서 근무를 하고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성주에 있는 집으로 갑니다.
그는 글쓰기 지도에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는 까닭에
늘 문학을 가르치며 2학년을 담임했습니다.
그 덕분에 김천여고 학생들은 거의 모든 글쓰기 대회마다 장원상을 휩쓸어 오곤 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3학년을 맡아 지도하느라 더욱 늦게 집에 갑니다.
그리고 새벽같이 다시 학교에 출근해야 하니
잠은 언제 자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흔들림에 대한 생각(창비사)'을 비롯하여
여러 권의 시집을 낸 중견시인입니다.
해마다 '성주문학'을 비롯하여 여러 권의 책을 직접 만들기도 합니다.
김천여고에 와서도 학교의 교지를 내는 건 물론이요,
전국에서 최초로 김천여고 학생들의 시를 모아 출판사를 통해 발행한 뒤
전국의 서점에 깔아놓고 판매하기도 하여 전국의 국어교사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번에 또 일을 저질렀습니다.
어떤 한 학생의 시를 모아 예쁜 개인 시집을 내 준 겁니다.
그 시집의 제목이 '생각하면 눈시울이(출판사:강물처럼. 지은이:이다은. 4,000원)'입니다.
그 시집을 오늘 아침 선물 받았습니다.
너무 신기하여 앉은 자리에서 학생의 시집을 대뜸 다 읽었습니다.
28편의 시가 실렸는데 너무 놀랐습니다.
그 학생은 내가 1학년 때 가르친 학생이기도 한데
이런 재능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책 뒤에는 지도교사인 배 시인이 직접 쓴 발문('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따뜻한 아픔')이 붙어 있었습니다.
두어 편만 소개해 보겠습니다.
쉿
신기한 펜을 샀어요.
글자를 썼는데 보이지 않아요.
뚜껑에 있는 파란 후레쉬로 비추었더니,
그제사 글자가 나타나요.
참 요상한 물건이죠.
오늘은
아버지의 굽은 등에 몰래 낙서하고 싶어요.
그리고 나 혼자만 볼 거예요.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경상도 사람이라서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 잘 지내냐
말 한 마디에
반갑다 서글프다 눈물 난다 보고 싶다
한 마디로 답했다
- 잘 지내여
괜찮게
썩
잘 지내고 있어
가끔,
언니가 보고 싶은 날을 빼고는......
문득, 아주 가끔이지만
사진 한 장 없는
그 사람이 문득 보고 싶은 날에는
가만히 앉아
거울을 봅니다.
닮은 얼굴이 차차 흐려집니다.
달아
오늘은 너도 나차럼 아프니?
네 얼굴이 꼭 나처럼 누렇게 떴어.
*
위 시를 보면 이 학생은 어머니가 안 계신 듯합니다.(정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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