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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by 정가네요 2009. 11. 3.

* 지난 11월 1일(일요일)에 쓴 글입니다.

 

 

어제 토요일 점심때부터 오늘 일요일 점심때까지

교육청에 가서 지난 달 실시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고사 채점을 하고 왔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교사가 도대체

이런 시험을 왜, 무엇 때문에 치는지 모르겠다고 입을 모아 욕을 했습니다.

 

각 학교에서 채점을 해서 보고하라고 해도 될 텐데

그렇게 하면 학교장이 자기 학교의 성적을 부풀려서 보고할까 봐 그게 두려워

시내의 모든 초중고등학교의 시험지를 한데 모아 놓고

교사들의 휴일을 반납 받아 교육청에서 채점을 한 거지요.

학교별로 성적을 공개하여 한줄로 세우니 당연히 부풀려 보고를 할 수밖에요.

 

우리 학교는 지난 해의 성적이 낮다고 올해는 성적을 더 올리라며 뭉칫돈이 내려왔습니다.

그러니 또 그 돈을 제대로 잘 썼다고 보고를 해야겠지요.

그래서 전문계(옛날의 실업계)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도 하기 싫고 교사들도 하기 싫은 특별보충수업을 했습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학생기록부의 내신성적에 반영되는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칠 때에도

문제조차 읽지 않고 답을 쓰는 학생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이 한 반에 몇 명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건 아주 중요한 국가고사니까 정말 잘 쳐야 한다고 아무리 닦달을 한들 눈썹 하나 까딱할 턱이 없지요.

이런 학생들에게 보충수업을 시키니 그게 제대로 될 리가 없고요.

당연히 시간만 때우는 거지요.

 

정말 이런 시험을 왜 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일제고사에 대비해 시내의 초등학교 학생들은 두어 달 동안 운동장에 나가 보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체육은 물론 음악, 미술 시간에도 문제풀이만 했다고 합니다.

어떤 학교에서는 저녁 7시까지 붙들어 앉혀 놓고 공부를 시켰다고 하더군요.

모두가 미쳤습니다.

 

전국의 학교를 1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워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요?

이렇게 학생들을 하루 종일 학교에 붙들어 앉혀 놓고 공부만 시켜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요?

그렇게 하면 정말 모두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 우리 나라의 국가경쟁력이 높아진다는 건지요?

 

전국의 전문계 고등학교 교육은 이미 모두 실패했습니다. 

우리 학교의 학생들 가운데 80 퍼센트 이상이 대학에 진학을 합니다.

수업시간에 교과서도 가져 오지 않고 필기조차 하지 않는 학생들이 말입니다.

자기가 배운 학과의 계열로 제대로 취업하는 녀석은 한 반에 두어 명밖에 없습니다.

 

모든 고등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으니 우리 나라는 정말 일류국가가 되었을까요?

대학을 졸업한 녀석들이 한 시간에 4,000원만 받고 일하려고 하겠습니까?

대학을 졸업한 녀석들이 한 달에 100만 원도 안 받고 일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그래도 대학을 나왔는데... 자존심이 있지요.

 

당연히 시간당 4,000원의 생산직은 동남아시아의 외국인 노동자몫이 되었습니다.

이제 생산직은 더욱 천대받는 직업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모두가 공무원시험에 달려드니 공무원시험의 경쟁률은 몇백 대 일이 될 수밖에 없지요.

얼마 전에도 어디에선가 경쟁률이 800 대 1 이라고 하던가요?

떨어진 나머지 학생들은 또 공부를 해야지요.

그러니 갈수록 청년실업자가 늘어날 수밖에요.

 

모두가 미쳤습니다.

교과부가... 이 정부가... 이 나라가 미쳤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맘껏 뛰어놀아야 합니다.

영어 수학을 공부하고 싶지 않은 우리 아이들은 중학교를 마치고

전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제대로 된 직업교육을 충실히 받아야 합니다. 

 

100만 원을 받고도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보충수업을 해서 학력을 올리라고 내려주는 돈은 당연히 그런 곳에 써야지요.

 

왜 적게 벌어도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못 만들까요?

우리나라만 해도 직업의 종류가 1만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하기 싫은 공부만 왜 그렇게 억지로 시키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생각할수록 답답하기만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제 꼭대기에 도달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대학을 나와도 갈 데가 없으니 대학에 갈 필요가 없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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