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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열흘 전,
지인이 담가 놓았던 막걸리를 1시간 동안 함께 짰습니다.
그때,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진짜 술지게미를 봤습니다.
한 번도 술지게미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을 위해 여기 사진을 올려 봅니다.
이 원액 모래미는 흔히 파는 막걸리보다 훨씬 독해 14도 정도 된다고 합니다. 막걸리는 6~8도 정도 되지요.
* 술 담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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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짝 일기>
- 아래 일기는 내 갑장 친구인 산골짝 친구가 45년 전에 쓴 귀한 일기입니다.
산골 마을 겨울의 짧은 해가
서산을 넘으려 할 때쯤에야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집에 왔다.
마당을 들어서니 집안 가득 술냄새가 진동을 한다.
며칠 후 할머님 생신이라고 어머님이 술조사꾼 몰래
윗방에 단지를 들여 놓고 담군 술인데
어제부터 술냄새가 방안 가득하더니
오늘 부엌으로 내다 거르고 계신다.
책보를 풀어 마루에 던져놓고 부엌에 들어가니
커다란 양푼에 술지게미를 사까린을 타서
누나 형 동생들 둘러 앉아서 퍼 먹고 있다.
나도 숫가락을 들고 대들어 퍼먹으니
달콤하고 씁쓰레한 것이 얼굴이 후끈 달아 오른다
배고파 출출한 판에 배가 부르도록 온가족이 실컷 퍼 먹었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기에 멀건 죽보다는 훨씬 좋다.
모든 가족들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올라 곱기도 하다.
불룩 나온 배를 안고 일어서니 몸이 비틀 넘어질 것 같다.
방으로 들어오니 아버지도 술에 취해 주무시고 계신다.
하늘이 빙빙 돈다.
방바닥이 울렁울렁 움직인다.
그냥 쓰러졌다.
얼마를 정신없이 자다 보니 속이 울렁이며 토할 것 같다.
엉금엉금 기어 문지방을 간신히 넘어 마당에 나와 억억 토해 냈다.
아~ 돈다.
하늘이 돌고 땅이 돈다.
집이 돌고 커다란 살구나무가 돈다.
뱃속 가득한 모든 것을 토해 내고 다시 엉금엉금 기어 들어오니
한방 가득 아버지 엄마 형 동생 모두가 서로 엉켜 골아 떨어져 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나도 다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몸을 마구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일어 났다.
아직도 몽롱한 정신으로 방안을 둘러보니
아뿔사~ 동생들의 입 앞엔 술냄새가 지독한 술지게미가 한 사발씩 쏟아져 있다.
잠들어 누운 채로 토한 것이다.
모두 깨워 간신히 일어나 아침밥도 못먹고 그냥 책보를 등에 둘러 메고 학교를 갔다.
학교가는 길이 아직도 빙빙 돌고 얼굴이 달아 오른다.
첫 수업시간
숙제검사를 한다.
지게미에 취해 숙제를 했을리 없다.
안해온 사람 자진해서 앞으로 나오라는 선생님의 호령에
비틀대는 몸으로 나가니
눈을 휘둥그레 뜨신 선생님이 이 녀석 왜 그래? 하시더니
술냄새가 풍풍 풍기니 다짜고짜 이자식 술 쳐먹었네?
하며 들고있던 몽둥이로 내리친다.
대가리에 소똥도 안 떨어진 자식이
숙제도 안해오고 아침부터 술 쳐먹었다며 화가 머리끝까지 나셔서
사정없이 두들겨 패니 비틀거리는 내 몸은 쓰러지고 말았다.
왜 술을 먹었느냐는 다그침에
술지게미를 먹고 이렇게 됐다는 말을 했더니 몹씨도 미안해 하신다.
점심시간.
선생님의 부르심에 숙직실로 불려가니
납작하고 이쁜 도시락을 펴서 내 앞에 내밀어 주시며 먹으라 하신다.
하얀 쌀밥에 계란 후라이 무우 장아찌가 들어 있는 맜있는 도시락에
괜찮읍니다 라고 한번 사양한 끝에 달려들어 허겁지겁 퍼 먹었다.
아~ 이렇게 맛좋은 도시락은 난생 처음이다..
* 고사성어 <조강지처 糟糠之妻>
후한의 광무제 시절, 송홍(宋弘)이란 대부는 어질고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무제는 송홍에게 많은 것을 의지했습니다.
마침 무제의 누이 호양공주가 과부가 되어 궁에 들어와 살았습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송홍을 은근히 사모해 황제가 중매를 서 주기를 바랐습니다.
황제는 어느 날, 송홍을 불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끝에 슬쩍 의중을 떠보았습니다.
“사람은 지위가 높아지면 친구를 갈아 사귀고 부자가 되면 아내를 버리고 새 사람으로 바꾼다는데,
이런 것은 인간의 상정이 아니겠는가?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송홍이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습니다.
“신이 듣건대 가난하고 천하던 시절에 사귄 친구를 잊어서는 안되며,
술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함께 고생하던 아내는 버릴 수 없다 합니다.”
황제는 송홍의 마음을 알고 더는 권하지 못했습니다.
황제는 누이에게 이번 일은 잘될 것 같지 않다고 그 결과를 알렸습니다.
그때 송홍이 말한 “貧賤之交不可忘, 糟糠之妻不下堂. 빈천지교불가망, 조강지처불하당” 이란 말은
그 후로 널리 쓰여져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조강지처>라는 말이 여기에서 연유하였음은 두 말할 것도 없습니다.
<조糟>는 '술지게미'를 뜻하고, <강糠>은 '쌀겨'를 뜻하니, <조강>은 몹시 거친 음식을 말합니다.
<조강지처>는 그와 같이 거친 음식을 나누어 먹고 온갖 고생을 함께 한 아내라는 뜻이요,
<불하당>이란 말은 몹시 소중하여 버리지 못하고, 집에서 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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