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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소개

생각만 해도 신나는 꿈

by 정가네요 2023. 1. 5.

♡ 

이동순 시인께서 시집을 보내오셨습니다.

등단 50주년을 기념하여 내신 귀한 시집입니다.

그간 펴낸 21권의 시집을 더듬어 만드셨다는

『생각만 해도 신나는 꿈』

 

내가 꽃씨 조금 보내드린 걸 기억하시고

제일 먼저 내 이름을 기록해 두셨다고 합니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내가 예천여고에 근무할 때

선생님께서 내신 시집 『봄의 설법』을 구입하여

학생들의 생일 선물로 줬던 기억도 있습니다.

저는 서정적인 내용의 시를 좋아하거든요.^^

 

선생님께서는

김천 태생으로 나와 고향이 같으십니다.

오래 전에 선생님의 ‘어머니’란 시를 읽었는데

첫돌도 되기 전에 어머니를 잃으셨다고 하여

나도 몰래 눈물을 흘렸던 일도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얼마 전에

어머니 돌아가신 지 71년 만에

완전히 흙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님의 유해를 합장해 드렸는데

가슴이 설레고 벅찼다고 하시더군요.

 

그나저나 시집의 제목

‘생각만 해도 신나는 꿈’이 과연 뭘까요?

마음이 맑고 향그런 사람들끼리

흐뭇하게 둘러앉아 웃고 있는 꿈이라고 합니다.

남과 북의 아이들이 한데 모여...

 

저의 꿈도 그렇습니다.^^

 

*

서시 /이동순

 

이 땅에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죽어서

남아 있는 어린 것들을 제대로 살아있게 한다.

달리던 노루는 찬 기슭에 무릎을 꺽고

날새는 떨어져 그의 잠을 햇살에 말리운다

지렁이도 물속에 녹아 떠내려가고

사람은 죽어서 바람 끝에 흩어지나니

아 얼마나 기다림에 설레던 푸른 날들을

노루 날새 지렁이 사람들은 저 혼자 살다 가고

그의 꿈은 지금쯤 어느 풀잎에 가까이 닿아

가쁜 숨 가만히 쉬어가고 있을까

이 아침에 지어먹는 한 그릇 미음죽도

허공에 떠돌던 넋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리라

이 땅에 먼저 살던 것들은 모두 죽어서

남아 있는 어린 것들을 제대로 살아있게 한다

성난 목소리도 나직이 불러 보던 이름들도

언젠가는 죽어서 땅위엣것을 더욱 번성하게 한다

대자연에 두 발 딛고 밝은 지구를 걸어가며

죽음 곧 새로 태어남이란 귀한 진리를 얻었으니

하늘 아래 이 한 몸 더 바랄게 무어 있으랴

 

*

어머니 / 이동순

 

어머니와 내가

모자간의 인연으로 이 세상을

함께 살았던 시간이란 고작 열 달

무슨 볼일 그리도 급하셔서 어머니는

내가 첫돌도 되기 전에

내가 땅에 두 발을 딛기도 전에

서둘러 가신 것일까

생각하면 때로 어머니가 야속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어린 핏덩이를 남기고 떠나실 즈음

어머니 심정이야 오죽 하셨으랴

사진도 한 장 없고

어찌 생기셨는지 얼굴조차 모르지만

그 어머니께서 늘 내 속에 와 계시고

도 자식 옆을 잠시도 떠나지 않으시며

살아계실 때처럼 이것저것

보살펴주신다는 것을

나는 안다

 

*

흘러간 날 / 이동순

 

그대와 마주 앉아서

해가 아주 저물어버린 날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브 몽땅이나

줄리에뜨 그레꼬의 샹송을 들었던 저녁이었을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서 음악도 꺼지고

길거리의 가로등이 하나둘 밝아올 때도

우리는 불을 켜지 않고

어둠 속에서 서로를 가만히 바라보던

어느 흘러간 날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