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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11시 25분쯤, 손녀가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깊은 밤에 온 손녀의 전화를 받고 아내는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별똥별을 보러 나왔는데 도시 불빛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고.
시골인 할아버지 집에서는 잘 보일 텐데 할아버지는 지금 마당에 계시지 않느냐고.
나도 뉴스를 보고 별똥별을 보려 했지만 지인들과 술을 한 잔 한 뒤라 그냥 자려고 누웠다가 손녀의 전화를 받고는 속옷 차림 그대로 마당에 나갔습니다. 집의 전깃불을 모두 끄고서.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면 동영상으로 찍어서 손녀에게 보내려고 했는데 15분을 기다렸지만 하나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쉬웠습니다.
별똥별 얘기를 하니 옛날 일이 생각났습니다.
1998년 11월, 내가 연도를 기억하는 건 그날이 아들 녀석의 수능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한밤중에 사자자리 유성우(流星雨)을 보기 위해서 딸을 깨워 아파트 옥상에 올랐습니다. 수능시험을 치르는 아들이 혹시 깰까 봐 조심조심하면서 말입니다. 아들이 수능시험을 치는 날인데 애비는 별 구경이나 하려고 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미쳐도 참 많이 미쳤습니다.
하여튼 시간당 몇백 개의 별똥별이 떨어진다고 했는데 옥상에서 벌벌 떨며 20분 정도를 기다렸지만 몇 분에 하나씩 겨우 몇 개만 떨어져 딸과 나는 실망이 컸습니다.
사자자리 유성우는 매년 11월에 나타나는데 템플-터틀 혜성의 부서진 잔해 때문에 나타나는 유성우로 그날이 33년 주기로 대폭발이 일어나는 날이라고 했거든요. 사자자리 유성우는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 쌍둥이자리 유성우와 함께 3대 유성우로 불린다고 합니다.
얘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20년 전쯤이었습니다.
그날도 어젯밤처럼 페르세우스 유성우를 보고자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그날도 엄청 많은 유성우가 쏟아진다고 해서 마지못해 따라나서는 아내와 함께 조심조심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여러 유성이 내리는 모습이 마치 비(雨)가 내리는 것 같다고 해서 유성우(流星雨)라 부른다는데 그날 역시 유성우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둘이서 하늘을 쳐다보며 한참 유성을 찾고 있을 때 아파트 관리아저씨가 올라오셨습니다. 밤중에 여기서 뭘 하느냐고? 누군지 확인하더니 깜짝 놀랐다고 하더군요. 옥상에서 번쩍이는 랜턴 불빛을 보고서 올라오신 것 같았습니다. 구차하게 설명을 했지만 가차 없이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쫓겨난 게 억울해서 다시 차에 타고 불빛이 없는 곳을 찾다가 집에서 2km쯤 떨어진 공단으로 갔습니다. 차 속에 들어앉아 기다리고 있었더니 별똥별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 저기 봐.”,
‘저기에도......“,
”저기에 또 떨어지네.“
거짓말처럼 10여초도 걸리지 않고 계속해서 별똥별이 떨어졌습니다. 어릴 때 평상에 누워 가끔 하나씩 떨어지는 별똥별을 본 이후 가장 많은 별똥별을 봤습니다. 그야말로 비처럼 떨어지는 유성우였습니다. 내 평생 다시는 보기 어려운 광경이었습니다. 한여름밤의 별똥별 잔치였습니다.
손녀에게는 밤하늘 사진 한 장을 보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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