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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문화권 여행을 하면서
부여에 있는 ‘정림사지오층석탑’을 찾았습니다.
미륵사지석탑과 함께 두 기의 백제 석탑 중 하나입니다.
660년, 당나라의 소정방이 백제를 멸망시킨 뒤,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이라 하여
자신들의 공적을 빽빽하게 새겨 놓은 글이 있어
‘평제탑(平濟塔)’이라고도 부르지요.
백제의 치욕과 상처를 안고 있는 슬픈 탑이지만
비례미가 뛰어나고 아주 단아한 모습이어서
저는 부여에 가면 꼭 찾아가곤 합니다.
신라와 당나라의 밀약을 까맣게 모르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 신하들의 충언조차 듣지 않았던
백제 의자왕은 순식간에 소정방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지요.
그리고 왕자들, 또 1만 명이 넘는 백성들과 함께
당나라로 끌려간 뒤 망국의 한을 품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 뒤, 백제의 후손들이 낙양시 북망산에서
의자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장소의 흙을 가져와
부여 능산리의 ‘부여왕릉원’ 한 쪽에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과 함께 가묘를 만들어 놓고
‘백제국의자대왕단비(百濟國義慈大王壇碑)’라는
비석을 세워 놓았다는데 왠지 무척 쓸쓸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1993년,
‘부여왕릉원’의 주차장을 마련하던 중
왕실의 사찰이 있던 곳으로 밝혀진 논바닥에서
세계에 자랑할 만한 귀한 유물을 발견하였습니다.
바로 아름다운 국보 ‘백제금동대향로’입니다.
한 마리의 용이 향로를 받치고 있으며,
향로 꼭대기에는 봉황이 앉아 있는 모습으로
진흙에 잠겨 1,500년의 세월을 견딘 향로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유물이지요.
신라 금관에 맞먹는 백제 문화의 정수로
백제의 미(美)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보물입니다.
부여박물관에 진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슬픈 상처를 안고 있는 정림사지오층석탑

백제금동대향로

용이 향로를 떠받들고 있습니다.

향로의 뚜껑에 앉아 있는 봉황

발견 당시의 모습

부여왕릉원 옆에 있는 의자왕의 가묘와 백제국의자대왕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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