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 시집을 한두 권 사서 읽습니다.
그냥 방 한 쪽에 던져두고 있다가 어쩌다
마음이 내키거나, 잠이 안 올 때 펼쳐보곤 하지요.
열흘 전쯤, 가까이 살고 있는
신휘 시인의 집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박기영 시인을 비롯해서 여러 분이 오셨더군요.
원래 눈썰미가 없는 사람인데다
소주까지 몇 잔 했더니 누가 누군지도 잘 몰랐습니다.
#김종필 시인과도 인사를 나누었는데 미처
그분이 초설(初雪) 님인지도 몰랐습니다.
지나고 보니 죄송했습니다.
어젯밤에 문득 생각이 나서 몇 달 전에 구입한
초설 김종필 시인의 ≪무서운 여자≫를 읽었습니다.
‘뭔 남자가 이래...’
사랑이 얼마나 질기고 따뜻한 것인지
초설 시인의 시를 읽고 새삼 깨달았습니다.
산다는 게 얼마나 무겁고 무서운 일인지도 알았습니다.
햇살 눈부신 아침 화장터에 오르는 연기를 보고
산다는 건 죽을죄를 짓는 일이라 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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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야 한다면 / 꽃 피는 삼월이 아니라
억누르며 참았다가 / 꽃 지는 사월에 울겠다
- (사월에 울겠다)
울지 마라 / 울지 마라 / 울면 더 아프다
걱정 마라 / 치료비 열심히 벌고 있다
그대가 나을 수 있다면 / 나는 아파도 아프지 않다
- (울면 더 아프다)
사는 동안 잊지 않고
미역국을 끓여 주며 미워 죽겠다 호들갑 떠는 여자
아주 심심한 저물녘에
늙지 마요 타박하며 아들인 양 엉덩이 토닥이는 여자
- (무서운 여자)
키 작은 수양버들처럼 가냘픈 손가락, 발가락 마디에 염
증 붓기가 독버섯처럼 말랑거린다 눈을 감아도 처음처럼
함께하리니 서러워 말자 연두 햇살에 삭여 주리라 아카시
아 향기로 말려 주리라
- (낡은 사진 속 여자)
단풍잎 떨어진 마디 같은 어깨에 알싸한 파스 향기가 풍
긴다 눈을 감고, 내 속으로 깊이 마셨다 밤새 앓았을 아픔
을 마셨다 더는 아프지 말라고
촉촉한 눈으로 내 눈을 보았다 이럴 때는 말하지 않는다
말하면 서러움이 더 복받치는 순간이다 새가슴 파동이 가
슴에 닿았고, 종아리와 종아리를 새끼처럼 꼬았다
- (연리지)
그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다음 시를 읽어 보지요.
*
어제, 오늘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야릇한 두려움이며, 읽고 싶었던 책 첫 장을 펼치는
설렘이다 그들을 읽었고, 까닭 없이 부끄러운 속내를 들키
지 않으려고 애썼다 서로 밑줄을 긋는 동행이었으면
- (사람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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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다 소개할 수는 없겠지요.
사랑, 사랑, 참사랑을 알고 싶은 분은 김종필 시집 ≪무서운 여자≫를 읽어 보세요.
한없이 부드러운 성정일 것 같은데 초설 시인은
쇠로 방화문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라고 합니다.
때로는 술도 마시고 아주 가끔은
세상을 향해 욕도 할 줄 안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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