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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날기 위해 울음마저 버린다』
김용만 시인의 시집을 받았다.
그 분의 첫 시집이다.
시집을 펼쳐 시 세 편을 읽자마자
많은 분들이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초가실 맑은 햇살 마당에 가득하다
저 햇살 몇 삽 담아
요양병원 어머니에게 가야겠다
병실 가득 눈부시게 깔아놓고
참깨 털고
고추 널고
호박 곱게 썰어 하얗게 널어야겠다
귀가 어두운 어머니와 바위에 앉아
해 지는 강물을 오래 바라봐야겠다
꼬들꼬들 호박꼬지 마르는 동안
- 〈호박꼬지 마르는 동안〉 / 김용만
*
밤 열차로 온다는
딸 마중 나가다
위봉산 만딩이에서
고라니를 쳤다
서행으로 달리다
급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아, 하는 사이
쿵, 하고 말았다
돌아보니 길가에
서 있다
다행이다
아마 많이 아팠을 것이다
아휴, 큰일 날 뻔했네
했을 것이다
- 〈고라니〉 / 김용만
*
우리 집 두꺼비가 죽었다
아무리 느려도
도로 건널 때는
좀 서둘러라
신신당부했는데
아이구 속 터져
차에 치여 죽었다
오늘 인간인 내가
종일 미웠다
나는 아니라고들 하지 말라
- 〈두꺼비〉 / 김용만
나도 얼마 전에 예초기로 풀을 베다가
우리 집 두꺼비를 베고 말았다
그날 하루 종일 죄인이 되었다
나는 김용만 시인을 모른다.
페북을 통해 가끔 ‘좋아요’를 누르는
친구 사이일 뿐이다.
시인의 시집 겉표지 속에
‘임실에서 태어나 완주에서 산다’고
딱 한 줄이 적혀 있다.
다음 시를 보면
김용만 시인이 살고 있는 곳을 짐작할 수 있다.
*
우리 마을엔
십자가도 없고
마트도 없고
치킨집도 없어요
그래도 달은 밝고
높은 산과 나무들은 많아요
밤마다
별은 하늘 가득 빛나요
눈도 많이 와요
그래요
사람들이라고
다 가질 수는 없잖아요
만나는 사람 없어
산 보고
메리 크리스마스, 했어요
- 〈메리 크리스마스〉 / 김용만
시를 두 편만 더 소개해 본다.
시인의 옛날과 지금을 엿볼 수 있다
김용만 시인, 참 좋은 시인이다.
*
평생 그리던 시골집 하나 사놓고
덜컥 아팠다
속살이 타버린 줄도 모르고
하루를 못 버티고 다들 떠난
마찌꼬바 용접사로 삼십여 년 살았다
노동이 아름답다는데 나는 신물이 났다
살 타는 냄새를 맡았다
저 대문 활짝 열고
찾아올 동무를 위해
일찍 등불 걸어야지
저 허청엔 닭장을 지어야지
첫닭이 울면 어둑어둑 비질을 하고
동네 한 바퀴 돌아야지
뚝뚝 떨어지는 능소화 꽃잎을
아침마다 주워야지
잉그락불 같은 채송화를 마당 가득 심어야지
불 끄면 마당 가득 쏟아지는
별들을 소쿠리에 담아야지
새들이 오래 놀다 가는
바람의 집을 지어야지
- 〈귀향〉 / 김용만
*
해가 뜨자마자
창문을 활짝 열었다
아침 햇살 따라
봄기운이 왕창 밀고 들어온다
담 너머 앞집
산수유꽃이 벙글고
수선화 새싹이 눈에 띄게 솟았다
참새 몇 마리가
진달래 가지에 앉았다
떠난다
새들은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들러야 할 곳이 많은 것일까
참새가 흔들고 간
진달래 가지에
꽃이 곧 피리라
오늘은 뒤란 밭을
정리해야겠다
가만히 있으면
봄 햇살에
너무 부끄럽지 않은가
- 〈아침 일기〉 / 김용만
시인에게 내가 좋아하는 동요 한 곡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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