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집 개 봄이가 죽었습니다. 2008년 5월생이니 딱 13년을 살았습니다. 녀석은 무척 영특했습니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마당을 가로질러 동네로 나가려고 하다가도 “어딜 가. 이리 와.” 하면 바로 뒤돌아서 오는 녀석이었습니다. 녀석이 짖는 소리를 들어 보면 낯선 사람이 우리 집을 방문하는지, 늘 오던 사람이 오는 것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아들, 딸, 사위는 몇 달에 한 번씩 와도 신통하게 거의 짖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녀석의 2세를 한 마리 더 키우려고 했는데 우리가 너무 방임형으로 키운 탓인지 번번이 집 나온 자유분방한 수컷들만 밖에서 만나 애비도 모르는 새끼들을 낳곤 했습니다. 지금 집에 있는 또 다른 개 산이도 봄이의 새끼이긴 한데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산이는 제 어미의 품성 근처에도 가지 못합니다. 어릴 때, 두 번이나 고라니를 잡는 쇠덫에 치어 덫을 물어 뜯고 탈출을 하려다 앞이빨이 다 빠져서 평생토록 음식 먹기가 불편했던 녀석이지요. 덫에 치였던 앞다리 하나는 힘줄이 끊어져 힘을 빼면 툭 꺾어지곤 했습니다. 그래도 거짓말같이 달리기는 잘 했습니다. 천 평이 넘는 동산이 모두 제 영역이어서 큰 새 한 마리만 침범해도 여지없이 몰아냈던 녀석입니다. 또 쥐, 두더지, 꿩은 몇 마리나 잡았던지요. 심지어는 고라니 새끼도 두 번이나 물어왔습니다. 그런데 그만 마지막엔 모기가 전파시키는 심장사상충에 감염되고 말았습니다. 이 병은 모기에 물린 뒤 5~6개월 정도 지나야 증상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무심하긴 했지만 우리는 전혀 몰랐습니다. 몇 차례나 새끼를 가졌던 녀석인데 어느 날 문득 봄이를 보니 배가 부른 듯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배가 점점 더 불러왔습니다. ‘아이고, 너는 할머니인데 임마 또 임신을 했어?‘ 먹는 것도 엄청 잘 먹어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끼를 가졌으니 당연히 많이 먹는다고 생각했지요. 봄이가 열네 살의 노령견이라 대를 이으라고 사돈댁에서 리트리버와 풍산개의 새끼를 한 마리 주겠다고 해서 받겠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봄이가 낳을 새끼의 분양조차 힘들게 생겨 그만 취소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두 달이 지나도 전혀 출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뭔가 이상했습니다.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심장사상충 병이었습니다. 노령견이라 독한 약을 쓰기도 힘들고 뱃속에 차 있는 복수를 빼는 것조차 어렵다고 했습니다. 주는 약만 받아 그냥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또 두 달쯤 지났을까요? 갑자기 한쪽 눈을 뜨지 못하게 되더니 곧 이어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물조차 한 방울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식음을 전폐한 지 닷새나 지났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녀석은 제 집 앞에서 볼일을 보지 않고 악착같이 일어나 마당으로 나가 볼일을 봤습니다. 그만큼 깔끔한 녀석이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내가 서울에 갈 일이 생겨 집을 떠나면서 누워서 눈만 떠고 있는 봄이에게 ‘더 고생하지 말고 편히 잘 가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는데 점심 때가 조금 지나 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녀석은 그렇게 제 곁을 떠났습니다. 내가 카페지기로 있는 Daum의 식물 카페 대문에는 ‘뭇 생명의 가치는 똑같습니다.’라고 써 놓았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하찮아 보이는 식물이나 모든 생명은 살아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합니다. 누구에게나 삶의 크기는 똑같은가 봅니다. 우리 봄이의 다음 삶은 훨씬 더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녀석을 뒷동산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었습니다. 오늘 밤엔 녀석을 그리며 이별주 한 잔을 해야겠습니다. 봄, 너와 함께 하는 동안 우린 정말 행복했다. 잘 가. 사랑한다. 임마. 봄이,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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