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 이야기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집을 나갔던 개가 다시 돌아온 이야기입니다.
딱 10년 전 이야기입니다.
---
봄이가 우리집에 오던 2008년 12월,
지인에게서 수컷 개 한 마리를 더 얻어왔습니다.
가을에 낳은 녀석이라 이름을 가을이라고 했습니다.
부를 때는 늘 ‘가을~, 갈~’하고 불렀지요.
봄이보다 석 달쯤 늦은 녀석인데
처음부터 봄이와 무척 다정하게 놀았습니다.
그러던 녀석이 그 다음해 여름 집을 나갔습니다.
아마도 발정이 났던가 봅니다.
더위가 한창이던 8월 말복날 집을 나갔습니다.
이웃동네까지 찾아보았지만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몇 날 며칠 기다려도 녀석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밤중에 '봄이' 녀석이 심하게 짖을 때가 많습니다.
소리를 들어 보면 짐승이 나타났다는 걸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너구리도 한두 번 나타났지만
주로 고라니가 아니면 멧돼지입니다.
가끔은 요즘 보기 드문 산토끼가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밤 10시쯤
봄이가 심하게 짖는 소리가 나서 랜턴을 들고 나갔습니다.
'어, 저건 가을이잖아'
지난 해 집을 나갔던 가을이임을 한눈에 알아보았습니다.
무려 15개월 만에 녀석이 나타났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황급히 아내를 부르면서 마당으로 내려가
"가을이, 가을아, 갈~"하고 부르니
녀석은 반가이 컹컹 짖으면서도
주변을 맴돌 뿐 가까이 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가을이가 집을 나가던 날까지
그렇게 다정하게 놀던 봄이 녀석도
가을이임을 짐작하는 듯 심하게 짖지는 않았지만
선뜻 가을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으르렁으르렁'하고 이빨만 드러내었습니다.
가을이는 몸집만 좀 커졌을 뿐
하는 행동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녀석은 개가 가진 독특한 냄새가 너무 심하게 나고
그리 영특해 보이지도 않고 좀 아둔해서
우리 부부가 크게 사랑을 주지도 않은 녀석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지내다가
골짜기에 있는 제 집을 찾아왔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온 동네에 우리 가을이가 가출했다는 소문을 냈기 때문에
가까이서 지내지는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녀석을 묶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가까이 오지 않아서
먹이와 물만 주고 그냥 들어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봄이 녀석은 밤새도록 으렁으렁 하더군요.
이튿날 아침에 보니 녀석은
마당 한가운데서 서리를 하얗게 덮어쓴 채 잠을 잤더군요.
아무리 불러도 사람 가까이 오려고 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그냥 출근을 했습니다.
하루 종일 마당에 두고 온 녀석이 걱정되었습니다.
저녁에 돌아오니 다행히 녀석은 여전히 집에 있었습니다.
다시 먹이로 유인하며 불렀더니
조금 더 가까이 왔습니다.
가만히 목줄을 잡고 쓰다듬어 주니
그제서야 배를 땅에 깔고 납작 엎드렸습니다.
“아이구, 가을아. 고마워.”
그렇게 가을이가 돌아왔습니다.
우리집에 와서 9개월을 살다가 가출을 하여
15개월 동안 다른 데 갔다가 기적같이 돌아왔습니다.
아, 정말 믿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에 같은 동네에 사시는
훈이 할머니께서 개 한 마리를 잃었다고 하셨습니다.
훈이 할머니는 꽃을 좋아하셔서
우리 집에도 몇 번 오셨을 뿐만 아니라
시골 동네에 꽃을 키우는 사람이 이사를 왔다고
제 자랑도 많이 해 주시는 저의 왕팬 할머니셨습니다.
‘아, 할머니께서 가을이를 거두어 키우셨구나.’
바로 가을이를 데리고 할머니집에 가서
혹시 녀석이 잃어버린 놈인가 하고 여쭤보니 그렇다고 하십니다.
두 말 하지 않고 할머니께 드리고 왔습니다.
“녀석이 혹시 지난해 집을 나갔던
우리 개인 줄 알았는데 닮은 녀석인가 봅니다.“
슬프지만 할머니와 같이 사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두어 달 뒤에 다시 가 보니
가을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할머니께 묻지도 않았습니다.
할머니의 아들이 소 목장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목장 한 구석에
녀석을 묶어두고 키웠더랬습니다.
불쌍한 가을이 녀석...
다음검색
'정가네동산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TV 없는 세상 (0) | 2020.12.17 |
---|---|
캔디 시리즈 (0) | 2020.12.14 |
강아지 동영상 다섯 (0) | 2020.12.04 |
연애 잘하는 우리 봄이 (0) | 2020.12.02 |
봄이 이야기. 2 - 덫 2 (0) | 2020.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