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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의 옛날 이야기를 다시 정리한 것이니 놀라지 마세요.)
전화기에서 다급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줌마네 뒷밭에 있는데 빨리 와 봐요. 개가..."
산모롱이를 돌아 내려가면 아줌마네 텃밭이 있고
그 밭으로 가다보면 왼쪽에 널따란 묵정밭이 있습니다.
달려가 보니 묵정밭 한가운데서 처절한 개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우리 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아, 저 녀석 덫에 걸렸구나'
몇 년 동안 농사를 짓지 않은 묵정밭이라
뽕나무 같은 잡목들이 우거져 쉽게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녀석은 그 밭에 꿩이 있는 것을 알고는 자주 들어갔습니다.
때로는 도망치는 꿩들을 쫓아 앞뒷산 꼭대기까지 오르내리곤 했습니다.
몸집은 작지만 사냥개의 피가 섞였다고 했는데
녀석은 정말 산을 잘 탔습니다.
울타리 제거 작업을 할 때 쓰던 절단기를 들고서
차를 타고 마을을 빙 돌아 묵정밭 반대편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내에게도 장화를 신고 오라고 했습니다.
혹시 또 있을지 모르는 덫이 위험했기 때문입니다.
"아, 저런..."
봄이의 발목이 벌써 돌아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습니다.
나도 눈물이 나려고 했습니다.
봄이를 달래는 아내의 바지에 금방 피가 잔뜩 묻었습니다.
절단기를 들고서 덫을 자르려고 하니
녀석은 경계심을 가지고 절단기조차 마구 물어뜯으려고 합니다.
덫을 얼마나 물어뜯었는지 녀석의 입은 온통 피투성이였습니다.
"가만, 가만, 가만히 있어."
절단기로 덫을 두어 군데 자르니 덫이 겨우 풀렸습니다.
녀석은 덜렁거리는 발목을 든 채
한 발로 절뚝거리며 바로 집 쪽으로 달아났습니다.
돌아서 집에 오니 녀석은 제 집 옆에 앉아 있더군요.
바로 차에 태워서 가까운 가축병원으로 갔습니다.
얼마나 놀랐던지 쉬 마취가 되지 않아 눈을 뜬 채로 있었습니다.
할 수 없이 주둥이를 묶고서 그냥 작업을 했습니다.
마취주사를 놓고 부목을 대고 깁스를 해주었습니다.
자기 옷에 피가 묻는 것도 개의치 않던 아내는
깁스를 다 하고 나서야 봄이를 안고 한 시름 놓았습니다.
집에 온 후, 녀석은 완전히 축 처졌습니다.
마취가 너무 세었던 게 아닌가?
혹시나 싶어 거듭 불러 보았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숨도 제대로 쉬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덜컥 겁이 났습니다.
한참 뒤,
다시 몇 번 불러보니 녀석은 겨우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그러더니 ‘끙’ 하고 몸을 일으켜 앉아서는 한참 동안 떨었습니다.
정말 아픈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얼마나 불쌍하던지요.
덫에서 발을 빼내려고 쇠로 된 덫을 물어뜯어
피투성이가 된 입술은 아래 위가 붙어 떨어지지도 않았습니다.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 주었더니
배가 고팠던지 다행히도 혀로 조금씩 핥아 먹더군요.
우유 그릇에 피가 흘러 들어가 섞이는 것을 본 아내는
그저 봄이가 불쌍해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래도 우유 한 그릇을 다 비웠습니다.
그리고는 제 집에 들어가 죽은 듯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죽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놀랐던지요.
‘에이, 정말 나쁜 사람 같으니라구...’
"내 혼자 있었더라면 어쩔 뻔했을까?"
아내는 놀란 가슴에 저녁도 못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나마 절단기가 있었던 게 또 얼마나 다행이었던지요
그날 이후로 우리 봄이는
앞이빨이 하나도 없이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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