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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소개

반걸음을 위한 현존의 요구 / 염무웅

by 정가네요 2015.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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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걸음을 위한 현존의 요구 / 염무웅 / 삶창 / 18,000원

 

 

 

 

결국 우리는 묻는다. 인류에게 미래가 있는가, 그러나 이 무서운 질문조차 이제는 절박함이 희석되어 상투적인 것으로 들리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질문의 발원지가 단순히 경제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기후, 식량, 자원, 인구, 핵 등 어느 영역에서 출발하든 당면의 위기는 근본적이고 치명적인 차원에 도달하고 만다는 것이 문제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해서 오늘을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우주질서에 작용하는 내재적 원리 또는 절대적 섭리를 믿고 그 영원성의 신앙에 따라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야 그 확실하게 주어진 방식대로 살면 되는 것이지만, 유전적ㆍ환경적으로 그런 신앙을 가질 수 없도록 설계된 사람들에게도 신앙인 못지않은 삶의 기율이 없을 수는 없다. 기댈 것도 믿을 것도 없기에 오히려 더욱 강인한 윤리적 결심을 요구하는 것이 범인들의 일상생활일 수도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그 모든 생존활동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윤리성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므로 이 세계의 타락과 불의를 보고 그것들을 향해 부단히 시비 걸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미래에 대한 큰 확신 때문이 아니라 현존의 작은 요구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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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ㆍ이혼율ㆍ자살률 등 삶의 질을 말해주는 지표에서 우리나라가 OECD국가들 중 최악이라는 건 웬만큼 알려진 사실이다. 반도체, 휴대폰, 조선, 자동차 같은 분야의 산업생산이 첨단을 달리고 있고 무역규모가 세계 10위권에 육박한다는데, 어째서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거꾸로 곤두박질인가. 깊이 생각해보지 않더라도, 또 전문가의 이론적 분석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의 상식은 이미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다. 국민소득의 총량이 아무리 늘어나더라도 다수 국민이 분배에서 소외된다면 그들 몸의 감각에 실제로 닥치는 것은 상대적 빈곤과 심리적 박탈감일 수밖에 없다고. 다시 말해 행복감의 저하는 당면한 최대 현실인 양극화의 필연적 산물인 것이다. 국가부채 1117조, 가계부채 1040조, 대기성 부동자금 757조, 10대 재벌그룹 사내유보금 517조, 2014년도 정부예산 358조라고 하는 최근의 통계는 우리 앞에 실존하는 빈부격차의 심연이 얼마나 까마득한 것인지 단적으로 증명한다. 그러므로 화려하게 포장된 대한민국 성공신화의 표면을 한 꺼풀 벗기면 그 안에는 식민지 백성처럼 시달리며 살아가는 비정규직 노동자 600만의 암울한 현재가 있고, 죽음 같은 경쟁의 그물을 통과해야 하는 젊은이들의 거부된 미래가 있으며, 불평등의 금성철벽 안에 포로처럼 잡혀 있는 서민들의 하루하루가 있는 것이다. 범죄적 방법이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이 참혹함에서 탈출하지 못한다!

이렇게 살펴볼 때 1972년부터 1987년까지 이 나라를 지배했던 소위 유신헌법은 대한민국 독립투쟁과 건국운동의 전통에 대한 모독이고 유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소위 유신체제의 선포부터 6월항쟁의 승리까지 에 이르는 이 나라의 집권자들은 대한민국 헌정질서의 파괴자이고 따라서 대한민국의 반역자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는 김구·조소앙 같은 선열들이 피땀 흘려 쌓은 1백년 역사의 헌법정신을 지키는 일뿐만 아니라 현재의 부실한 평화와 민주주의를 더 높은 단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헌신할 책무가 주어져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해보면 우리 생존의 미래를 위협하는 잠재적 위험은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 말고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물ㆍ기후ㆍ식량ㆍ에너지ㆍ질병ㆍ환경오염 등 수많은 요인들 가운데 어느 것이 어떻게 돌변해서 우리에게 치명적 공격을 가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 여러 요인들이 지구 전체를 무대로 복잡하게 얽혀 하나의 거대한 ‘복잡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그 내부의 운동양상을 파악하는 것 자체가 인간능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이다.
위험에 대처하는 노력의 과정에도 당연히 많은 함정들이 잠복해 있을 것이다. 지구 도처에 만연한 대소 규모의 전쟁과 각종 테러는 이미 현존하는 위험이고, 독재와 선동정치 즉 파시즘의 발호도 상시적인 경계대상이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이런 사태 앞에 서 있는 우리들의 정치적ㆍ도덕적ㆍ역사적 감각이 마비되는 일이다. 한 개인으로서나 인류 전체로서나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