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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소개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 승효상

by 정가네요 2015.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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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효상 저 | 컬처그라퍼 - 13,800원

 

 

서시

01. 진실은 현장에 있다
02. 영적 성숙을 이루게 하는 건축
03. 마당 깊은 집, 그 ‘불확정적 비움’의 아름다움
04. 홀로 됨을 즐기는 고독의 집, 독락당
05. 화(和)와 화(華) 그리고 화(禍)
06. 베를린과 김수근 건축
07. 책을 불태우는 자는 결국 인간도 불태우게 된다
08. 코르도바의 골목길에는 시간의 윤기가 흐른다
09. 죽음의 형식
10. 영원한 안식은 최초의 집에 거주하리니
11. 역사는 중단함으로 존재한다
12. 보이지 않는 절
13. 보이지 않는 길
14. 배롱나무 붉은 꽃
15. 인문정신의 소산, 소쇄원
16.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출발점, 병산서원
17. 좁을망정 오기를 부리는 집, 기오헌
18. 사무치게 그리운 부석사, 수도자의 도시 선암사
19. 스스로가 풍경이 되는 도시, 페즈
20.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다운 마을
21. 성찰적 풍경, 제주
22. 르 코르뷔지에의 오딧세이
23. 대상무형(大象無形), 큰 사유는 형태가 없다
24. 위대한 침묵
25. 기억만이 진실하다, 사라지는 기념탑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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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모더니즘을 신봉하던 건축가들은 새로운 도시의 공간을 네 가지로 나누었다.

주거와 업무, 교통, 여가가 그것인데, 이상도시의 건설을 목표로 한 이 도시이론은 현대에 이르러 수많은 신도시들을 탄생시켰으나

이 도시들은 오늘날 전대미문의 새로운 도시적 문제를 양산하고 말았다.

인구의 과밀과 환경오염, 집단 이기주의, 계층 간의 갈등, 정체성의 상실, 인간소외 같은 심각한 병리현상을 잉태하여

이상향의 꿈은 결국 실패하고 만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는 우리 인간의 본성과 욕구를 계량적으로 취급하여

효율과 편리를 최선의 가치로 내세운 기능적 관점에서만 도시를 보는 사고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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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거주할 수 없는 건축, 그것은 박제이며 세트일 뿐이다.

건축 속에 영혼이 거주하게 되면 그 건축은 장소를 떠나고 시대를 떠나서 우리에게 감동으로 다가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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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건물이나 유적지는 설혹 거기 서보지 않아도 이미 많은 정보를 통해 짐작할 수 있지만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다 다른 삶의 실체적 풍경은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의 숨소리를 듣지 않으면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지도 속에 나타난 마을 구조를 머리에 넣고도 그 길에 서면,

나는 그들의 삶이 만드는 일상의 예기치 못한 풍경에 새롭게 감동받는다.

건축은 건축가가 완성하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이뤄지는 삶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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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가로서 토속적 풍경에 대해 영향력 있는 글들을 남겼던 미국의 존 B. 잭슨은 『폐허의 필요성』이란 글에서,

'폐허는 우리가 다시 돌아가야 하는 근원을 제공하며, 우리로 하여금 무위의 상태로 들어가 그 일부로 느끼게 한다'고 하였다.

내가 폐허지를 여행할 때면 언제나 머릿속을 맴도는 글귀이다.

 

나에게 건축과 도시는 무생물이 아니다.

건축이란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을 완공함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살게 되는 거주자의 삶으로 이루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나로서는,

도시 역시 태어날 뿐이어서 끊임없이 생성하고 변하는 생물적 존재라고 여긴다.

만약에 건축이나 도시가 완성되는 순간이 있다면, 어쪄면 그것은 붕괴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다.

극단적이지만 그 완성의 존재체가 폐허인 것이다.

그래서 폐허에 서면 나는 자못 비장해진다.

온갖 삶이 꿈틀대던 역사의 현장에 서서 당대의 삶을 유추하고 상상하는 일이 흥미롭기 그지없더라도,

그 상상이 끝난 후 눈앞에 펼쳐지는 폐허의 현실을 다시 응시하는 일은 내가 건축의 본질을 겸손히 되물어야 함을 요구 받는 일과 다르지 않다.  

특히 최고의 문명사회를 이루었음에도 절정의 순간에서 붕괴되어 그 형해만 남은 폐허에서는 더욱 그러했고,

그런 여행에서 돌아오면 반드시 허탈감에 빠졌다.

어떤 이유에서 세워지건, 건축이나 도시는 결국은 붕괴되기 마련이었다.

 

이탈리아의 '품페이Pompei'가 대표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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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초원은 생각보다 광활했다.

 

불과 며칠 간격으로 들판은 푸르게 되었다가 백색으로 뒤덮였다가 붉은 꽃이 다시 올라와 물들이는 등,

초원에서 전개되는 꽃들 간의 생태적 드라마를 들으면서 그 놀라운 섭리와 질서에 대해 우리 모두 말을 잃었다.

신의 정원이었으며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건축은 여기서 부질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풍경을 보는 게 여행의 마지막 단계라고 했다.

크게 깨달은 게 있었다.

꽃 이름을 아는 게 그 꽃의 의미를 발견하는 일이며 그 속에 내재된 자연의 질서를 깨닫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면 그 꽃을 다시 보았고 더욱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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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가 관광의 수입이 긴요하다면 그 관광의 형태는 위락이나 유흥이 아니라,

천 년 이상을 육지로부터 고통 받아 온 제주에서 이념과 분쟁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사유케 하고

그 속에 우리 인간의 그래도 선하고 진실됨과 아름다움을 믿게 하는 그런 관광의 형태가 강구되어야 하지 않을까.

지식인의 사유를 위한 관광, 인간의 존엄을 확인하기 위한 관광이 제주 관광산업의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말이다.

나는 그게 평화의 섬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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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찾고 기억하는 것은 '풍경風景'이란 말 때문이다.

풍경이라는 말을 뜻하는 다른 나라의 단어에는 서로 다른 뜻이 조금 포함되어 있다.

정치, 기억, 관계 등이 그러한데, 그렇다면 제주 풍경의 의미는 내가 믿는 바, 단연코 '성찰'이다.

우리의 근본을 돌아보게 하고 우리에게 자유와 평화를 다시 그리게 하는 '성찰적 풍경'이 제주일 것이 틀림없다.

이를 '메타-랜드스케이프 Meta-Landscape'라고 하자.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의 '문화풍경'에 대한 선언.

"역사적 기억 없이 아름다움은 존재할 수 없다.

과거와 그로 인한 문화풍경은 자유로운 우리 인간의 본성을 성취하도록 하며 특별히 모든 종파주의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그 풍경이 위선이면 우리의 삶도 위선이며, 그 도시가 단편적이면 우리의 삶도 부질없다.

 

제주가 가진 천헤의 아름다움이 빚는 서정적 풍경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서정적 풍경이 우리가 빚은 서사적 풍경을 더할 때, 그때에만 그 속에 사는 우리들은 존엄할 수 있을 게다.

그를 성찰적 풍경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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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는 게 몸을 움직여 이뤄지는 일이지만,

수도원에 도달하면 그때부터 여행길에 지친 육체는 쉬고 정신은 오히려 맑아져서 영혼이 사유의 길을 따라 다시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이는 치명적인 매력이다.

르토로네 수도원은 아마도 이를 위한 최적의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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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모든 도시와 건축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세운 자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아무리 튼튼하게 지었다고 해도, 중력의 힘에 의해 반드시 건축과 도시는 무너지고 만다.

때로는 경제적 이유로 붕괴되기도 하고, 더러는 자연재해로 혹은 테러로 사고로 모두 무너져 걸국은 땅의 표면 위에 가라앉아 사라지고 만다.

영원한 것은 우리가 같이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이며 그 기억만이 진실한 것이다.

 

 

 

<펌> http://jeolla.com/bbs/?tbl=suncheon&mode=VIEW&num=7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