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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리스트 카터 저 /조경숙 역 | 아름드리미디어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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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을 읽었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The Education Of Little Tree)》
조경숙 씨의 나무랄 데 없는 번역도 빛났다.
'작은나무'를 통해서 바라본 체로키 인디언들의 삶과 가르침들, 그리고 인디언들의 자연관.
마지막 몇 페이지를 읽는 동안은 정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리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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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세상을 뜨신 지 1년 만에 엄마도 돌아가셨다.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이때 내 나이 다섯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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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발한발 뜰을 가로질러 할아버지에게로 다가가 그 긴 다리에 매달렸다.
친척들이 떼놓으려고 해도 부둥켜안은 손의 힘을 풀지 않았다.
할머니 말씀으로는 울지도 않고 고함도 지르지 않고, 오직 할아버지 다리만 꼭 부둥켜안고 있었다고 한다.
친척들은 떼내려 하고 나는 떨어지지 않으려 하면서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이고 있노라니,
할아버지가 가만히 몸을 굽혀 내 머리 위에 손을 얹어놓으시고는,
"그냥 내버려둬."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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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이에 앉았다.
할머니가 손을 뻗어 할아버지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자 할아버지도 내 무릎 위로 손을 뻗어 할머니 손을 가만히 잡았다.
편안하고 따뜻한 기분이 내 몸을 부드럽게 훑고 지나갔다.
그래서인지 나는 금방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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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자갈길로 내려섰을 때는 밤이 한창 이슥해서였다.
항아버지가 다시 걷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 뒤를 따랐다.
유리가 쨍 하고 깨질 것처럼 공기가 차가웠다.
둥그런 수박을 반으로 쪼개놓은 듯한 달이 얼굴을 내밀고, 저 멀리 구부러져 돌아간 곳까지 우리 앞길을 은빛으로 비춰주었다.
자갈길을 벗어나, 가운데로는 풀이 자라고 양옆으로 마차의 바큇자국이 선명한 흙길로 들어서자
산이 바로 내 옆에 와 있는 것이 느껴졌다.
사실 이때 우리는 시커먼 산그림자 속에 들어가 있었다.
반달은 높은 산등성이 바로 위에 높다랗게 걸려 있어서, 올려다보려면 머리를 완전히 뒤로 젖혀야 했다.
나는 시커멓게 덮쳐누르는 듯한 산의 무게에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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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코리나무로 만든 테두리에다 사슴 가죽을 잘 묶어서 만든 침대는 부드럽게 쿨렁거렸다.
침대에 누우니 열린 창문으로 개울가에 서 있는 나무들이 희미한 빛 속에서 귀신처럼 시커멓게 보였다.
울컥 엄마 생각이 나고, 낯선 곳에 와 있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때 누군가가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침대 옆 마룻바닥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널따란 치맛자락을 마루에 펼치고 흰머리가 많이 섞인 땋은 머리를 어깨에서 무릎으로 늘어뜨리고 앉아 계셨다.
할머니도 나처럼 창밖을 바라보고 계셨다.
이윽고 할머니가 낮고 부드러운 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숲도, 가지를 스치는 바람도, 이젠 모두 그가 온 걸 알지.
아버지 산이 노래 불러 맞아준다네. 아무도 작은 나무를 무서워하지않아. 작은 나무가 착한 걸 아니까...'
할머니는 노래를 부르면서 몸을 천천히 앞뒤로 흔들었다.
그러자 나도 바람이 재잘거리고, 시냇물 라이나가 내 이야기를 노래 부르며 형제들에게 전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노래 속의 작은 나무가 바로 나라는 걸 알고 있었다.
산 형제들이 날 좋아하고 나하고 같이 있고 싶어하는 걸 보니 기뻤다.
그래서 나는 울지도 않고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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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산을 바라보며 아침 식사를 했다.
산꼭대기에 폭발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반짝이는 빛들이 하늘 위로 솟구쳤고,
얼음에 덮인 나뭇가지들은 햇빛을 받아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거렸다.
아침 햇살은 물결처럼 아래로 내려가면서 밤의 그림자들을 천천히 벗겨가고 있었다.
정찰을 맡은 까마귀 한 마리가 하늘을 날면서 날카롭게 깍깍 세 번 울었다.
아마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알리는 신호였으리라.
이제 산을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천천히 하품을 하고 있었다.
하품으로 토해낸 미세한 수증기들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해가 나무에게 죽음의 갑옷인 얼음을 서서히 벗겨감에 따라, 산 전체에서 살랑거리고 소곤거리는 소리들이 되살아났다.
할아버지도 나처럼 눈을 모으고 귀를 기울이고 계셨다.
아침 바람이 나무 사이에서 낮은 휘파람 소리를 일으키는 것에 맞추어 산의 소리도 점점 커져갔다.
"산이 깨어나고 있어."
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할아버지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래요, 할아버지. 정말 산이 깨어나고 있어요."
그때 나는 다른 사람들은 잘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을 할아버지와 내가 함께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라는 걸 깨달았다.
밤의 그림자는 이제 점점 더 아래로 밀려나더니, 그리 넓지 않은 풀밭을 가로지르면서 뒷걸음쳤다.
풀들이 무성하게 자란 그 풀밭은 햇빛을 받아 물결처럼 반짝였다.
그 풀밭은 산의 품속에 폭 안겨 있는 모양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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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에게 있어 '법'이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또 잘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으면서
무조건 권력만 휘두르는 괴물을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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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사랑과 이해는 같은 것이었다.
할머니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랑할 수 없고, 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더더욱 없다.
신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 이해하고 계셨다.
그래서 두 분은 서로 사랑하고 계셨다.
할머니는 세월이 흐를수록 이해는 더 깊어진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보시기에 그것은 유한한 인간이 생각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것들 너머에 있는 어떤 것이었다.
그래서 두 분은 그것을 'kin'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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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서 봄이 오면 강인한 인디언 제비꽃들이 땅을 뚫고 나와 작고 푸른 꽃을 피운다.
자신들의 시대를 격렬하고 끈질기게 살다간 영혼들을 머뭇머뭇 위로라도 하는 듯이.
히코리나무로 만든 혼인 지팡이도 군데군데 흠집이 나긴 했지만 부러지지 않은 채 그곳에 꿋꿋이 서 있었다.
그 지팡이에는 그분들이 슬플 때나 기쁠 때, 싸웠을 때마다 표시해둔 자국들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그 지팡이는 그분들의 머리맡에서 두 분을 하나로 묶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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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나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기거나 좋은 것을 손에 넣으면 무엇보다 먼저 이웃과 함께 나누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말로는 갈 수 없는 곳까지도 그 좋은 것이 퍼지게 된다.
그것은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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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을 부리고 교활한 생각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해칠 일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 이익 볼 생각만 하고 있으면...
영혼의 마음은 점점 졸아들어서 밤톨보다 더 작아지게 된다.
몸이 죽으면 몸을 꾸려가는 마음도 함께 죽는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이 다 없어져도 영혼의 마음만은 그대로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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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마음을 더 크고 튼튼하게 가꿀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한 가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것뿐이다.
게다가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 부리는 걸 그만두지 않으면 영혼의 마음으로 가는 문은 절대 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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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하고 마음이 아팠다.
할아버지는 네 기분이 어떤지 잘 안다, 나도 너하고 똑같은 기분을 맛보고 있다.
사랑했던 것을 잃었을 때는 언제나 그런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뿐이지만,
그렇게 되면 항상 텅 빈 것 같은 느낌 속에 살아야 하는데 그건 더 나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
"링거가 그다지 충실한 개가 아니어서 우리가 별로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았다고 해보자.
그러면 아마 기분이 더 안 좋았을 것이다."
맞는 말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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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닭싸움이 내내 끊이지를 않는 거야.
뭐니뭐니해도 워싱턴 시의 가장 큰 문제는 너무 많은 정치가들이 그곳에 산다는 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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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번개가 쳤다.
푸른 불덩이가 산꼭대기의 바위를 정통으로 때린 다음 그 푸른 불꽃을 공중으로 퍼뜨렸다.
갑자기 돌풍이 몰아치며 나뭇가지들이 휘어지더니 그 뒤를 이어 후두둑거리는 굵은 빗방울들이 서커먼 구름에서 퍼붓기 시작했다.
자연의 비밀은 이미 다 밝혀졌고, 자연에 영혼 따위는 없다고 하면서 자연을 비웃는 사람들은
산속의 봄태풍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일 것이다.
자연이 봄을 낳을 때는 마치 산모가 이불을 쥐어뜯듯 온 산을 발기발기 찢어놓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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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어스름 저녁빛이 내리기 시작하면 쏙독새가 울기 시작한다.
불빛을 좋아하는 그 새는 등잔불을 켜놓으면 조금씩 조금씩 오두막집 가까이로 날아와 결국 사람들이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울어댄다.
이 쏙독새 우는 소리를 들으면 밤에 잠을 잘 자고 좋은 꿈을 꾸게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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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그 사람을 그리워한다면, 문상 비둘기는 절대 그 사람을 위해서 울지 않는다.
문상 비둘기는 슬퍼해줄 사람이 없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만 우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 비둘기가 우는 소리도 그렇게 처량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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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은 절대 취미 삼아 낚시를 하거나 짐승을 사냥하지 않는다.
오직 먹기 위해서만 동물을 잡는다.
즐기기 위해서 살생하는 것보다 세상에 더 어리석은 짓은 없다고 할아버지는 분개하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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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사의 시신은 나무상자에 넣어져 유족들이 있는 일리노이 주로 보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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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쳐진 손바닥에는 검은 흙 한 줌이 주르르 흘러내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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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나는 1억 명 중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만큼 좋은 운을 타고 태어났다고 한다.
나는 자연에서, 어머니인 모노라에게서 태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산에 온 첫날 밤에 할머니가 노래하신 것처럼 자연 속의 모든 것을 형제자매로 가질 수 있었다.
할머니는 나무와 새와 시냇물, 게다가 비와 바람에게서까지 아낌없는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좀체 없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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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주여..."라고 했을 때,
개구리는 굵은 목소리로 "그르르르 르르럭!"이라고 하여 윌로 존을 대신해 대답해주었다.
그래서 그분은 울었다.
어쨌든 그 사건으로 그분의 마음속에 뭉쳐 있던 응어리가 조금은 풀린 것 같았다.
그 다음부터 윌로 존의 눈빛은 언제나 반짝였고, 나를 바라보는 그분의 얼굴에는 이제 검은 그림자가 많이 걷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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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남에게 무언가를 그냥 주기보다는 그것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게 훨씬 좋은 일이다.
받는 사람이 제힘으로 만드는 방법을 배우면 필요할 때마다 만들면 되지만,
뭔가를 주기만 하고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으면 그 사람은 평생 동안 남이 주는 것을 받기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 사람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게 되기 때문에 결국 자신의 인격이 없어지고 자신의 인격을 도둑질당하는 셈이 되지 않겠는가,
이런 식으로 하면 그 사람에게 친절한 것이 도리어 불친절한 것이 되고 만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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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색한 것과 절약하는 것은 다르다.
돈을 숭배하여 돈을 써야 할 때도 쓰지 않는 일부 부자들만큼이나 나쁜 게 인색한 것이다.
그런 식으로 살면 돈이 그 사람의 신(神)이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인생에서 어떤 착한 일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써야 할 때 돈을 쓰면서도 낭비하지 않는 것은 절약하는 것이다.
와인 씨는 버릇은 또 다른 버릇을 만들어내게 마련이라서,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으면 결국 성격도 나빠진다고 했다.
그래서 돈을 낭비하는 버릇이 있는 사람은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그 다음엔 생각을 허술히 낭비하게 되며,
결국 나중에 가서는 모든 걸 낭비하게 된다.
정치가들은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허술해지면 권력을 쥘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정치가는 느슨한 사람들 위에 군림하다가 얼마 안 가 독재자로 변한다.
와인 씨는 절약하는 사람들은 절대 자기 머리 위에 독재자를 갖는 법이 없다고 하셨다.
옳은 말씀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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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씨는,정직하고, 절약하고, 항상 최선을 다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야말로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만일 이런 가치들을 배우지 않으면 기술면에서 아무리 최선의 것들을 익혔다 하더라도 결국 아무 쓸모도 없다.
사실 이런 가치들을 무시한 채 현대적이 되면 될수록, 사람들은 그 현대적인 것들을 잘못된 일, 부수고 파괴하는 일에 더 많이 쓴다고 하셨다.
맞는 말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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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가을은 그 어느 때보다 빨리 찾아왔다.
가을을 처음으로 알려주는 것은 하늘을 등지고 서 있는 높은 산등성이들을 따라
빨갛고 노란 단풍잎들이 시원스레 불어대는 바람 속에서 흔들리는 모습이다.
그곳에는 벌써 서리가 내렸을 것이다.
이제 호박색으로 변한 해는 골짜기 숲 사이로 비스듬한 빛을 내리쬐었다.
서리는 아침마다 조금씩 더 산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그것은 한 번에 모든 것을 죽이는 본격적인 서리가 아니라,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이 더 이상 여름을 붙잡고 있을 수 없으며,
죽음의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는 엷디엷은 서리였다.
가을은 죽어가는 것들을 위해 정리할 기회를 주는, 자연이 부여한 축복의 시간이다.
이렇게 정리해나갈 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했어야 했던 온갖 일들과... 하지 않고 내버려둔 온갖 일들이 떠오른다.
가을은 회상의 시간이며... 또한 후회의 계절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하지 못한 일들을 했기를 바라고... 하지 못한 말들을 말했기를 바란다.
나 역시 와인 씨에게 노란 코트를 받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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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무야, 늑대별 알지?
저녁에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보이는 별 말이야.
어디에 있든지 간에 저녁 어둠이 깔릴 무렵이면 꼭 그 별을 쳐다보도록 해라.
할아버지와 나도 그 별을 볼 테니까, 잊어버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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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나는 아침의 탄생을 지켜보면서 산꼭대기에 앉아 있다.
햇빛을 받은 얼음이 찬란한 빛을 뿜으며 반짝거리고,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린다.
"산이 깨어나고 있어."
그러면 나는 그 창가에 서서 이렇게 대답한다.
"네, 할아버지. 산이 깨어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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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마음만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을 이해하거나 신경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 역시 몸의 마음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았고 이해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연은 나에게 지옥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고, 내 출생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으며, 악의 씨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자연은 그런 말들이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있노라니 나도 그런 말들을 잊을 수 있었다.
내가 개들과 함께 골짜기길로 내려오기 시작한 것은
태양이 산등성이 너머로 가라앉으면서 하늘협곡 사이로 마지막 햇살을 비출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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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나는 그의 영혼이 눈 속 깊숙이 빨려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영혼이 몸을 떠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자 한 줄기 세찬 바람이 우리 사이를 지나 지나쳐가더니 늙은 소나무 가지를 흔들어댔다.
할아버지는 그 바람이 윌로 존이라고 하셨다.
그는 그만큼 강한 영혼을 갖고 계셨다.
우리는 그 바람이 산등성이에 서 있는 높은 나뭇가지들을 휩쓸고 난 뒤 산허리로 달려내려가
까마귀떼를 공중으로 날아오르게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까마귀들은 까악까악 울면서 윌로 존과 함께 산 아래로 내려갔다.
할아버지와 나는 윌로 존이 산등성이와 산봉우리들 저 너머로 사라져가는 모습을 언제까지나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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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발이 미끄러져 굴러 떨어지신 것은 이렇게 산길을 오르던 중이었다.
할아버지는 혼자 힘으로 일어서지 못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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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몸의 마음이 졸기 시작하고 영혼의 마음이 그것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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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마음이 다시 깨어났다.
할아버지가 모자를 집어달라고 하셨다.
내가 건네드리자 할아버지는 그것을 머리에 쓰셨다.
내가 손을 잡으니 할아버지의 얼굴에 가만히 웃음이 번졌다.
"이번 삶도 나쁘지는 않았어.
작은 나무야, 다음번에는 더 좋아질 거야.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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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킨슨 씨 아들과 파인 빌리가 관을 만들었다.
나도 도우려 했다.
남이 나를 도와줄 때는 내가 앞장서서 더 많이 일해야 한다고 할아버지가 가르쳐주셨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거의 그렇게 하지 못했다.
파인 빌리 역시 울음을 멈추지 못해서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는 자기 엄지손가락을 쇠망치로 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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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기 직전이었다.
나는 칼길에서 골짜기길로 내려오고 있었다.
할머니가 오두막집 뒷베란다에 앉아 계시는 모습이 보였다.
할머니는 그곳에다 흔들의자를 옮겨놓으셨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할머니는 나를 쳐다보시지 않았다.
할머니는 저 멀리 산꼭대기 쪽을 올려다보고 계셨다.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걸 알았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마음에 들어하시던, 그 주황과 초록과 빨강과 노랑 무늬의 드레스를 입고 계셨다.
할머니의 가슴 앞섶에는 나에게 쓴 편지가 꽂혀 있었다.
작은 나무야, 나는 가야 한단다.
네가 나무들을 느끼듯이, 귀 기울여 듣고 있으면 우리를 느낄 수 있을 거다.
널 기다리고 있으마.
다음번에는 틀림없이 이번보다 더 나을 거야.
모든 일이 잘될 거다.
할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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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보이는 무척이나 편안하게 숨을 거두었다.
나는 그를 깊이 묻고 나서 들짐승에게 파먹히지 않도록 돌을 잔뜩 쌓았다.
블루보이는 코가 발달되어 있으니까 아마 지금쯤 벌써 고향산을 향해 가고 있을 것이다.
블루보이라면 문제없이 할아버지 뒤를 따라잡을 것이다.
***
저자의 할어버지는 소설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저자가 열 살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
저자인 포리스트 카터(1925~)는 1979년에 죽었다.
카터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그의 사후 10여 년이 자나고 나서부터 점점 높아져갔다.
1976년에 처음 출판되었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얼마 안 가 절판되고 말았지만,
1986년 뉴멕시코 대학출판부에서 복간되자 해가 갈수록 판매부수가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결국 1991년에는 무려 17주 동안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1, 2위에 기록되었다.
또 이 책은 같은 해 제1회 애비상(American Book of the Year)을 획득했는데,
전미 서점상 연합회가 설정한 이 상의 선정 기준은 서점이 판매에 가장 보람을 느낀 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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