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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소개

한글전쟁 - 우리말 우리글 5천 년 쟁투사

by 정가네요 2014.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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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식 저 | 서해문집  1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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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생활은 언어를 사용하는 시민과 사회의 수용 태세를 벗어나 법이나 강제, 또는 당위성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말에는 과거형, 미래형, 존댓말 등 다양한 어미변화가 이루어진다.

반면에 한문에는 그러한 것이 없다.

결국 우리말의 어미변화를 한자로는 기록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햐여 우리 조상은 서기체 표기법을 대신할 더 좋은 방식을 찾았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우리가 잘 아는 향가를 기록한 향찰 표기법이다.

이때 '향가(鄕歌)'란 중국 노래나 시가에 대해 '신라 고유의 노래'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고

'향찰(鄕札)'이란 중국어에 대해 '신라 고유의 언어'란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서기체와는 달리 향찰은 한자의 뜻과 소리를 동시에 사용해 그 시대에 우리 겨레가 사용하던 말에

가능한 가깝게 표기하기 위해 개발한 방식이란 점만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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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글이라는 우리 고유의 글자가 동아시아에서 가장 늦게 창제되었을까?

첫째, 이두를 비롯해 우리 선조가 개발한 한자를 이용한 차자표기법(借字表記法)이 뛰어나

우리가 사용하는 말을 표기하는 데 다른 문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둘째, 문자 생활을 필요로 하는 지식인층의 한자 사용 능력이 매우 뛰어나 이를 사용하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은 다른 문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러면 왜 갑자기 조선 제4대 임금 대에 들어와 우리 문자가 필요하게 되었을까?

첫 번째로, 그 무렵 극단적인 혼란을 겪고 있던 한자 발음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였다.

한자가 뜻글자이다 보니 소리를 표기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오늘날로 치면 발음기호가 없었던 것이다.

두 번째 이론은 한자에 예속된 채 살아온 우리 겨례를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우리말을 기록할 수 있는 새로운 문자를 창제했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세종 대에 이르러 안정기에 접어든 조선 정부가 통치 철착을 온 백성에게 널리 알려

나라의 기틀을 확고히 하기 위해 만든 것이 한글이라는 이론이다.

 

최만리를 비롯한 동시대의 주류 선비들로서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문자로 인해 기존의 학문적 질서,

나아가 사고의 틀이 변모할 것을 우려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이는 오늘날 누군가가 나서서 세계화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영어 공용화'를 주장할 때

대다수 시민이 보일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만리의 불행은 한글이라는 문자가 태어난 지 6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한민족 모두에게 지적 세례를 안겨줄 만큼 뛰어날 뿐 아니라

디지털 시대를 맞아 오히려 세계인이 인정할 만큼 탁월한 글자라는 사실로부터 비롯되었다.

 

한자나 이두로 기록할 때 공문이나 학술적 문장의 경우에는 특별한 어려움을 겪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인지의 말대로 우리 겨례는 훈민정음이 탄생하기 전까지

바람 소리나 학의 울음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를 그대로 표기할 수 없었다.

결국 한자나 이두로는 결코 표기할 수 없었던 우리 겨레의 말을 드디어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우리말 독립선언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게 정인지 서문인 셈이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 겨레는 말로만 이어져 내려오던 문명과 문화, 정신과 감정을 표기해

역사에 기록하고 후대에 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보다 더 본질적인 문자의 역할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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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최세진은 왜 한자 학습서인 《훈몽자회》에 한글 학습과 관련된 내용을 실은 것일까?

이와 관련해 최세진은 자신의 의도를 책의 '범례' 편에 남겨놓았다.

'무릇 후미진 곳이나 지방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는 당연히 언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가 많으므로

여기에 언문의 자모(字母)를 함께 적음으로써 먼저 언문을 배우고 다음에 《훈몽자회》를 배우도록 하였다.

그렇게 하면 한자를 모르는 이라도 언문을 배워 한자를 알게 되면

가르쳐주는 선생이 없다 해도 머지않아 한자를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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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는 안타깝게도 우리말을 잘하고 우리글을 잘 쓰는 사람이 흔치 않다.

그러나 500만 시민 가운데 자신의 우리말 실력을 키우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대신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잘하기 위해서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는 사람은 차고 넘친다.

그들이 배운 외국어를 실제로 사용할 사람은 극히 소수인데도 말이다.

실제로 번역은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전혀 없는 일반 시민을 위해 이루어지는 작업이다.

그리셔 번역이 중요한 것이다.

 

영어란 세계 교섭의 전장(戰場)에 나아가야 할 전사가 갖추어야 할 무기에 불과하다

따라서 전사의 능력이 무기를 다룰 수준이 안 된다면 아무리 좋은 무기를 갖추었다 해도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결국 우리 시민 모두가 갖추어야 할 능력은 영어가 아니라

교섭에서, 외교에서, 무역에서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언어적, 문화적, 정치외교적, 법적, 사회적 능력인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은 당연히 한국인으로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 한국의 법적 사회적 구조에 능통해야 한다.

그런 바탕 위에 영어로 무장했을 때만이 비로서 세계 전장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어떤한가.

본질은 망각한 채 수단만을 획득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듯이 부산을 떨고 있다.

그런 까닭에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의 영어 열풍은 본질에 접근하는 문제 해결책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오합지졸(烏合之卒)이 전장에 나아가기 전에 자신의 무기만을 챙기는 부산한 모습일 뿐이다.

번역은 그러한 면에서 한 나라의 지적 수준을 확장, 상승시키는 소중한 작업이다.

우리말, 우리글의 정체성을 지키고 나아가 그에 인류의 지적 성화물을 덧붙이는 것 또한 번역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소중한 작업을 개별 번역가, 더 확장하면 외서(外書)를 출간하는 출판사에 맡겨 놓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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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어로는 '부추'지만 가장 널리는 '정구지' 또는 '솔'이라 불리는 채소의 언어 지도다.

반면에 부추라는 표준어는 대한민국 전체로 보자면

매우 좁은 지역, 물론 서울을 중심으로 한 곳에서만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부추는 고추, 산초, 후추 등과 함께 '椒(산초나무 초)'라는 한자에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반면에 정구지나 솔은 누가 봐도 우리말이다.

그런데 표준어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우리 언어생활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면

이를 '문화 살인(文化殺人)'이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다.

더욱 적극적인 방언, 사투리 살리기야말로 한글전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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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네가 너무너무 좋아.

이 표현은 오늘날 '너무' 많이 들어 특별하단 생각도 들지 않는다.

본래 '너무'란 '정해진 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라는 뜻의 부사다.

그런데 이 표현이 오늘날에 와서는 부정적인 뜻보다 긍정적인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훨씬 많다.

'보통을 훨씬 넘는 정도로'라는 뜻으로, 이 정도에서 머물면 누구나 수긍하고 넘어갈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어휘가 시대에 따라 그 뜻이 변화, 확대되는 건 매우 흔한 일이므로.

하지만 심각한 상황은 이제부터다.

 

우리말 표현이 단순화되고 있다는 것은 단적으로 '보통을 훨씬 넘는 정도로'라는 뜻의 부사가

'너무' 말고도 무척 많다는 점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가 있듯이 우리말은 부사가 다른 언어에 비해 발달한 언어니 말이다.

'무척, 매우, 아주, 대단히, 굉장히, 훨씬, 엄청, 참으로, 정말(로), 상당히, 꽤'

이외에도 '보통 정도를 넘어선 상태'를 나타낼 수 있는 구어체 표현은 참으로 많다.

그러나 오늘날 시민들, 특히 젊은 층의 언어생활에서 이런한 표현을 찾아보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와 같은 뜻을 나타낼 때는 십중팔구 '너무'를 사용한다.

결국 '너무'라는 부정적 표현이 대부분의 긍정적 또는 가치 중립적 표현을 몰아내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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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최근 들어 급속히 진행되는 언어 변화 가운데 하나가 우리말 명칭이 외국어로 변하는 것이다.

조리사/요리사 - 셰프, 쉐프, 조리법 - 레시피, 미용사 - 헤어 디자이너

커피 전문가 - 바리스타, 법무법인 - 로펌, 전문의원(과) - 클리닉,

회원 자격 - 멤버십, 가격 - 프라이스, 놀라움 - 서프라이즈, 휴게실 - 라운지

가게/상점 - 마트, 보호 - 케어, 치유 - 힐링, 심리(적) - 멘탈, 고급 - 럭셔리

 

위에서 든 예는 구우일모(九牛一毛)에 불과하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외국어의 사용을 부추기는 곳이 바로 언론이라는 사실이다.

영국이나 일본 등 많은 나라가 방송 용어를 표준어로 정하고 있는 현실을 참고한다면

언론이 한 나라의 언어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에서는 자국어의 파괴에 오히려 언론이 앞장서고 잇다.

그러니 오늘날 파괴되고 있는 우리말의 실태에 대해 언중에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이런 현실에서는 언중 또한 언론의 피해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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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우리가 우리말 전쟁, 한글전쟁에서 패하지 않는 길은 적이 누구인지 분명히 아는 것이다.

한글의 적은 누구인가?

우리말의 적은 누구인가?

우리 문화의 적은 누구인가?

 

한글은 우리는 물론, 세계가 인정하는 뛰어난 글자다.

그런데도 태어나서 500년이 넘은 오늘날까지도 끝없이 대내외적인 도전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한글은 무수한 도전을 슬기롭게 헤쳐왔다.

그런 결과를 가져오기까지는 한글의 탁월한 우수성과 더불어

우리말을 지키려고 온몸을 다해 싸워온 우리 선조와 겨레의 힘이 큰 구실을 했다.

 

그러나 그토록 오랜 기간, 그토록 많은 도전을 극복해온 한글이 최근 들어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 시회는 이제, 우리말의 나라가 아니라 외국어의 나라를 준비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세력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수백 년 동안 끊임없이 적의 포화를 맞아야 했던 한글과 우리말이었지만 그때마다 목숨을 걸고 지키려는 집단은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상황은 과거에는 없었던 모습이다.

 

'한글의 천 년'은 가능할 것인가?

우리말은 천 년 후에도 사랑남을 것인가?

똑 부러지는 정답이 없는 질문을 던지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대답은 이제, 우리 모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