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내 앞자리에 앉은
김산 김종인 선생이 나한테 쪽지 글을 하나 보내왔습니다.
한번 읽어보라 하고선 밖으로 휭 나가는 걸 보니
담배 한 대 피고 오려나 봅니다.
주는 글을 읽어 보고선 내 혼자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내 마음을 어쩌면 그렇게 똑같이 썼을까요?
입이 무거운 김 시인이 주는 글을 혼자 보기 아까워 여기 올려봅니다.
귀싸대기 한 대
- 김산
수요일 7교시 2학년 식물과 수업 시간에
귀싸대기 한 대 올려붙였다
이제 수업 시간이니까 조용히 하자 해도 막무가내,
옆 사람과 잡담에다 농담하려 들고 공부는 뒷전,
자꾸만 불쑥불쑥 말하는 녀석, 주의를 주고,
눈짓하고, 복도로 나가 책을 읽고 오라하고,
다시 앉아 책 펴고 따라 읽어라 하고,
일어나서 혼자 읽어 보라 해도 엉뚱한 소리로
옆 친구에게 말 걸기, 필기는 괴발개발,
수업에 방해되니 그러지 마라고 당부해도
어느새 구시렁구시렁 혼잣말에,
조금하다 보면 또 엎드려 자는 서너 명,
속미인곡은 어려우니 따라 읽고 받아쓰고
집중해서 보라 해도 자꾸만 엉뚱한 소리에
농담이나 하려는 녀석의
귀싸대기를 한 대 올려붙였다
너무너무 화가 나서 가만히 있는 녀석의
보드라운 뺨을 소리가 나도록 순식간에,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찰나에 피할 틈도 주지 않고
귀싸대기 한 대 올려붙였다
녀석은 갑자기 당한 일이라
생각할 틈도 없이 펑펑 울며
의자를 박차고 온갖 발악을 다하며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나가버렸다
복도에서도 한참 동안 씩씩대며 소리 지르며
우유통을 걷어차며 발악을 한다 귀싸대기 한 대!
마지막 남은 오 분의 수업을 거두고
어리둥절 쳐다보는 아이들 뒤로 하고 교무실로 왔다.
어찌 해야 하나. 참을 걸, 그냥 내버려둘 걸,
모른 채 할 걸, 대충 넘어갈 걸,
후회하며 가슴을 치며 뉘우치며
휴게실로 가 쓰디쓴 담배를 피워 물었다
교단에서 보낸 30여 년이 와르르 무너지는데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지
가르치는 것이 다 허무하고
어디론가 봄이 오는 저 들판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수요일 오후,
고등학교 진학할 때, 뒤에서부터 끊어
갈 데 없어 들어온 녀석들,
어릴 때부터 공부라곤 제대로 해 본 적 없이
이혼에, 별거에, 특수반 아이에, 학습부진아에,
현실 부적응 학생에, 자폐에, 컴퓨터 중독에,
결손 가정에 방치되어 온 녀석들,
어찌 보면 정말 불쌍한 우리 아이들
컴퓨터 오락이나 하면서 밤을 새우고 온 녀석들,
감옥 같은 학교라며 반항만 하는 녀석들,
교과서는 사물함 속에 처박아 두고
필기구도 없이 앉아 있는 녀석들,
한 시간을 적당히 놀고 잠이나 자고
농담이나 하려는 녀석들 속에서
고문으로 된 속미인곡을 가르쳐서 무얼 하나.
따라 읽어라 한들 무얼 하나
수능은 필요 없고 대학이야 원서만 내면 합격인데
굳이 어려운 고전을 배워 무얼 하느냐고,
적당히 출석이나 하고 졸업장이나 받으면 되는 거지,
하기 싫은 공부를 왜 굳이, 억지로 시키려고 하느냐고
제발 좀 내버려두라고 거부하고, 반항하고,
눈을 감는 아이들에게 정말이지 이게 무얼 하는 거냐고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은 자조에, 넌덜머리나는 수업에,
이제 그만 모든 걸 버리고 싶은 귀싸대기 한 대!
2학년 식물과 수요일 7교시 수업에,
나의 뺨에, 무너져가는 실업 교육에,
교육개혁이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쑥대밭 정책에,
교과부에 정말이지 귀싸대기 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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