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가던 날,
그를 배웅하지 못해 무척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엊그제 편히 누워 있는 그를 1년 만에 만나고 오니 이제 조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를 만나러 가던 날, 학교에서
김선굉 시인이 그를 추모하며 쓴 시를 컴퓨터로 옮겨 쓰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서
옆자리의 동료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먹었습니다.
바람재 김양헌, 그래도 그가 그립습니다.
슬하 - 김양헌에게 / 김선굉
오늘 이곳은 비 오고 천둥소리 요란하다.
비에 젖는다는 것.
번개가 실어나르는 천둥소리
우르르 우르르 가슴에 사무친다는 것.
오늘은 너 참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서리 묻은 모발을 바람에 날리며 비에 젖고 있으리.
너는 이제 그곳 어버이의 슬하에서
어버이와 함께 비에 젖으며,
불상유통不相流通의 담이 허물어지는 것 보고 있으리.
그대 그 슬하가 많이 그리웠던가.
먼 길을 돌아 느리게 당도해도 될 길을,
아프고 가파른 지름길을 찾아
맨발로 피 흘리며 아프게 걸어간 것인가.
나는 응시凝視였던가.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면서도,
네 몸이 그토록 뚜렷이 써내려간 상형문자를
단 한 글자도 제대로 읽지 못 했다니.
그대 오늘 내게 강한 비와 우레로 와서,
긴 턱수염과 깊은 눈빛으로
달빛 아래 몽돌 구르는 소리로
내 지독한 근시近視를 일깨워주고 있다.
이제 네가 들여다본 생의 심연이
얼마나 깊고 어두웠는지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대 간이 아팠던가.
간만 아팠던가.
그러면 이제 그 아픔은 간에게 주고,
복사꽃 흐드러진 어버이의 슬하에서,
그대가 써내려간 몸의 문장文章을 어루만지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