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날짜의 신문에
김선우 시인이 쓴 글에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 내가 아직 이십대였던 어느 해,
산사에 찾아가 머물 때였는데 어디선가 포장이 몹시 꼼꼼하게 된 소포가 왔다.
가위를 찾아 포장된 끈을 자르려고 할 때 스님이 말씀하셨다.
“끈은 자르는 게 아니라 푸는 거다.”
포장 끈의 매듭을 푸느라 한동안 끙끙거리며 나는 짜증이 났다.
가위로 자르면 편할 걸 별것 다 나무라신다고 속으로 구시렁거렸지만, 나는 끙끙거리면서도 결국 매듭을 풀었다.
다 풀고 나자 스님 말씀,
“잘라 버렸으면 쓰레기가 됐을 텐데, 예쁜 끈이니 나중에 다시 써먹을 수 있겠지?”
천진하게 웃으시더니 덧붙이셨다.
“잘라내기보다 푸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인연처럼!” - 한겨레(12/31)
새해가 밝았습니다.
그 누구에게나 지난 한 해는 참으로 힘들었을 겁니다.
오늘 떠오르는 해가 어제의 그 해와 크게 다를 바 없겠지요.
그러나 살을 에는 차가운 바람을 무릅쓰고
수 많은 사람들이 굳이 산꼭대기나 바닷가를 찾아
어둠을 가르고 떠오르는 해를 보고자 하는 것은
그 밝은 해를 보고 나면
머잖아 해처럼 밝은 내일이 내 앞에 다가올 거라는 바람 때문일 테지요.
그 희망 덕분에 어제의 고단함도 모두 잊고 말입니다.
새해가 온다고,
수 많은 사람들이 손전화로 문자를 보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문자를 보며
반가움과 함께 씁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웬일일까요?
'바람재 들꽃'이란
들꽃 카페를 운영하며 느낀 것이 있습니다.
생면부지의 카페 식구들이 부지런히 사랑방을 찾는 것은
일상의 고달픔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가볍게,
그것도 익명으로 된 다른 사람의 삶을 엿볼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정情이란 건 자연스럽지 못하고 의례적인 말로 인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보여주는 따뜻한 속마음으로 인해 생길 겁니다.
카페 식구들이 사랑방에서 스스럼없이 자기 모습을 보여주고
털어 놓기 어려운 온갖 얘기를 펼쳐놓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 정 때문이겠지요.
귀찮다고 해서 꽉 묶인 매듭을 가위로 싹둑 쉽게 자르지 않고
차근차근 푸는 그 정성이 정겨운 것 아닐까요.
왜 '바람재 들꽃'에서는
다른 카페에서 흔히 보내는 전체 메일을 그렇게 아끼느냐고 묻는 분들이 더러 계십니다.
바람재 들꽃을 개설한 지 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저는 아직 한 번도 전체메일을 보낸 적이 없습니다.
싹둑싹둑 가벼이 자르기보다는
아직도 끙끙거리며 매듭을 풀고 있는 중이라고 하면 변명이 될는지요.^^
제 블로그에 오시는 모든 분이
새해에는 맑고 깨끗한 복 많이 지으시고,
소망하는 것들 모두 이루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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