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녀석의 어머니는 집에 계시지 않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중학교 2학년 때 집을 나가셨습니다.
그 후로 녀석은 조금씩 빗나가기 시작했습니다.
1학년 때는 개근을 했는데 2학년 때는 가끔씩 무단조퇴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폭행사건에 연관되어 다른 학교로 전학갈 것을 요구받고
우리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전학을 온 이후에도 녀석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공부하는 것보다 좋았습니다.
그러다가 2학년말에 또 폭행사건에 연관되어
결국 다른 학교로 전학갈 것을 다시 한번 권고받게 되었습니다.
요즘의 중고등학교에서는 퇴학처벌이 없어진 까닭에
최고로 무거운 처벌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도록 권고하는 것입니다.
어찌어찌 학기말을 보내고 새학년이 되었지만
녀석은 줄곧 전학갈 것을 요구받았습니다.
행상으로 생계를 이어가느라 며칠에 한 번씩 집에 오시는 지수의 아버지는
아이가 또 다시 전학을 갈 수는 없으니 어떤 처벌이라도 받을 테니 제발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새로 간 학교이기에 뒤에서 가만히 상황을 보고 있던 나는
3학년 신학기에 내 반 소속이 된 녀석을 한번 붙잡아 보고 싶었습니다.
주위에선 모두가 녀석은 붙잡기 어려울 거라고 얘기했지만
학생부 샘과 교감 샘, 교장 샘을 졸라 내가 한번 맡아 보겠다고 했습니다.
녀석은 정말 좀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기 때문에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녀석은 1년 내내 나를 답답하게 했습니다.
꾸지람을 하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어떨 땐 소리쳐 정말 욕을 하기도 했습니다.
'나쁜 녀석 같으니라구.
사람이 상대가 진심을 보이면 자신도 조금은 진심을 보여 줘야지.
그렇게 선생님 속을 몰라주느냐?'고 말입니다.
녀석은 늘 이마를 잔뜩 찌푸리고 다녔습니다.
"넌 얼굴도 예쁘고
웃으면 웃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으니
자주 웃어서 이마에 주름살이 생기지 않도록 해"
나는 틈 날 때마다 녀석을 툭툭 치며 한 마디씩 던지곤 했습니다.
그래도 녀석은 지각을 밥 먹 듯이 하고
일쑤 종례를 하지 않고 집에 가곤 했습니다.
겨울방학식을 하는 날에는 강당에서 하는 식에 참석하지도 않고
다른 녀석과 함께 도망을 갔습니다.
화가 나서 손전화를 했더니 전화를 받지도 않았습니다.
함께 도망간 다른 녀석에게 전화를 해서 꼭 전하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지수가 올 때까지
절대로 퇴근하지 않을 거니까 지금 당장 학교로 오라'고.
다행히 녀석은 학교에 다시 올라왔습니다.
"내가 그렇게 큰 요구를 한 것도 없는데
이제 졸업을 앞 두고 아직도 내 마음을 몰라줘서 정말 섭섭하다"
녀석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내 말을 듣기만 했습니다.
깊이 생각해 보고 방학 잘 보내라고 했습니다.
방학이 한참일 무렵,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이나 아닌가 하고 순간 긴장했지만
별다른 얘기 없이 그냥 궁금해서 전화했다는 겁니다.
개학을 하루 앞두고서는 전화 메시지가 날아왔습니다.
'선생님, 내일 봐요'라고.
졸업식날,
1번부터 차례로 불러내어 한 녀석씩 꼬옥 안아주고 집에 가도록 했는데
거의 마지막 번호인 녀석은 제 자리에 앉아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아이들을 먼저 안아주고 내가 제 옆으로 가니 눈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어깨를 안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전화가 왔습니다.
내가 올해 다른 곳으로 내신 낸 것을 알고
자기가 진학하는 고등학교로 오면 안 되겠느냐는 겁니다.
아니면 지금의 중학교에 그대로 있어 달라고.
녀석이 진학한 고등학교는 지금의 중학교와 병설 학교로 같은 건물 내에 있거든요.
자꾸 내 생각이 난다며
1년만 더 지내면 진짜 잘 할 수 있는데...
친구를 많이 사귀어 자랑하러 우리 집에 오겠다는 겁니다.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넌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붙임)
학생이 알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이런 얘기를 굳이 블로그에 올리는 까닭은 우리 어른들이 조금이나마 학교를 아셨으면 하는 마음에서랍니다.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 녀석들에게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는 걸 가르쳐 줘야지요.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남에게도 그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잖아요. 그런데 보세요. 제가 오히려 더 큰 사랑을 받았잖아요. 저는 이런 아이들 덕분에 정말 행복하답니다. 우리 어른들의 잘못으로 세상을 알기도 전에 미리 세상을 미워해서는 안 되잖아요. 우리반에만 해도 아버지나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아이가 9명이나 되었어요. 모든 게 우리 어른들 잘못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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