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 이야기

나를 울린 선경이 녀석

by 정가네요 2008. 11. 4.

 

우리 반에서 나한테 말대꾸를 가장 잘 하는 녀석이 선경입니다.

나하고 말싸움을 하면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끝까지 합니다.^^

그러다가 미안하면 "됐어요!" 하고 끝맺습니다.

 

복장도 1년 내내 한번도 제대로 갖춰 입을 줄 모르고

조끼 단추는 늘 열려 있어요.

지각도 번번히 하고...

그래서 꾸지람을 하면

"선생님은 맨날 나만 꾸지람해요."합니다.

 

제대로 맘에 드는 게 한 가지도 없어요.

그래도 가만히 보면 공부는 제가 할만큼은 합니다.

 

엊그제 3학년 학생의 학부모를 상대로 고교입시 설명회를 가졌는데

선경이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선생님께 너무 죄송해서 꼭 한번 뵙고 싶어 일부러 왔습니다."하더군요.

집에 가서는 담임인 저하고 사이에 있었던 일을

모두 얘기하는가 봅니다.

 

오늘 아침 자습시간이었습니다.

한 녀석이 컵라면을 먹고서 쓰레기통에 그냥 버려

교실에 라면 냄새가 진동하게 한다고 꾸지람을 했습니다.

이 녀석은 부모님이 모두 계시지 않아 고모님댁에 살고 있는데

아침마다 교실에서 주전부리를 하곤 합니다.

 

그런데 교실 뒤편에 앉아 있는 선경이가

보온병에서 뭔가 음식을 꺼내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게 뭐냐고 물으니

"미역국이지요." 합니다.

미역국까지 끓여 와서 냄새를 피운다고 꾸지람을 하려고 보니

밥그릇도 있고 갖가지 반찬에 과일그릇까지 있었습니다.

 

"오늘 평은이 생일이라요."

선경이의 옆짝인 평은이는 2년 전에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평은이를 위해 생일밥을 차려온 것입니다.

평은이는 처음엔 웃더니

결국 책상 위에 엎드려 울고 말았습니다.

저도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해서 교무실로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1교시 후에 복도에서 만난 평은이에게

"미역국 다 먹었어? 

평은이는 정말 좋겠다.

생일에 미역국 끓여주는 친구도 있고."했더니

말없이 빙그레 웃었습니다.

 

평은이는 웃음이 무지 예쁜 녀석입니다.

선경이는 마음이 무지 따뜻한 녀석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