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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그대 무엇이 그리도 급해...

by 정가네요 2008. 7. 4.

 

어제 내가 무척 아끼던 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경상북도에서 시 평론을 하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며,

우리말을 갈고 닦는 걸 천직으로 여겼고, 자연을 무척 아끼는 사람이었어요.

2년 전부터 간암을 앓아 오다가 어제 새벽 3시에 그만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그를 그리며 쓴 글입니다.

 

 

* 그대 무엇이 그리도 급해...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깜짝 놀라

누군가 그대의 핸드폰으로 보내온 그대의 부음을 내 핸드폰에서 보는 순간,

나는 교무실 바깥으로 나가 먼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네.

그래도 혹시나 싶어 그대의 그림자 같았던 민들레에게 전화를 하니

민들레의 핸드폰에선 이미 그대와의 이별을 예감한 듯 슬픈 노래가 흘러나오더군.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내버려 두듯이......'

 

집에 돌아와 무언가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리에 앉았지만 자꾸만 눈 앞이 흐려지네.

 

바람재,

그대 무엇이 그리도 급해 이렇게 빨리 떠나시는가?

보름 전쯤, 그대가 대전으로 한의사를 만나러 가기 전에 우리 집에 잠시 들렀을 때

그대는 피곤함을 못 이겨 앉아 있지도 못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소파에 누워 있었지.

그 모습을 보고서 그대가 그 몹쓸 간암과의 싸움에 지쳐가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차마 무어라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였네.

그대가 이렇게 빨리 갈 줄 알았으면 차라리 허리띠 끌러놓고 밤새 통음이나 하여 볼걸.

 

그대 밤새 긁어대는 내장의 아픈 신음소리를 마음대로 내뱉지도 못하면서

지난 4월엔 문인수 시인의 시집 ‘배꼽’의 평론을 쓰고, 그대의 시평론집 ‘이 해골이 니 해골이니?’를 엮어 내었던가?

2005년 8월에 낸 시평론집 ‘푸줏간의 물고기’도 아직 다 읽지 못했는데 이제 그대가 생각나 어떻게 그 책 속의 글들을 읽겠는가?

아무 상관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 평론집의 작은 제목들을 보면서 난 그대의 아픔을 짐작하기도 했네.

‘자궁 들쑤시기, 속살 발라내기, 감옥 물어뜯기, 내장 헤집기’

그대 그 동안 얼마나 아팠던가?

 

내 그대에게 한 번도 입 밖에 내 본 적이 없는 얘기를 오늘 하겠네.

내가 그대를 만난 게 불과 5년밖에 안 되었으나 내 생각엔 마치 몇십 년을 사귄 듯했다네.

그대와 함께 한 날들이 지금 주마등처럼 내 머리 속을 지나가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자연을 알아야 한다고 하여 그대가 경북 서부지역의 시인, 소설가들을 모아 ‘바람재 들꽃’ 모임을 만들었는데

전혀 글을 쓸 줄 모르는 내가 왜 그 모임에 들게 되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모르겠어.

내심으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르네.

 

비를 홈빡 맞으며 민주지산으로 첫 들꽃 탐사를 갔던 일,

해남의 미황사로 동백을 만나러 가 밤 늦도록 술을 마시던 일,

황악산 바람재로 들꽃 탐사를 가서 그대가 마련해 온 연잎에 싸 온 연밥을 같이 먹던 일,

그대가 휴직을 하고서 하동의 토담농가에 가 있을 때 그대와 마주 앉았던 그 밤,

두부전골을 즐겨 먹었던 그대와 함께 술잔을 나누며 했던 세상 얘기들.

이제 다시는 함께 할 수 없게 되었네.

 

사람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실망하기 쉬운 법인데

그대를 만날 때마다 뭔가에 홀린 듯 그대에게 빠져드는 나를 발견하고서

집에 와 다래에게 내 마음을 얘기하면 우리 다래도 그대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맞장구를 치곤 했었다네.

 

참으로 부끄러운 얘기도 하겠네.

그대를 알기 전에 나는 시평론가라면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들인 줄 알았다네.

그런데 내가 무식해도 너무 무식하다는 걸 알고서 혼자서 얼마나 부끄러워 했는지 몰라.

그대로부터 내가 배운 건 낱말 하나도, 토씨 하나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거였어.

국어선생인 나도 나름대로는 우리말 우리글을 제대로 쓰는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대의 지적을 받으면

마치 우리말을 목숨처럼 갈고 닦았던 이오덕 선생으로부터 직접 꾸지람을 듣는 느낌이었다네.

정확한 문장을 만들기 위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몇 날 며칠을 지새운다는 자네의 말을 듣고서

평론을 쓰는 글쟁이는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밤을 새워 글을 쓰던 그것이 그대의 생명을 이렇게 갉아먹게 된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다네.

 

엊그제 그대가 결국 입원하고 말았다는 얘기를 듣고는

그대의 병석에 찾아가 ‘동생, 빨리 건강하게 되어 나와 다시 즐거운 들꽃 탐사를 가세.’ 라고 말하며,

‘형님’ 소리를 꼭 한번 듣고 싶었는데 그대 이렇게 빨리 떠나고 말았으니

이제 그대로부터 형님 소리는 영원히 들을 수 없게 되고 말았네.

  

바람재 김양헌 선생, 그대 잘 가게나.

내 부끄럽게 이 세상을 조금 더 살다가 나중에 그대를 만나면 그대로부터 다시 ‘형님’ 소리를 듣겠네.

 

바람재, 동생.

자넨 정말 훌륭하고 멋진 사람이었네!

 

그대 잘 가게나.

그 곳에선 부디 아프지 마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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