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 이야기

엄니, 그립습니다!

by 정가네요 2008. 1. 19.

 

엊그제 어머니 제사에 다녀 왔습니다.
대구에 계신 작은형님이 오랫 동안 제사를 모셨는데
서울에 사는 장조카가 제사를 모시고 가는 바람에 서울까지 다녀왔습니다.

참 세월 빠르네요.
우리 어머니 돌아가신 지 벌써 5년이 지났어요.

우리 어머니에게 불쑥 찾아온 치매 때문에
나의 모든 생활이 우리 어머니에게로 향해 있던 때였습니다.

Daum에 나와 갑장인 사람들의 카페가 있다는 걸 알고 가입했지요.
그때 우리 어머니 연세가 85세, 몹쓸 손님인 치매 증세가 날로 깊어가던 중이었어요.

가끔 친구들의 사랑방에
우리 어머니 얘기를 하곤 친구들과 함께 부모님 모시는 애환을 나누었지요.

그때 올렸던 글들을 컴퓨터에 모아 두었는데
얼마 전 컴퓨터가 나가는 바람에 모두 사라졌어요.

그래서 오늘 예전에 내가 올렸던 글들을
'54년 말띠' 카페에서 찾아내어 하나씩 다시 저장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를 읽어보니 또 눈물이 납니다.

**********************************


<눈물 섞인 미역국> - 2002. 5/21


오늘은 내 생일,
내 평생 친구들로부터 이렇게 생일 축하를 많이 받기는 처음이다.
우리 말방 친구들아, 정말 고맙다!
사랑한다!

*

오늘 점심 때 벌어진 일이다.
먹고 사느라 점심 시간이 제일 바쁜 마눌 대신에

치매 증세가 있는 우리 엄니 점심을 차려 드리기 위해
내가 매일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온다.

다행히 집과 학교가 가까운 편이라 그게 가능하다.

행여 늦으면 우리 엄니 배고파 엉뚱한 행동을 하실까봐
4교시 수업을 모두 빼달라고 해서는 12시 40분이면 집에 도착한다.

아침에는 마침 엊그제 스승의 날
멀리 울진에서 나처럼 교사를 하고 있는 제자 녀석이 보낸 미역으로
맛있게 미역국을 끓여 먹었다.

그런데 오늘 점심 시간에 집에 오니 우리 엄니가

"난 밥 먹었다" 하시는 게 아닌가?

"누가 차려줘서요?"

"내가 찾아 먹었지."

"아이구 엄마, 밥이 어디 있어서요?"

"아무거나 먹었지"

가만히 살펴 보니
아침에 마눌이 앉혀놓고 간 밥솥의 밥은 펀 흔적이 전혀 없다.
우리 어머니는 새로 산 이 밥솥을 자꾸만 남의 집 밥솥이라고 하신다.

아이구, 우리 엄니!
어제 먹다가 남아서 퍼놓은 찬밥을 마눌이 싱크대 위에 얹어 놓았는데
그걸 찬 미역국에 말아 데우지도 않고 그냥 잡수셨네!

빈 국그릇과 숟가락 하나가 싱크대에 들어 있다.

우리 엄니는 가스불을 만질 줄도 모르신다.
더구나 물이야 어떻든 관계없지만 불이 나는 게 겁이 나 우리가 가스를 잠가놓고 다닌다.

"엄마, 내가 엄마 혼자 드시지 않도록 하려고
일부러 직장에서 집에 와 국 데워 엄마하고 같이 점심 먹으려고 하는데
그렇게 혼자 잡수시면 어떡해요?"

"오늘은 안 오는 줄 알았지."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오잖아요? 정말 속상해 죽겠네."

"그래 내가 잘못했다. 다시는 안 그럴게."

미역국을 데워서 아무리 더 드시라고 해도 다시는 안 드신다.

어머니는 기름이 둥둥 뜨는 찬 미역국에 찬밥을 말아 드셨는데
나 혼자서 뜨끈한 미역국에 따뜻한 밥을 말아 먹으니
나도 모르게 그만 눈물이 주루룩 흐른다.

내 생일날 우리 엄니는...

친구들아,
우리 부모님 살아계실 제 마음을 다하자!


---------------------

어머니, 그립습니다!

'세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나토스Thanatos'에 대하여  (0) 2008.07.05
그대 무엇이 그리도 급해...  (0) 2008.07.04
사고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도사리고 있다!  (0) 2007.12.30
세계문화유산  (0) 2007.11.01
데보라 카  (0) 2007.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