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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조금 바빴습니다.
우리집은
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어
매일같이 고라니가 나타납니다.
연못에 와서 물을 먹고 가기도 하고
위 텃밭에서 잠을 자고 가기도 합니다.
녀석들은 잠을 잔 자리에 꼭 똥을 누고 갑니다.
고라니는 정말 못 먹는 게 없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겐 엄청난 밉상입니다.
처음엔 200포기 심은 콩순을
하나도 남김없이 잘라 먹어서
다시는 텃밭에 콩을 심지 못하게 했습니다.
두어 줄 심은 고구마 잎을 몽땅 잘라먹어
고구마를 하나도 캐지 못하게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것도 묶어 놓은 개 산이의 10m 정도 앞에서...
정말 기가 막히는 노릇이었습니다.
묶어 놓은 개라는 걸 아는 거지요.
두어 해 전부터는
녀석들이 연못 속에 들어가
수련과 백련의 연줄기를 잘라 먹곤 했습니다.
연줄기를 잘라 먹고는 밉살스럽게도
연잎을 모두 뒤집어 놓고 갑니다.
두 포기 있던 수련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연못 주변에 눈에 잘 띄지 않는
가느다란 철사로 고라니의 접근을 막았습니다.
그 결과 지난해는 다행히 많은 백련 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래 텃밭을 지키던 봄이가 죽고 나니
이젠 아래 텃밭에도 고라니가 침입했습니다.
1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봄에는 여태 아무도 건드린 적이 없던
대문 앞의 섬쑥부쟁이(부지깽이나물)를
누군가 잘라간 흔적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혹시 사람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지만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 저는
가끔 내려오던 산토끼를 의심했습니다.
며칠 전부터는 아내가 심어 놓은
상추를 녀석이 야금야금 잘라 먹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에게 올해는 토끼에게도 조금 나눠주고
우리는 조금만 먹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엔
키가 큰 고추순을 잘라 먹었습니다.
아하, 그러고 보니 토끼가 아니라 고라니였습니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참으려고 했는데
이젠 내가 아끼는 땅콩 잎까지 잘라 먹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아래 텃밭에도 줄을 쳤습니다.
그것만으로는 불안해서
위 텃밭을 지키던 산이를 데리고 와서
밤새도록 보초를 서게 했다가
아침에 다시 제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어제, 오늘 이틀 동안은 피해가 없었습니다.
정말 고라니가 미워죽겠습니다.
에구, 개를 한 마리 더 키워야 할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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