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 맘대로 쓴다
직장에서 나는 ‘독서왕’이었다.
객관적 시선으로 책 내용과 저자의 이력을 적어 제출했다.
하루에 몇 권의 서평을 게시판에 올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속독에 속필이라 후다닥 해치웠다.
시간이 지난 후 내가 쓴 서평을 읽어보니 그냥 ‘보고서’였다.
내 생각과 느낌이 없는 글은 내게 글이 아니었다.
‘내가’ 없는 글은 기사나 안내문과 다름없었다.
마치 오늘의 날씨와 한 일을 적어놓은 초딩 일기장 같았다.
서평을 ‘독후감‘으로 바꿔버렸다.
어느 부분에서 눈물을 흘렸는지 분노했는지 그리고 어느 문장이 가장 아름다웠는지 나의 경험을 들어 솔직하게 썼다.
어떤 책은 돈이 아까우니 도서관에서 빌려보라는 친절한 안내까지 했다.
내가 독서왕의 타이틀로 기염을 토해도 책을 읽지 않던 직원들이
‘독후감’으로 바뀌자 책을 읽고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토론으로 댓글타래가 주렁주렁 열리기도 했다.
독자끼리 책에 대한 뒷담화가 만발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소득은 시간이 흐른 뒤 내가 쓴 ‘독후감’을 다시 읽었을 때였다.
보이지 않던 작가의 의도를 행간으로 깨닫는 경우도 있었고
내 생각이 어렸음을 반성할 수도 있었다.
이를테면 나의 ‘독후감’은 나의 성장기였던 셈이다.
얼마 전 나의 ‘독후감’을 읽은 지인이 서평 속에 ‘내’가 들어간 것은 지면 노출이 곤란하다고 했다.
나는 허허허 소리 내어 웃었다.
그대는 기사를 원했구나.
글 공장에서 양산된 글은 쓰고 싶지 않다.
일률적인 서평이 표준이라면 그들끼리 그들의 룰을 지키면 된다.
나는 나답게 내 마음대로 독후감을 앞으로도 쓸 것이다.
미오기식(?) 독후감 장르가 생기지 말란 법이 있냔 말이다.
글의 형식은 자유로워야 하고 무엇보다 나는 독자다.
다니엘 페낙의 양도할 수 없는 독자의 10가지 권리다.
1. 읽지 않을 권리
2. 건너 뛸 권리
3. 다 읽지 않을 권리
4. 다시 읽을 권리
5. 책을 도피처로 삼거나 책 속에서 길 잃을 권리
6. 아무 장소에서나 읽을 권리
7. 건성건성 훑어 볼 권리
8. 낭독할 권리
9.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10. 당신의 취향을 옹호하지 않을 권리
하나 더 붙인다.
11. 독자 맘대로 서평 쓸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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듕국의 귀여운 랑랑(Lang Lang)이 연주하는 배도변의 열정 소나타 3악장을 듣고
야심찬 토요일을 시작한다. 독후감을 쓰자!
Beethoven: "Appassionata" Piano Sonata No. 23, Op 57 - III. Allegro ma non trop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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