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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소개

≪바람이 수를 놓는 마당에 시를 걸었다≫

by 정가네요 2020. 6. 3.

*

토담을 알게 된 건 참 오래다.
이십여 년 전, 우연히 지인들과 함께
그의 집에서 지리산 들나물반찬으로 가득한
정갈한 밥상을 받아본 적이 있었다.
밥상을 보자마자 모두가 “와~”하고 손뼉을 쳤다.
주인 내외가 어떤 사람인지 무척 궁금했다.

 

<토담농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그때 처음 본 글이 ‘토담’의 아내
‘들꽃’ 영하 씨가 쓴 글이었다.

빨랫줄에 옷가지 몇 개가 걸려 있고
짧은 글이 쓰여 있었는데
제목이 ‘그리움을 널다’였다.
도시에 나가 기숙사 생활을 하던
아들의 옷을 빨래하여 널어놓았던 거였다.
세상에! 이렇게 예쁜 제목을 달다니!

 

홈페이지의 글들을 모두 읽었다.
민박을 하던 그의 집에 들렀던 사람들의
사진을 싣고 고마움 가득한 글을 달아놓았다.
손님과 주인이 주고받는 글들에 정이 가득했다.
시골 농부의 투박한 글이 아니었다.
나는 <토담농가>의 열렬한 펜이 되었다.

 

그 후, 가끔 그의 집에 들르면
동기간을 만난 듯 허물없는 얘기들을 나누곤 했다.
토담과 들꽃, 두 사람이
마주보고 은근히 미소 짓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그 뒤로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순박한 내외가
지리산 형제봉 아래에 살고 있다고
자랑하고 다녔다.

 

그가 이번에 참 예쁜 책을 내었다.
≪바람이 수를 놓는 마당에 시를 걸었다≫

보나마나 향기 가득한 글들이겠지.
한 번도 손에서 떼지 않고
단번에 완독한 그의 책 속에는 카카오스토리
https://story.kakao.com/ch/todam/
‘이야기를 파는 점빵’ 주인의 글답게
땅 냄새, 사람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나이 50이 넘어 아내의 강권으로
대학의 문예창작과를 나왔다는 토담 공상균.
그가 젊은 시절부터 사랑했던 시들에
그의 삶과 사람 얘기를 맛깔나게 버무려 놓았다.
연애편지를 쓰듯 글을 쓴다는 그의 말 때문인지
정말 그의 연애편지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농부로 살아온 날보다
시를 붙들고 산 날이 훨씬 길다던 그가
더 좋은 글들로 이 시대 사람들의 메마른 가슴을
촉촉히 적셔 주었으면 좋겠다.
그는 지금도 시인이 되고 싶다지만
나는 오히려 이 책에 실린 글들처럼
인간미 넘치는 잔잔한 산문으로 그가 사람들의 사랑을
오래오래 받는 글쟁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
오늘은 여기까지만 걷고 돌아갑시다
적당한 곳에서 방향을 바꿀 줄도 알고
그림처럼 좋은 풍경 앞에서 좋아하는 그 사람을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재미도 누립니다
고운 모양 고운 색깔 세상에 많지만
한 길을 함께 걸은 사랑하는 사람의 붉은 볼만 하겠습니까
- 사랑합니다. 나의 고마운 평강공주

 

*
꽃이 핀 바로 그 자리에 열매가 열리듯, 지는 꽃잎에 황홀한 외로움 스며와도 나는 여기 이 자리에 그대로 있어야겠다. 내가 꽃잎으로 지는 날 올 때까지는 지금 있는 이곳에서 오래도록 흔들리고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오붓하게 살아낼 것이다.
- 꽃이 진 자리에 열매 열리는 자연의 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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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 편이 주는 따스한 감동은 예순의 중늙은이 가슴에 분홍빛 기운 넘실대게 한다. 이 나이의 가슴에 무엇이라서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할 것인가 싶어 앞으로도 나는 시 읽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시 필사를 통해 감정 공유의 폭을 더 넓혀 나갈 것이다. 농부가 즐기는 한유(閒遊) 한 자락이다.
- 시 읽기의 즐거움, 농부의 한유 한 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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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아내가 ‘내 생애 전부를 흔든 사람’이고, ‘내 생애 전부를 울린 사람’이다. 어떤 때는 아내가 웃을 때조차 내 가슴은 먹먹해진다. 맑고 고운 사람이 농부의 아내로 살아온 그 세월이 내 눈에는 훤히 다 보여 고마우면서도 애처롭다. 꽃을 보며 마냥 행복해하는 모습이 너무 애달파서 내 마음도 함께 붉게 물들어버리곤 한다. 그런 아내에게 꽃 피는 봄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도록 해주는 앞마당 나무들이 고맙다.
- 시를 쓴다는 사람이 꽃을 버리다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