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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할멈, 보고 싶어!

by 정가네요 2019. 6. 7.


개 두 마리가 컹컹 짖는다.
모르는 사람이 왔을 때 짖는 소리다.
거실에서 밖을 내다보다가 
문을 열고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잠시 뒤에 또 개들이 맹렬히 짖는다.
멈추지 않고 계속 짖어서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여전히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개들이 짖는다.
.
아, 사람이 있다.
마을 가운데 사시는 올해 86세 되신 할아버지시다.
노인용 전동 스쿠터를 타셨기 때문에 
크게 자란 쥐똥나무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주 천천히 스쿠터를 몰고 가신다.
울타리 가까이 달려가서 소리를 지르니 멈추신다.
.
부인이 중풍으로 15년 동안이나 고생을 하다가 
2년 전에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그동안 병석에 누워 있는 할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뒷바라지하셨다.
.
그런데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 
할아버지가 급격하게 늙어가시는 게 눈에 띄었다.
지난해부터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시고 
오로지 스쿠터만 타고 다니신다.
.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우리 집 바로 위에 있는 
형님의 산소에 가끔 다녀가시곤 했다.
아마도 부인의 긴 병간호로 지치고 답답한 심정을 
형님 산소에 가서 풀곤 하셨던 것 같다.
.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엔 자주 오시지 않았는데
오늘 오랜만에 형님의 산소에 다녀오셨던가 보다.

"길이 험해서 도저히 못 올라가겠어."
"예, 풀도 많이 나고 길이 울퉁불퉁해져서 
스쿠터로는 못 가실 겁니다."
"그래......"
.
아마도 형님보다 할머니가 더 보고 싶으셨을 것 같다.
내가 이 마을에 들어온 지 올해로 만 12년,
그 사이에 여덟 분이나 돌아가시고
마을에 새로 들어온 젊은이는 아무도 없다.
.
할아버지도 그리 오래 사시지는 못할 것 같다.
마을에 거동을 제대로 못 하시는 어른이 
네 분이나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