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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날,
아침에 느지막히 일어나 연길 시내에 있는 모아산에 올랐습니다.
모아산은 모자 모양을 한 산으로 1시간 정도 걸어 오르내릴 수 있는 연길의 유명한 근린공원입니다.
정상에 오르니 앞에는 연길시가 뒤로는 멀리 용정시가 내려다 보였습니다.
여기서 연변대학교수를 지냈다는 조선족 이문용 씨를 만나 한참동안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안동의 유명한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용 선생의 집안이라고 하며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말씀하시는데
우리와 헤어지면서 발걸음을 차마 떼놓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우리가 탄 차는 만주벌판을 달려 도문으로 향합니다.
민족의 분단을 실감할 수 있는 두만강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드디어 두만강에 이르렀습니다.
뗏목을 타고 북쪽땅을 보니 어린 병사가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하더군요.
초소가 강변에 50미터에 하나씩 있다고 했습니다.
뱃머리만 돌리면 바로 닿을 수 있는 우리땅인데도 갈 수 없는 곳이란 게 정말 믿기지 않았습니다.
남의 땅에서 그저 풍경처럼 바라볼 수밖에 없다니 안타깝기 그지 없었습니다.
다시 중조변경다리에 올랐습니다.
중국사람들의 상술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두만강에서 유람선을 타기 위해 강변의 건물에 발을 내리는 순간 손님들의 사진을 찍어 두었다가
손님들이 뗏목을 타고 다시 육지에 오를 때 그 동안에 현상한 사진을 3,000원씩에 파는 거였습니다.
중조변경선을 보러 가기 위해 중조변경다리에 오르는 데도 별도로 4,000원을 지불해야했습니다.
중국과 조선의 국경인 중조변경선은 허가를 받은 사람만이 건널 수 있었습니다.
다리 한가운데 선을 그어놓고 일반인은 건널 수 없도록 해 놓은 것입니다.
다리 아래 교각의 색깔도 중국쪽과 북한쪽이 서로 달랐습니다.
다리 저쪽편의 우리땅을 바라보니 감회가 가득했습니다.
도문에서 두만강을 따라가며
강 건너 북한쪽의 산을 바라보니 산에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아 또 가슴이 아팠습니다.
도문에서 용정까지 가는 길은 북간도가 가장 만주다운 땅임을 쉽게 느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눈이 닿는 곳마다 푸른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 그 시원한 맛은 무엇에 비길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해와 달이 들에서 떠서 들에서 진다는 말 그대로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4시간여를 달려 백두산 아래의 첫 마을 이도백하(二道白河)에 도착했습니다.
이도백하는 ‘백두산 천지에서 두 갈래로 내려오는 깨끗한 물’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내일이면 이제 백두산에 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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