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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종 <삶터교회목사·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2013.07.22 21:20
김태종의 함께 읽는 도덕경 - 땅에서 듣는 하늘의 노래
- <삶터교회목사·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古之善爲道者(고지선위도자)는 微妙玄通(미묘현통)하여
深不可識(심불가식)하니, 夫唯不可識(부유불가식)이라.
故(고)로 强爲之容(강위지용)하면 豫焉(예언)이라
若冬涉川(약동섭천)이요, 猶兮(유혜)라 若畏四隣(약외사린)이며, 儼兮(엄혜)라
其若客(기약객)하며, 渙兮(환혜)라 若氷之將釋(약빙지장석)이며, 敦兮(돈혜)라
其若樸(기약박)하며, 曠兮(광혜)라 其若谷(기약곡)하며, 混兮(혼혜)라 其若濁(기약탁)이라.
孰能濁以靜之徐淸(숙능탁이정지서청)하며,
孰能安以動之徐生(숙능안이동지서생)하겠는가
保此道者(보차도자)는 不欲盈(불욕영)이니 夫唯不盈(부유불영)이라,
故(고)로 能蔽不新成(능폐불신성)이니라.
-
옛적 제대로 사는 이는 깊고 오묘하고 그윽한 깨달음에 이르러
그 깊이를 알 수 없으니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굳이 그 삶을 말한다면 삼감에 있어서 겨울 시내를 건너는 것과 같고,
살핌에 있어서는 사방에 조심해야 할 이웃이 있는 것과 같으며,
의젓하기는 나그네와 같았고, 어질기는 막 풀리려는 얼음과 같았으며,
미덥기는 전혀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이와 같았고,
그윽하기는 골짜기처럼, 풀어짐에는 막 휘저어 놓은 것과 같았다.
누가 뒤엉킨 것을 가라앉혀 깨끗하게 하고,
또 무엇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을 흔들어 새로운 생명을 낳게 하겠는가
앞에 말한 깨달음을 품은 이는 채우려 하지 않으니, 도대체 채우려는 뜻이 없다.
그러므로 넉넉히 새롭지 않음을 품고 이룬다.
이 장은 무척 까다롭습니다. 다만 큰 테두리에서 전체 도덕경의 흐름을 따라서 읽으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데, 그것은 8장의 上善若水(상선약수)에 나오는 것과 비슷하게 깨달음을 얻어 제대로 사는 사람의 삶은 이러저러하다고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豫(예), 猶(유), 儼(엄), 渙(환), 敦(돈), 曠(광), 混(혼)과 같은 글자들은 그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을 따라 그 의미를 거슬러 찾아보면 쉽게 닿을 수 있지만, 글자 자체가 가진 뜻을 가지고 번역을 하려 들면 오히려 맥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특히 이 장은 판본에 따라서 글자 차이가 많이 나는데, 그렇기 때문에 분분한 해석들이 있지만, 이 또한 도덕경 전체의 문맥을 따라서 읽어간다면 맥락에서 벗어나는 풀이를 하게 되는 엉뚱한 실수는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까다롭고 복잡한 글을 한 마디로 줄여보는 것은 그런 점에서 필요한 접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나는 ‘부작용이 생기지 않는 삶’이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덕경이 멋진 글이라는 것은 모든 가르침들이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의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지만, 도덕경은 자연과 자연의 관계 안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의 인간관계를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또 한 번의 이야기를 이렇게 대략 살펴보았는데, 문제는 지식이 아니라 삶이라고 하는 것, 생명은 언어나 지식 너머의 현상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한다면, 삶은 그만큼 더 신중해지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날마다 좋은 날!!! - 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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