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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라드 로렌츠는
노벨상을 받은 동물행동학의 선구자였습니다.
너무 오래 되어 내용을 다 잊었지만
제가 아주 젊은 시절에 그가 쓴
≪솔로몬의 반지≫란 책을 재미있게 읽고
큰 감흥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동물에 대한 깊은 사랑과
관찰의 결과를 기록한 책이지요.
그가 ≪야생 거위와 보낸 일 년≫이란 책에서
동물 관찰자가 갖춰야 할 첫째의 요건은
인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이론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새들의 경우 처음 눈에 들어온 존재를
어미로 알고 졸졸 따라다닌다는
‘각인(刻印)’ 행동을 밝힌 것입니다.
이제 보니 곤이는 저를 엄마로 각인하고 있었습니다.
눈을 뜨고 처음으로 본 사람이 저니까요.
어제 곤이는 여러 번 놀러왔습니다.
처음 나타났다가 사라진 뒤 세 시간 만에 다시 오고
그 뒤에는 자주 놀러 왔습니다.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제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손을 내밀면 손 위에 앉기도 하고
내가 움직이면 나를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발에 밟힐까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위험한 요소도 여럿 있습니다.
야생 고양이가 위험하지만
더 위험한 건 우리집 개 봄이 녀석입니다.
봄이는 새들이 우리집 마당에 들어오면
심하게 경계를 하며 짖습니다.
그런데 곤이가 늘 주인 가까이 있으니
우리 봄이가 당연히 경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번은 무서운 걸 모르는 곤이가
봄이 머리 위로 가까이 날아가다가
아찔한 순간을 맞기도 했습니다.
왔다갔다하면서 재롱을 떨던 녀석이
저녁에는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밤에 나와서 곤이집 주변을 살폈지만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과연 오늘 아침에
녀석이 또다시 올까 무척 궁금했습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나타났습니다.
“곤이야, 이리 와 봐” 하고
손을 내미니 정말 가까이 왔습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어도 가만히 있습니다.
데크에 나타나 째째거리고 울다가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다시 날아오곤 합니다.
정말 신기하기도 하지만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나를 잊어버리고 지내야
제대로 독립할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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