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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네동산 일기

닭장 속 권력재편. 2

by 정가네요 2020. 2. 10.

*


닭장 속에 또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친위 쿠데타가 아닌 사람에 의한 인위적 쿠데타였습니다.
몇 년 동안 같은 유전자의 혈통이 이어져 내려와
두어 달 전 지인으로부터 청계 수탉 한 마리를 얻어왔습니다.
닭장 속에는 암탉 9마리에 수탉이 3마리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데리고 온 이 청계 수탉 녀석
생긴 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정말 성깔이 있더군요.
기존의 수탉 두 마리는 암탉을 건드리려고 하다가도
암탉이 도망가면 포기하곤 했는데
이 녀석은 절대로 포기를 몰랐습니다.
한번 목표로 삼은 암탉이 있으면 끝까지 쫓아갑니다.


땅바닥에서 횃대가 있는 2층으로 위로, 아래로
끝없이 쫓아다니며 기어이 목적을 달성하고 맙니다.
기존의 수탉 대장이 덩치가 꽤 커서
힘에 눌리고 쫓기는 형편이었는데도
청계 녀석이 워낙 닭장을 휘젓고 다녀서
두어 달 동안 닭장 속은 하루 종일 시끄러웠습니다.


수탉이 많아 암탉들이 스트레스를 너무 받으면
달걀도 잘 낳지 않는다고 해서 할 수 없이
엊그제 기존의 잘 생긴 수탉 두 마리를 잡았습니다.
사실 품종 개량을 목표로 청계를 데려왔기에
매우 미안했지만 수탉들의 희생은 예정되어 있던 거였습니다.
수탉 두 마리를 없앤 뒤, 한 동안
청계를 포함한 닭장 속의 닭들은 내가 가기만 하면
슬슬 눈치를 보며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오늘,
닭장 속을 가만히 살펴보니 아주 조용했습니다.
거짓말처럼 암탉들이 청계 수탉을 피해 도망가지도 않고
닭장 속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게 자연의 법칙인가 봅니다.


*
조금 전, 봉준호 감독이 세계 영화계를 뒤흔들었습니다.
봉 감독이 영광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오늘,
우리집에는 올해 처음으로 크로커스 한 송이가 피었습니다.
이 꽃을 봉준호 감독과 한국 영화인들에게 바칩니다.
진시무로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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