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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소개

신휘 시인을 소개합니다.

by 정가네요 2019. 9. 12.


신휘 시인을 소개합니다.

 

(한가위 연휴 기간 중에 시 몇 편 읽어보시지요?^^)

신휘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꽃이라는 말이 있다출판기념회에서 이동순 시인이 만만한 시인이 아니다. 치열성이 대단하다. 왜 진작 몰랐던가? 구미 김천 지역에 신휘가 자리해 참으로 든든하다.”고 크게 칭찬했던 신휘 시인.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낸 신휘 시인의 시 몇 편을 소개합니다.

 

 

* 운주사에 가고 싶다

 

운주사에 가고 싶다

가서, / 그 부처 옆에 나란히 눕고 싶다 //

그렇게 누워 하늘 오래 쳐다보다

그 분 코고는 소리 들리면 / 곧 흔들어 깨워 //

부처님, 오늘은 하늘빛이 참 곱습니다.

말도 걸어보고 //

그래도 영 심심하면

대체 언제 일어나실려구 그러세요 / 어리광도 부리면서 //

무심한 바람에 / 눈코입 다 닳아 없어지고 싶다 //

운주사에 가고 싶다

가서, / 그 부처 함께 쓸쓸히 늙어 가고 싶다

 

 

* 불혹에 대하여

 

오지도 않는 좌석버스 내내 기다리다

막차마저 끊어질까

아무 버스나 잡아타고 가는데

그것 잘못 탔다고 깨닫게 되l는 나이 //

혹은

금세 사 입어 불편하던 옷

며칠 입고 지내다보니

오래된 옷처럼 어색하지 않은 나이 //

메이커 아니면 죽어도 못 신던 운동화

시장표로 바꿔 신어도 불편한 줄 모르고

남 의식하지 않는 나이 //

그때가 바로 불혹의 나이 사십이다 //

불혹이란

그저 흔들리지 않는 나이가 아니라

건들면 금세라도 툭 터져 버릴 것 같은

물혹 몇 개쯤 지니고 사는 나이이다

 

 

*

 

저렇게도 피는구나 //

아무도 오지 않는 / 외딴 풀숲에도 //

누구 하나 안 봐주는 / 흙먼지 속에서도 //

꽃들은 피고, / 피어나는구나 //

그렇구나 / 우리 감히 엄두 안 나 / 돌아앉은 벼랑 끝에서도 //

우리 미처 생각 못한 / 저 어둠 속에서도 //

꽃들은 피고 / 또 피어나는구나 //

그렇구나, 끝내 피어 / 한 세상 온전히 차지하고 마는구나

 

 

* 나의 시

 

나의 시는 가령,

퇴근길 집에 들어가긴 싫고 그렇다고 마땅히 불러낼 친구도 없어 술집에 혼자 앉아 독한 술 따라 마시는데 그만, 가슴 싸하도록 훑고 내려가는 시원함같은 것이었으면 //

아니면,

다 늦은 저녁 간만에 들른 시골집 어머니께서 차려내온 밥상 물리고 빈 방에 들어 혼자 가을밤 외론 밤, 노래 부르는데 그만 핑 눈가를 적시는 눈물 같은 것이었으면 //

쉽게 모습 드러내 놓지 않는 세상을 향해 삿대질이나 하는, 그런 시시한 시가 아니라 //

정말이지,

하루종일 내리는 비 언제 그치나 쳐다보는데 불현듯 찾아든 시장기 아는지 모르는지 그만, 훅 코끝을 스치는 김치전 굽는 냄새 같은 것이었으면 참 좋겠다.

 

- 1시집 운주사에 가고 싶다에서...

 

 

* 낙타, ... 우물

 

아빠, 그런데 슬픔이 뭐야. 슬픔은 우물 같은 거야.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안이 환히 비치는 우물. 사람은 누구나 몸 속 깊이 저만이 아는 물웅덩이 하나쯤 파놓고 사는 거란다. 그럼 아빠도 있겠네. 엄마도. 나도. 글쎄다. 네가 크면 네 안에도 거울처럼 투명한 우물이 하나 생겨나겠지. 너만이 가만히 오래 들여다볼 수 있는. 하지만 무지 무서울 것 같은.

 

 

* 슬픔을 엮었다... 굴비

 

영혼이 맑은 것들은 몸이 아니라 슬픔으로 눈을 자주 씻은 것들이라고 한다. 눈을 씻는 일은 눈물을 흘리는 일. 걸핏하면 나는 새처럼 앉아 우는 날 많은데 눈물이 아주 마른 날은 억지로라도 내 안에 꼬깃꼬깃 접어둔 타인의 아픔과 슬픔까지를 끄집어내 내 일마냥 한 타래로 엮어놓고 줄줄이 따라 우는 것이다. //

그러면 내 꼬인 슬픔이나 남의 엮인 사연이나 매한가지로 그 맛이 짜고 뒷맛이 비린 것이 마치 소금에 절인 굴비의 그것처럼, 오래지 않아 내 몸 안에도 눈의 윤기가 촉촉이 젖어오는 것이 금세 맑아지는 것이다.

 

* 고비라는 말을 밤새 읽었다

 

고비라는 말이 있다 / 그런 이름이 있다 //

세상에는 끝도 없이 / 가야 할 //

오래고 슬픈 길이 있다 //

걸을 때마다 발길에 채는 / 자갈돌처럼 //

아픈 낱말이 있다 //

너무도 건조해 되레 눈시울 젖는

황막한 이름의, 지도에도 없는 //

고비라는, //

그 말을 밤새 혼자 읽었던 적이 있다.

 

- 2시집 꽃이라는 말이 있다에서

 

신휘

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1995오늘의 문학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2014년 첫 시집 운주사에 가고 싶다를 펴내고 20194월 제2시집 꽃이라는 말이 있다를 펴냈다. 신문기자 생활을 거쳐 현재 고향에 정착해 포도농사를 지으며 시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