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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

우리글이 너무 어렵다구요?

by 정가네요 2019. 3. 11.


우리글이 너무 어렵다구요?


오늘 대놓고 화를 좀 내겠습니다.
맞춤법, 그거 틀릴 수 있습니다.
수십만 개의 단어를 모두 어법에 맞게 쓰기는 어렵습니다.
띄어쓰기, 그것도 조금 잘못 써도 아무 관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제발,
우리글이 너무 어렵다는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글을 쓰고 난 뒤에
자신이 쓴 글이 어법에 맞는지 어떤지 꼭 확인을 하시는지요?
그런 확인도 하지 않으면서 우리글이 어렵다고 하면 안 됩니다. 
컴퓨터 자판을 두어 번 두들기면 금방 확인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중등학교에서 33년 동안 우리말 우리글을 가르쳐온 저는
지금도 글쓰기를 할 때면 내가 쓴 글에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잘못 된 게 없는지 늘 살펴봅니다.
그래도 틀린 게 나옵니다.
나이가 드니 더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어떤 이는 SNS에서 아예 모든 글자를 붙여 쓰기도 하더군요.
그것도 유수의 대학을 나온 사람이 그럽디다.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틀린 게 나오면 창피스럽기 때문일까요?
그게 아니라면 모든 글자를 붙여 쓰는 것은 
읽는 이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무례한 행위입니다.


또 어떤 이는 우리말 문법이 너무 자주 바뀐다고 합니다.
명백한 거짓말입니다. 
1933년, 그 참담했던 일제강점기에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처음으로 제정한 후에
55년이 지난 1988년에서야 딱 한 번 전면적으로 고쳤을 뿐입니다.
그때부터 ‘읍니다’를 ‘습니다’로 쓰게 되었지요.


현재 세계에는 약 7,000개 정도의 언어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유의 말과 글을 가진 나라는 불과 몇 나라밖에 없습니다. 
한글은 세계에 자랑해야 할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그래서 훈민정음의 해설서인 국보 70호 ‘훈민정음 해례본’은
지난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록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혹시 그거 아세요?
우리글 훈민정음 24개의 자음과 모음으로 만들 수 있는 글자의 조합이 
무려 11,172개나 된다는 것 말입니다.
‘뷁’ 같은 요상한 글자도 만들어 낼 수 있어요.
심지어는 11,172개의 그 글자를 다 다른 소리로 읽습니다.
한글은 한 개의 글자가 하나의 소리를 내는 아주 발달된 소리문자이지요.
그러므로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문자입니다.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극찬할 수밖에 없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컴퓨터 작업을 할 때 양손으로 자음과 모음을 동시에 쳐냅니다.
일본어? 중국어? 영어? 
어림없습니다.


대한민국 사람은 어린아이까지도 누구나 쉽게 우리글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종대왕님이 그렇게 하도록 했습니다.
누구나 쉽게 익혀서 편리하게 사용하기를 바란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모든 사람이 이렇게 우리의 말과 글을 자랑하면서도 
바르게 쓰려고 크게 노력하지 않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글이 너무 쉽기 때문입니다.
설사 조금 틀리게 써도 일상생활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요.


우리가 영화 ‘말모이’를 통해 보았듯이 
일제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시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썼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언어가 있어야 국가가 있다’는 신념 아래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고, 우리말 사전을 만들기 위해
목숨까지 바쳐 가면서 노력한 학자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지켜온 우리글 우리말인데,
왜 우리글은 그렇게 마구 사용하는지요?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늘 대하고 있는 TV나 인터넷 매체에서 
틀린 글을 너무 자주 본다는 겁니다.
뉴스뿐만 아니라 오락프로그램까지도 문자 자막을 마구 남발하고 있는데
영상을 통한 시각적인 효과는 상상 그 이상입니다.
눈으로 보는 건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틀린 것도 자주 보게 되면 
내가 알고 있는 게 정말 틀린 게 아닐까 하고 의심하게 됩니다.


모든 국민이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방송국의 교열부 기자는 반드시 우리글을 전공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언론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우리말 우리글로 작품 활동을 하는 시인이나 소설가들도 
공부를 더 해야 합니다.
어법에 맞지 않는 글은 작품의 질과 품위를 떨어뜨립니다.

틀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자랑거리는 아닙니다. 
부끄러운 겁니다.


띄어쓰기가 어렵다고요?
띄어쓰기 문제는 이론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신문에서 보는 것처럼 뜻이 통할 정도의 띄어쓰기로 한다면 
별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모국어는 우리의 삶과 토양에서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품고 길러 
정신의 꽃으로 피워주는 씨앗이다.’라고 했습니다. 
한 나라 한 민족의 정체는 모국어에 담겨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글을 쓰는 부담감 때문에 
‘쓰지 않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때때로 나는 엎드려 울었다‘라고도 했습니다.


소설가 최명희에 대한 유명한 일화 하나를 소개합니다.
겨우내 얼어 붙었던 계곡물이 녹아 
얼음장 밑을 흘러가는 소리를 표현하기 위해 
그는 삼일 밤낮으로 계곡에 나가 물소리를 듣기도 하며 고심한 끝에 
‘소살소살’이란 의성어를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 
- 소살소살 돌아온 봄의 밤 강물이여.
그는 17년 동안 ‘혼불’이란 대하소설 한 작품을 남기고 
51세의 젊은 나이에 난소암으로 죽었습니다.


우리글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틀리는 건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그러나 바르게, 어법에 맞게 쓰려고 노력은 해야 합니다.


세종대왕 이전에는 우리 글자가 없었습니다.


(오늘 제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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