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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관 / 동북중앙아시안연대 의장
★ 1971년 탄허 스님, 베트남 전쟁에서 호치민의 승리를 예언했다.
“자유와 독립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너희가 우리 군인 10명을 죽일 때 우리는 너희 편 1명을 죽일 테지만 결국 지치는 것은 너희들일 것이다”- 호치민-
▶어떤 큰 변수가 없는 한, 드디어 2차 북‧미 정상이 이번 달 27~28일 이틀 간 만난다. 베트남에서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8개월 만이다. 약소국이지만 지정학적 이점과 핵을 보유한다는 것만으로도 초강대국과 맞짱 뜬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빅 이벤트다.
나는 베트남에 관심이 많다. 내가 살아 온 이 시대에 약소국 베트남의 민족주의가 유럽제국주의 프랑스와 초강대국 미국과 싸워 이긴, 살아있는 역사며 현장이기에.
▶미국의 200년 역사상 처음으로 패배를 안겨주어 아메리카 내부를 격렬하게 요동치게 했던 곳, ‘이길 수 없는 전쟁’인줄 모르고, 그 땅의 지배를 위해 참여한 연 300만 명의 미국청년(평균연령 19세)가운데 30만 명이 부상을 입었고, 5만8천 명이 전사하였으며, “전비 2,000억 달러를 퍼부으며 300만여 명의 베트남인을 죽였던 곳,” (*1) 미국인들에게는 다시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노 모어 베트남No More Vietnam’이라 불렸던 곳, ‘이민족 지배가 불가능한 월족越族의 땅’, 그곳에서 북‧미 정상이 마주 앉는다.
▶베트남전쟁 당시 호치민胡志明이 이끄는 북베트남(월맹)은 한반도 보다 작았고(16만㎢), 인구래야 2천만에 불과했다. 군사장비는 빈약했다. “베트남전쟁은 GNP 18억 불(1972년 현재)인 아시아의 소국 북베트남이 인구 2억천만 명, 면적 936만㎢, GNP 1조 1518억 달러(1972년 현재)의 초강대국 미국에 승리한 전쟁이었다.”(*2)
현재 북한의 지정학적 조건과 국력도 인도차이나전쟁 당시의 북베트남과 별로 큰 차이가 없다.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 빼고는.
□1971년, 탄허 스님의 베트남 전쟁 승패의 예언.
▶나는 1971년 탄허 스님에게 『장자』 「내편」 강의를 들었다. 당시 탄허 스님은 곽상(郭象, 3세기 252~312. 서진시기 철학자. 玄学)의 『장자』의 편집본과 주(注) (‘장자’를 유가로 통합한 관점, 魏晉新道家學, 탄허 스님의 유불도儒佛道 삼교회통 사상과 상통)를 텍스트로 하여 강의 하셨다. 서울 동대문 숭인동의 청량사에서였다.
일주일에 두 번 화‧목 오후 2시부터 두 시간 정도의 강의였던 것으로 기억 된다. 스님은 ‘장자’ 강의 중에 한국의 미래 국운과 지구의 운행변화 대해서도 도참과 주역으로 재미있게 풀었다. 그 내용은 우리 한민족이 세계의 주역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충남 계룡산 일부 (一夫) 김항(金恒)의 정역(正易)에서 시작된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보천교의 차경석 류의 후천개벽사상에 뿌리 하였다.
▶후천 갑자(後天甲子,1984년)에 남북이 통일이 될 거라는 둥, 그때부터 만주, 요동이 우리의 영토로 다시 들어 올 것이라는 둥, 서해가 융기하여 중국 연안과 가까이 될 거라는 둥, 북극의 빙하가 녹아 일본이 물에 잠길 것(日本- 巽方, 周易 入也)이라는 둥, 지구의 지축이 바로 서서 윤도수(閏度數)가 없어져 미륵선경(仙境)의 세상이 펼쳐질 것 이라는 등(*3)의 말씀을 김일부 선생의 정역을 근거로 해서 풀어 해치셨다. 후천갑자년(1984년, 탄허 스님은 그렇게 주장) 이후는 중국이 동북아의 주도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 간방(艮方)인 한반도가 주도적 역할을 하여 국운을 열어 갈 것이라고 주장하여 민족 긍지를 한껏 더 높였다.
▶또한 탄허 스님은 북베트남이 초강대국 미국을 이길 것이라고 장담하셨다. 놀라워하는 청강생들에게 그 특유의 입담으로 “미국은 서방 쇠며(少女→兌方, 金), 베트남은 남방의 불(中女.→離方=火)이다. 불이 쇠를 녹이니(火克金) 호지명의 북베트남이 이긴다”는 것이었다. 탄허 스님은 남베트남은 미국의 괴뢰로 보았으며, 정통성이 없는 정부로 규정하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자유진영 남베트남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군인들을 많이 파병할 때였다. 그 때 이러한 발언은 고승이라도 중앙정보부나 정보기관에 붙잡혀 가서 곤욕을 치르는 시절이었다.
그 때는 초강대국 미국과 자유진영 월남이 공산주의 북베트남(월맹)을 모두 이길 것이라는 것이 상식이었으며 중론이었다. 3선 개헌에 성공한 박정희 정권의 반공 동원 체제라서 사회 분위는 매우 엄중했다. 다른 목소리는 낼 수가 없었다. 언론사 외신부나 대학가에서나 외신과 영자잡지를 보고 아주 극소수만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알 때였다. 하지만 언론 통제로 민중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파월용사들의 승전보와 위문공연만이 신문과 방송을 도배했을 때였다. 탄허 스님만이 독특하셨다.
▶한번은 탄허 스님이 일본을 며칠 다녀 온 다면서 강의를 열흘 정도 쉬었다. 지금은 국민 소득 수준이 올라가 해외여행을 이웃집 마실 다니듯 하지만, 70년대 초만 해도 여권을 받아 해외에 나간다는 것은 특권에 속했다. 물론 방문국의 초청장은 필수였다.
귀국해 강의를 하시면서 폭탄선언을 하였다. 중앙정보부에 들어가 이틀 동안 조사를 받고 어제 나왔다고 했다. 일반 시민이었으면 남산 중정에서 조사 받았다는 사실을 감히 공공연히 발설하지는 못했으리라. 조사 내용은 일본에서 누구를 만났느냐? 였고, 월맹이 미국을 이긴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라는 것이었다고, 스님은 그 조사 과정과 답변을 청산유수로 말씀하셨다. 중정의 조사관들이 스님이 정역을 풀어 설명하는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일반인들과는 전연 다른 코드로 접근하는데 그들은 난감했으리라. 중정에서 풀어주면서 단단 이르더란다. “나가서 월맹이 이긴다고 떠들지 말라고. 다음에는 정말 고생시킨다”고. 그럼에도 그침이 없으셨다.
내가 처음 탄허 스님을 뵈었을 때의 인상은 작달만한 키에 통동한 체구였다. 두루마기 승복을 걸치고, 동그란 얼굴에 돌안경을 끼신 모습은 아주 당당하셨다. 아마 남산 중정 취조실에서도 그랬을 것이다.
나는 주역이나 점성술을 신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속뜻을 바로 알고 어떤 현상 추이를 그 이론이나 도상을 빌려 표상하는 데는 그리 반대하지 않는다. 현대의 국제관계학자들이 지정학(Geopolitics)이론으로 세계정세와 국가간 동학을 논하듯. 지정학과 풍수도참은 깊이 들어가면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다.
▶ 베트남 전쟁을 반대한 미국의 저명한 인사들이 많았다. 국제관계학자 한소 모겐소와 케네스 왈츠, 언론인 월트 리프만 등이 대표적이다. 그 반대의 논리 근거가 각각 달랐지만 탄허 스님은 계룡산 김일부 선생이 창안한 정역으로 반대했다. 드골이 경험을 통해 통찰한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베트남 전쟁은 중국(중공) 굴기의 기회가 되었다
▶ 베트남전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묻는다. 일본이 한국전쟁(6.25)의 특수로 2차 대전의 폐허에서 경이적 경제성장을 이루었듯이, 한국도 베트남전쟁의 참전과 그로 인한 전쟁특수는 오늘의 경제발전의 기틀에 한몫했다. 북한의 핵 자체 개발도 베트남 전쟁 이후에 전개된 미‧중의 결탁으로 인한 세계/동북아 동학에 닿는다.
세계적으로는 미소의 대결로 중국이 어부지리를 톡톡히 챙겼다. 현재 중국 굴기의 단초는 베트남전쟁이다. 미국이 베트남전쟁에 패배함으로서 중국(중공)과 손을 잡았다. 미국으로서는 천하 삼분지계(三分之計)였지만, 대륙 중국은 명실상부하게 소련의 영향권을 벗으나 독자의 노선으로 세계에 등장하였다. 제3세계 비동맹운동의 동반자였던 인도를 제치고.
그리고 이러한 국제 정세를 타고 중국은 정치/경제적 대국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던 것이다. 이제 중국은 미국을 제칠 세계대전략을 구사하고자 한다. 왕호링(智囊, 王滬寧)의 ‘일대일로’의 지정학 전략이다. 그것이 실현될련지? 두고 볼 일이다.
세계사를 보면 패권전쟁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적 입장에서 걸쳐있는 국가/민족이 패권국의 위치에 오르는 것으로 분석했다.(*4) 그리고 피터 터친은 『제국의 탄생』에서 강대국의 변방 단층선에서 강대국이 태동한다고 많은 역사적 사례를 들었다.(*5) 한반도/한민족이 유력한 후보다. 하기에 따라서.
▶약소국의 자주/자위의 저비용 수단으로 떠 오른 것이 핵 보유의 전략이다. 약소국의 핵 보유의 효용에 대해 국제 관계론자/전략가들의 의견이 분분하였다. 한스 모겐소를 비롯한 부정적인 견해들은 대부분 강대국의 편에 선 논리이다. 『약소국의 생존론, 1981』을 쓴 이스라엘 출신인 마이컬 핸델은 “확실하게 약소국의 소규모의 핵 보유는 핵강대국의 위협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베트남전과 이라크 침공을(2003) 극렬하게 반대했던, 국제관계학계서 신현실주의자로 불리는 월츠(Kenneth Neal Waltz)는 1981년에는 "핵무기의 확산, 많을수록 좋다"(The Spread of Nuclear Weapons: More May Better,)라고 했다. 그는 핵무기의 확산이 국제 평화의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절대 무기인 핵이 역설적으로 세계의 평화를 가져 올 수 있다고 보았다. 강대국들의 힘의 논리가 정당화되는 무정부적인 국제정치 체제의 구조적 모순을 약소국이 핵을 보유함으로서 강대국과 약소국이 균형을 이룰 것으로 보았다. 월츠는 “따져보면, 새로운 핵무장국이 등장할 때마다 강대국은 똑같은 반응을 보여 왔다. 하지만 일단 핵 보유국의 지위를 얻고 나면, 큰 문제없이 공존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6)
▶26~27일 북미 정상이 베트남에서 만난다. 한반도에 완연한 봄이 오길 기대해 본다. 나는 베트남을 한 번도 가 보질 못했다. 죽기 전에 북베트남의 전쟁생명선이었으며 승리의 보급선이었던 ‘구찌터널’은 꼭 보고 싶었다. 이제 생각이 바뀌고 있다. 외금강산은 가봤지만, 그것을 넓혀서 한반도의 북녘 곳곳을 마음 놓고 돌아보고 싶다.
(*餘記: 박근혜에 아부하고자, 탄허 스님을 팔아먹는 월악산 어느 중도 있었다. 그 중이 만들어 낸 이야기를 어느 신문에서 탄허 스님의 친설로 실었다. 내 주변에 사실 확인과 모임에서 회자되었다. 민중들은 잘 속지 않는 데 의외로 식자들이 현혹되는 것 같다. 자기의 목적을 위해.)
2019.02.07. 인능산 누실에서 공관
참고
(*1:西崎文子『アメリカ外交とは何か』, 東京 岩波新書 2004. 144쪽)
(*2:노나카 이쿠지로 외『전략의 본질』, 임해성 역. (사)한국물가정보,2008, 335쪽)
(*3:김탄허 역『주역선해』 3권, 교림 1996. 427쪽) 水潮南天 水汐北地 天一壬水兮 萬折必東 地一子水兮 萬折于歸.
(*4: 다니엘 벨,『탈공업사회의 도래 1973』 )
(*5:피터 터친 『제국의 탄생』 윤길순 옮김, 서울. 웅진지식하우스, 2011. 145~146쪽)
(*6:공관 페북, 2017년 8월 30일 ★북한의 핵보유로 미국은 남한을 버릴 것인가?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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