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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소개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by 정가네요 2017.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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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고정희 / 나무도시


식물도감에서 접할 수 없는 식물 문화 이야기. 인류 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신화와 예술 작품, 이를 테면 그리스 신화와 셰익스피어의 희곡, 삼국유사와 심청전, 보티첼리와 푸생의 그림,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등에 등장하는 여러 식물들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분석은 식물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되돌아보게 하고, 문화의 원류가 무엇이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또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영원한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저자의 마지막 문장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에게 식물은 어떤 존재일까, 아니 식물에게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이를테면, 식물의 관점에서 바라본 수로부인의 헌화가와 심청전에 대한 저자의 해석은 새롭고 흥미롭다. 특히 심청이 연꽃을 타고 지상으로 돌아온 까닭을 연화화생이 아니라 치유와 위로를 담당했던 신의 역할, 자연의 역할에서 찾으며, 인류를 보살펴온 식물의 넉넉한 품을 강조하는 저자의 분석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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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은 인간에게만 혼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의 혼과 식물의 혼이 교감하면서 인간사가 진행이 되는데 여기서 식물이 오히려 능동적인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다. 움직이지도 않고 말도 하지 못하니 수동적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정보시스템을 통해 사람들을 '은밀히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 정보시스템이 바로 신, 혹은 혼인 셈이다. 각 식물 속에 들어가 사는 이런 혼들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다. 그저 우연히 이런 식물이 되고 저런 식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식물의 혼은 물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 그 목적이 늘 사람에게 이로운 쪽은 아니다. 사탕수수나 감자의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식물이 개입하는 양상이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그저 좋다, 그저 나쁘다로 가를 수도 없고 예측도 불허한다. 이 은밀한 지배자들은 인간사 전체에 영향을 주지만 개인과 특별한 친분관계를 맺고 그 개인의 삶을 지배하기도 한다. 커피, 담배, 아편과 같은 중독성 식물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며 사람에 따라 선호하는 차나 과일이 다른 것이나 같은 식물이라도 중독이 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있는 것도 사람이 식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식물이 사람을 선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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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포스의 신들은 계절에 따라 변신하는 자연신들이 아니라 마치 자리 잡힌 관공서 공무원들처럼 각자 맡은 부서가 따로 있었다. 그래서 여러 신들이 서로 협업하여 식물을 키우고 여물게 했었다. 그것을 로마에서 받아들인 후 꽃의 여신 플로라를 탄생시켜 복잡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는데 요약해 보면 이렇다.

피터는 천둥과 번개를 일으켜 날씨를 관장한다. 그의 아내는 그리스에서는 헤라라고 했고 로마에서는 주노라고 했는데 역할로 보아서는 우리의 삼신할머니와 흡사하다. 아이를 점지해 주고 가정을 보호하는 것이 주노 여신이었다. 게다가 여러 여신들을 거느리는 내명부 대장이기도 했다. 주노는 플로라 여신에게 꽃과 곡식을 자라게 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런데 꽃과 곡식이 너무 많다보니 플로라 혼자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므로 일을 도와주는 요정들이 필요하였다. 요정들은 상당히 세분화된 임무를 수행했다. 샘물의 요정, 강의 요정, 호수의 요정, 바다의 요정 등 물을 담당하는 요정들만 해도 꽤 많다. 그리고 숲과 나무의 요정이 있었으며 산과 동굴을 관리하는 요정도 있었다. 물론 초원의 요정도 있었고 골짜기를 담당하는 요정, 비를 담당한 요정이 각각 따로 지정되었고 일곱 개의 행성을 관리한 요정도 있었다. 이들이 모두 분주하게 움직이긴 했지만 한 가지 이들이 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봄바람이었다. 지중해에서는 봄바람이 서쪽에서 불어온다. 해마다 부드러운 서풍이 불어야 식물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이 서품의 신은 제피로스라고 했다. 그러므로 서풍의 신 제피로스는 플로라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이들은 봄마다 만나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샘의 요정들이 미처 적시지 못한 땅에는 제우스 혹은 주피터가 친히 번개를 던지고 천둥을 보내 큰 비를 내리게 했다. 이것이 바로 최고신의 본업이었던 것이다. 달의 여신 루나도 한 몫을 했다. 밤마다 식물에게 단 이슬을 내려주는 것이 그녀의 사명이었다. 루나는 오빠가 있는데 매일 황금의 사륜마차를 타고 하늘을 도는 태양신 헬리오스였다. 해라바기로 변한 요정이 사모하던 바로 그 헬리오스였다. 그는 햇빛을 듬뿍 내려주어 식물이 무럭무럭 자라게 했으며 여름 내내 땀 흘리며 열매를 영글게 하는 것은 농사와 수확의 여신 케레스의 임무였다. 그녀의 딸 프로세르피나, 즉 그리스의 페르세포네는 지하세계에서 초조한 심정으로 겨울을 보내며 초봄에 종자를 발아시키는 책임을 맡았다. 식물은 이렇게 거의 모든 신들이 총동원되어 합심으로 정성스레 키우고 가꾼 귀한 존재였다. 이를 위해서 어두운 지하세게로 내려가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았다. 그 일이 얼마나 힘겨웠으면 신들조차 혼자 감당을 못해 여럿이 힘을 합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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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삼거리 능수버들처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옛날 천안삼거리에 예쁜 능수아가씨가 아버지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선비가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가다가 천안삼거리에 도착했을 때 날이 어두워졌다. 맘씨 좋은 능수아버지가 참한 선비에게 묵어가라고 초대를 했다. 선비는 그만 아리따운 능수아가씨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과거시험이 임박해서 선비는 다시 돌아오겠다는 아쉬운 약속을 남기고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한양으로 떠났다. 그러나 선비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가씨는 결국 기다리다 지쳐 죽었고, 그 자리에서 아가씨의 곱고 긴 머리채를 닮은 버드나무가 자라났다. 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아버지가 버드나무를 근처에다 계속 심어서 천안삼거리 일대에는 온통 능수버들이 자라게 되었다. 그리고 이 능수버들들이 바람만 불면 여자의 긴 머리카락처럼 날린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선비는 과거시험에 합격했을까? 왜 버들아가씨들이 사람한 남자들은 해모수처럼 돌아가면 소식을 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