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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학교가 이래서야 - 학교를 가꾸자!

by 정가네요 2015. 6. 2.

 

<펌> http://www.kimcheon.co.kr/default/index_view_page.php?part_idx=300&idx=40669

 

 

제언- 학교가 이래서야…학교를 가꾸자!
- 정윤영(전직 교사·숲해설가·정가네동산)

입력 : 2015년 06월 02일(화) 

 
ⓒ 김천신문
요 근래 초중등학교의 교감, 교장으로 자리를 옮긴 친구들이 근무하는 학교를 방문한 일이 몇 번 있었다. 어떤 친구는 오래전부터 꽃나무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학교환경조성에 자문을 구한다며 일부러 학교를 방문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하였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지만 방문의 결과는 무척 실망스러웠다. 실망스럽다 못해 깊은 탄식이 나왔다. 한마디로 말해 학교환경은 빵점이었다.
    
학교에 있는 식물이라고는 어느 학교나 비슷하다. 생울타리로 심은 사철나무, 화단에 심어 놓은 가이즈까향나무, 그리고 히말라야시다 몇 그루, 소나무 몇 그루, 벚나무 몇 그루가 모두다. 조금 더 신경을 쓴 학교엔 잔디가 있고 흔히 꽃잔디라 부르는 ‘지면패랭이’가 심어져 있을 뿐이다. 정말 그런가 지금 당장 가까이 있는 학교를 한번 방문해보면 누구나 삭막한 현장을 확인할 수 있다. 수십 년 된 학교도 마찬가지다. 느티나무 같은 큰 나무가 몇 그루 더 있을 뿐이다. 여러해살이 꽃은 눈을 닦고 봐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학교장의 의식이 문제다. 모든 관리자가 말로는 전인교육을 하겠다고 강조하지만 관리자는 오직 학생들의 공부와 성적올리기에만 신경을 쓸 뿐이다. 입시중심의 교육풍토가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다. 학교환경 같은 건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학교에는 해마다 학교가꾸기 예산이 적게는 몇십만 원, 많게는 몇백만 원씩 책정되어 있다. 그런데 왜 학교환경이 이 모양인가? 10년, 20년 멀리 생각하지 않고 당장 보여주는 데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에게 학교를 공개하게 되면 고작 하는 일이 팬지 같은 한해살이 예쁜 꽃을 몇십만 원어치 사서 현관이나 복도에 장식용으로 잠시 놓아둘 뿐이다. 화분에 심어진 그 꽃들은 기껏해야 한 달 정도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는 사라진다. 올해 심어서 내년에 다시 꽃을 볼 수 있는 그런 꽃을 심을 생각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는다. 그런 꽃은 자람이 더디어 성가시기 때문이다. 기다릴 줄을 모른다.

 

학교가 붕괴되어 간다고 한다. 인정하기 싫지만 우리나라는 청소년 자살율이 세계 1위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1등이다. 요즘 아이들은 생명을 아주 하찮게 여긴다. 지나치게 지식만 앞세우고 끝없는 경쟁만 강조하다 보니 경쟁에서 뒤진 우리 아이들은 자기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고 얼마나 가치있는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다른 이를 존중할 줄도 모른다. 그래서 친구를 왕따시키기도 하고 쉽게 자기의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학교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학교는 결코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다. 훌륭한 사람은 절대로 공부만 잘 하는 사람이 아니다. 전인교육은 지적으로만 성장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서적 발달, 사회성의 발달 등 그야말로 전부문에 걸쳐 조화롭게 이루어져야만 전인교육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태도를 길러주는 것이 전인교육이다.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여주어야 한다.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자면 하찮은 생명도 정말 소중하다는 걸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 생명교육을 시킨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없다. 
    
생각해 보자. 잔디밭에 들어가지 말고 꽃을 꺾지 말고 나무를 사랑하자고만 외쳤지 그것들이 모두 생명을 가진 소중한 존재란 걸 전혀 가르치지 않았다. 내가 운영하는 인터넷 식물 카페인 ‘바람재들꽃’의 대문에는 제일 위에 “뭇 생명들의 가치는 똑같습니다”라고 써여 있다.
12년 전인 2003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렇게 외쳐 왔다. 풀이나 나무나 생명의 가치는 사람과 똑같다.
    
학교에 꽃을 심고 나무를 심자. 모진 추위를 견디고 이른 봄에 싹을 내고 움이 터서 잎을 내고 점점 자라 예쁜 꽃을 피우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자. 그리고 가을이 되면 과감하게 잎을 떨구고 맨살로 겨울을 나는 모습도 보여주자. 풀꽃 같은 작은 생명도 최선을 다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자손을 번식시킨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자. 그것이 생명교육이다.
    
1년 내도록 거의 모습이 변하지 않는 잔디와 사철나무, 향나무만 보여주지 말고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나고 자라고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자. 그러면 아이들은 저절로 모든 생명은 귀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싹이 나고 움이 돋는 것을 보는 아이들은 함부로 식물을 밟지 않고 함부로 나뭇가지를 꺾지 않는다. 풀도 나무도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것을 저절로 느끼기 때문이다. 관리자들은 꽃이 피고 잎이 지는 꽃이나 나무는 여러가지 이유로 관리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시는 전인교육을 하겠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자. 그러나 이제는 우리도 먹고 살 만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경제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세계 10위 정도의 경쟁력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아이들이 예쁜 것을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에도 관심을 가지게 하자. 그것이 우리 아이들을 살리는 일이다. 
    
그러자면 우선 학교환경부터 예쁘게 만들어야 한다. 내가 방문했던 학교가 너무 삭막해 보여 아무 관계없는 내가 괜히 죄를 지은 기분이 들었다. 우선 조금이나마 나아 보이게 우리 집에 있는 꽃을 몇 포기 갖다 심기도 했다. 학교의 꽃밭이 가정집 꽃밭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우리가 아이들에게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가?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준 적이 얼마나 되는가? 아이들의 심성이 더 이상 거칠어지지 않도록. 더 이상 메마르고 삭막해지지 않도록 어려서부터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을 맘껏 바라볼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자. 쉬운 것부터 하자. 학교를 가꾸자. 학교에 꽃을 심자. 학교에 나무를 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