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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이가 죽고 난 뒤,
혼자 있는 봄이 녀석이 외로워보여 고민하던 중에
우연히 초임 시절에 내가 가르쳤던 제자와 연락이 닿아 수놈 한 마리를 얻어왔습니다.
이름하여 그 이름도 거창한 '무풍'.
선산의 무을에서 얻어온 풍이 녀석이라고 그렇게 이름 지었지요.
시베리안허스키와 풍산개의 교배종이라고 하더군요.
한마디로 잡종이지요.
쓰다듬어 주면 납작 엎드려 주인에게 순종하던 녀석이었어요.
처음 데려왔을 때 며칠 동안 눈물을 흘릴 정도로
무지 순한 녀석이었는데 힘이 얼마나 좋은지 목줄을 잡고 있으면 사람이 줄줄 딸려갈 정도였습니다.
역시 쓸매 끌던 집안의 혈통을 타고났나 봐요.
그러던 어느 날, 옆지기 다래가 풍이를 한번 데리고 나가더니
그만 엎어진 채로 풍이에게 줄줄 끌려 가서는 두 팔뚝을 다 긁히고 말았습니다.
상처가 덧나지 않게 며칠 동안 거즈를 붙이고 난리를 쳤지요.
그래서 내가 가끔 한번씩 데리고 나가는 외에는 풍이 녀석을 말뚝에 묶어 두기로 했지요.
그런데 풍이 때문에 이제껏 자유롭게 풀어놓고 기르던 봄이 녀석도 함께 묶어 놓으니
안 그래도 한 성질하던 봄이 녀석이 갈수록 예민해져 사소한 것에도 자꾸만 짖어대는 겁니다.
새가 한 마리 날아가기만 해도 짖고 심지어는 날아가는 나비를 보고도 짖곤 하는 겁니다.
반면에 아침 저녁으로 볼일을 보고 오라고 봄이를 잠깐 끌러놓으면
풍이 녀석은 목줄이 끊어질 듯, 말뚝을 뽑아 버릴 듯 길길이 날뜁니다.
봄이처럼 오줌 똥도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아무데나 싸대서 밉상을 받는 녀석이 말입니다.
두 녀석은 전혀 친하지도 않았어요.
조금 친하게 지내도록 하려고 가까이 데리고 가면 봄이 녀석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풍이에게 달려들어 억지로 말리곤 한 게 몇 차례나 되었어요.
생각다 못하여 풍이 녀석을 한 달만에 다시 제자에게 데려다주었습니다.
겁이 많은 녀석이라 차에 태워 데리고 가는 동안에도
풍이 녀석은 오줌을 한 바가지나 누어 두텁게 깐 신문지를 다 적셔 놓고 말았습니다.
겨우 정 들려고 하다가 떠나게 되니 그래도 짠해지더군요.
남편은 관광버스 기사를 하고 남편 대신 시골에서 씩씩하게 농사를 짓는 제자에게
마늘 한 접과 애호박, 오이 등 힘들게 농사 지은 것들만 가득 얻어 왔습니다.
이래저래 미안하기만 했습니다.
그나저나 우리 봄이 녀석이 불쌍해 죽겠어요.
남자 복이 어쩌면 이렇게도 없을까요?
두 녀석은 도망을 가고, 또 한 녀석은 죽고, 또 한 녀석은 싸우다가 저 집에 가 버리고...
무을의 제자가 가을에 풍산개 새끼를 한 마리 준다고 하긴 했는데...
에구, 빨리 좋은 총각을 또 물색해 봐야겠어요.
불쌍한 풍이 녀석 ↑
더 불쌍한 봄이와 故 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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