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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

<펌> 백열 / 강재형

by 정가네요 2013. 7. 23.

 

<펌>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96516.html

 

등록 : 2013.07.21 19:12수정 : 2013.07.21 19:12

남북 문인 교류를 위해 북한에 다녀온 선배가 들려준 ‘전구 시리즈’가 있다.

 

휘황한 전등으로 빛나는 만찬장에서 들었다며 그가 전한 내용은 대충 이랬다.

 

“북에서는 전구를 불이 들어오는 알, ‘불알’이라고 한다.

 

형광등은 ‘긴불알’이고, 거기에 꽂혀 있는 점등관은 ‘씨불알’이다.

 

‘불알’ 여럿으로 만든 것은 ‘떼불알’, 가로등은 ‘선불알’이다….”

 

하지만 북한 사람 만나서 ‘불알’ 얘기 꺼내면 오해받기 십상이다.

 

이 얘기는 한자어와 외래어 다듬어 쓰는 북한 언어 정책을 비틀어 지어낸 것일 뿐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우스개가 농담을 넘어 진담처럼 퍼져 있다.

 

그냥 떠도는 게 아니라 ㄱ 교수(ㅅ스포츠신문 칼럼), ㄱ 논설위원(ㅅ신문)처럼 일부에서는 사실인 양 받아들이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북한에서는 샹들리에를 ‘무리등’(여러 개의 전등알이나 갖가지 모양의 형광등으로 이루어진 큰 조명 등)이라 하지만 ‘샨데리야’도 적지 않게 쓰인다.

 

흔히 ‘스타트전구(램프)’라 하는 점등관(글로스타터)은 북한 사전에 ‘글로우스위치’(glow switch)로 올라 있기도 하다.

 

표기 방식의 차이일 뿐 북한도 외래어를 제한적으로나마 쓰고 있는 것이다.

 

남한의 ‘꼬마전구’는 북한에 가면 ‘콩알전구’가 된다.

 

전등알’(전기알), ‘등알’은 전구를 두루 이르는 북한말이다.(표준국어대사전)

 

 

‘내년부터 백열전구가 사라진다’는 소식을 듣고 ‘전구 시리즈’를 떠올렸지만 ‘백열전구’에 담긴 뜻도 새겨볼 만하다.

 

‘백열’(白熱)의 뜻은 ‘물체가 흰빛이 날 만큼 온도가 높음’, ‘최고조로 오른 기운이나 열정’이다.(고려대한국어대사전)

 

‘백열’은 물리 현상만 가리키는 게 아니라 ‘백열하다’, ‘백열적이다’처럼 인성을 드러낼 때도 쓰는 표현인 것이다.

 

새 기술에 밀려 백열전구는 사라지지만 그 불빛 아래에서 일하고 바느질하고 공부하던 우리의 백열함은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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