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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

선암사를 아시나요?

by 정가네요 2008. 7. 26.

 

*

딸이 회사에서 웹진(웹+잡지) 편집을 책임지고 있는데

이 달호에 실을 글 하나가 펑크났으니 저 보고 대타로 글을 하나 써 달라고 하더군요. 

주제는 'refresh 세상 속으로!'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아래의 글을 써서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아빠를 잘 둬서 원고 펑크 날 일도 없고 고맙다'고 쪽지가 왔네요.

그래서 저는 '내 글은 고료가 무척 비싸니 잘 알아서 하라'고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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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를 아시나요?

 

 

가끔은 무조건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을 때가 있지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그런 곳이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그럴 때마다 전남 순천시 승주읍에 있는 선암사仙巖寺를 찾습니다.

잘 늙은 절집인 선암사는 천천히 걷기에 딱 좋은 곳이거든요.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있는 송광사가 사람을 압도하는 형세라면 선암사는

세상 먼지에 찌든 속인을 포근하게 품어주는 그런 형상이랍니다.
가람의 배치나 풍경들이 하나같이 그리 권위적이지 않고 평온한 느낌을 줍니다.

전국의 사찰들이 중창사업으로 예스러운 맛을 대부분 잃어버렸지만
선암사에 가면 아직도 고즈넉한 절집의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요즈음 선암사를 찾아가면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숲길이
짙은 그늘을 만들어주는 다채로운 나무들 덕분에 서늘하기조차 합니다.
포장되지 않은 이 흙길이 아름다운 길로 뽑히는 건 당연하겠지요.
숲길이 끝날 즈음 만나는 이름도 예쁜 무지개다리 승선교는 세속의 번뇌를 잊게 합니다.
홍예 아래에서 흐르는 계곡물에 손을 씻으며 눈길을 들어 바라보면
제 그림자를 물에 비치어 완전히 둥근 원을 이룬 승선교 안에
날아갈 듯한 강선루가 들어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선녀가 내려온다는 강선루는 두 발을 계곡에 담그고 그림같이 서 있습니다.
눈을 감고 있으면 하늘거리는 선녀의 옷자락이 보일 듯도 합니다.
이 풍경 하나로도 선암사는 충분히 제 몫을 다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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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루를 뒤로 하고 삼인당을 지나 일주문을 넘어가면 바로 경내로 들어섭니다.

한국에서 제일 고색창연하고 꽃과 나무가 가장 많은 절 선암사,

 

이른 봄에 피는 무우전 옆의 600년 묵은 '선암매'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몇백 년 된 영산홍과 자산홍이 한데 어우러지는 늦봄의 선암사는 말 그대로 황홀한 풍경화입니다.

어디 봄뿐이겠습니까.

오래 된 나무와 온갖 꽃들로 가득한 선암사는 그 어느 계절에 가도 좋습니다.

한여름에 가면 군데군데 피어있는 연분홍 상사화를 볼 수 있고요,

늦가을에 가면 붉게 핀 석산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은목서 금목서의 취할 듯한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겁니다. 

선암사가 '동승'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의 촬영지였던 건 우연이 아닐 겁니다.
야트막한 돌담 귀퉁이에 서서 담 안팎을 내려다 보면 누구나
곳곳에서 사진을 찍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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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야 할 것들이 정말 많지만

'달마전'의 '석정(石井)'을 볼 수 없다는 건 참으로 아쉬운 일입니다.

석정은 달마전 마당에 놓여 있는 돌확인데 그 조형성과 소박한 모습이
국보급의 아름다움을 지녔지만 아무나 볼 수 없게 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산에서 솟아난 차가운 물을 끌어들여 서로 다른 형태의 4개 돌확을
대나무로 연결하여 차례로 흘러내리도록 만들어진 것인데
상탕은 찻물로, 중탕은 밥짓는 물, 삼탕은 몸씻는 물, 말탕은 허드렛물로 쓴다고 합니다.
선암사가 한국전통차의 다맥을 16대째 이어 오고 선암사의 주지 스님인 지허 스님이
'지허 스님의 차'라는 책을 써서 한국전통차를 소개한 것도 우연이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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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확을 못 보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서

그 유명한 '뒤깐'에서 볼일 한번 보고 나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지요.

동화작가 정채봉님이 '대한민국 제일의 이 뒷간에서 뒤를 한번 본 적이 있는데,

그날 나의 내장 속에 하얀 눈이 내리던 것 같은 느낌을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고 했으며,

정호승 시인이 '눈물이 나면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 보라.

이 해우소에서 영혼의 대소변, 번뇌의 대소변을 배출한다면

우리의 삶이 더 평화롭지 않을까. 자아를 찾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 곳을 선물한다'고 말했던 그 뒷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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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에서 낙안읍성으로 가는 857번 도로는 일명 '조정래길'입니다.

고유의 지명이었던 '오금재, 벌교 가는 길, 선암사 가는 길'을 잃어버린 지역민들은 불만이 크지만

선암사에서 태어났다는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를 기리기 위해 붙인 이름이지요.

그 길을 넘어 낙안으로 내려서기 직전의 왼편 산기슭에는 우리나라에서 홍매가 가장 먼저 피는 금둔사가 있습니다.

금둔사를 지나면 벌교 읍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낙안온천'이 있고 그 아래 낙안읍성이 있습니다.

낙안온천은 국내 온천 가운데 가장 전망이 좋은 온천이라 합니다. 

  

선암사를 소개할 때 빠뜨려서 안 될 곳이 한 곳 더 있습니다.

선암사에서 벌교가는 길로 들어서지 않고 조금만 나오면 오른쪽으로 상사댐 가는 길이 있습니다.

상사호 전망대를 찾아가는 이 길은 호반을 끼고 있는 천혜의 드라이브 코스로서
저녁 노을은 물론이요, 해가 뜨기 직전에 수면에 피어 오르는 물안개는 정말 멋진 풍경을 연출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손꼽히는 호반 풍경이랍니다.

상사호 옆에는 믿기지 않는 싼 가격에 정말 분위기 좋은 아젤리아 호텔이 있었는데
지난 해 상사호 수질 보호를 위해 헐어버려서 허전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상사호를 마음껏 내려다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곳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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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로 가는 길은

호남고속도로 주암(송광사)나들목을 지나 수 분 뒤면
승주(선암사)나들목에 이르는데 이곳으로 나가 우회전하여 10분쯤 올라가면 선암사에 닿습니다.

 

아, 일정이 조금 더 길다면 그 유명한 순천만의 낙조도 보고 오세요.

해질 무렵 황금빛으로 물든 S자 수로는 정말 아름답기 그지 없지요.

순천시 해룡면 농주리에 있는 용산이라는 낮은 야산에 올라가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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