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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모음

<펌> 숙종의 여인들 / 인현왕후

by 정가네요 2017. 4. 23.


<펌> http://elitehcs3.tistory.com/195



<숙종의 여인들>


2010년,  MBC 드라마 《동이》를 보고

실제 역사 속 주인공들의 나이와 연대를 조명해가며

조선 숙종시대의 역사를 공부해 본다.



숙종

조선 제19대 왕

[肅宗, 1661~1720. 향년 60세]

재위 1674-1720 (배우 지진희)

재위 시에 당쟁이 심하여

서인(西人)과 남인(南人)의 파쟁이 그칠 날이 없었다.


왕은 숙원(淑媛) 장씨(張氏)를 총애하여

1688년에 소의(昭儀)로 승격시켰으며,
이듬해 장씨에게서 출생한 왕자의 명호(名號)를 정하고자 하였다.


서인들이 이를 반대하자

서인의 거두 송시열(宋時烈)을 유배시키고 사사(賜死)하였다.


곧 왕자의 명호를 정하였으며,

인현왕후를 폐위시키고,

장씨를 희빈(禧嬪)으로 승격, 이어 1690년엔 왕비로 책봉하였다.


그러나 1694년 남인을 추방하고

서인을 등용시켜 폐비 인현왕후를 복위시켰다.


또 장씨를 희빈으로 강등시키고,

인현왕후 사후인 1701년엔 무고죄(誣告罪)로 사사(賜死)하였다.


그리고 1718년,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동이)가 사망하고

2년 뒤, 숙종도 승하했다.



숙종의 부인들

(부인이 9명이다)


1. 인경왕후(仁敬王后), 김씨

- 딸 둘을 낳았음


2.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 1667년생)


3. 인원왕후(仁元王后. 김씨 1687년생)


4. 희빈 장씨(장옥정. 1659년생)

- 장남 경종(제20대). 차남 성수


5. 숙빈 최씨(동이.1670년생)

MBC 드라마 주인공

- 장남 영수, 차남 연잉군(제21대 영조)


6. 명빈 박씨 - 아들 연령군
7. 영빈 김씨
8. 귀인 김씨
9. 소의 유씨




숙종의 부인들 중에

역사에 이름이 많이 알려진 여인들


둘째 부인. 인현왕후(仁顯王后)

인현왕후 민씨 - 배우 박하선

(1667-1701. 향년 35세)

자식이 없이 35살이란 젊은 나이에 죽은 비운의 여인

정파는 서인
1681년, 15세 때 숙종의 계비가 됨


1689년, 23세 때 기사환국으로 궁중에서 쫒겨나 서인(평민)이 됨
1694년, 28세 때 갑술옥사로 왕후로 복귀


1701년, 중전으로 있을 때

35세로 사망 (숙종의 나이는 41세)
자신보다 3살 아래인 숙빈 최씨(동이)를 많이 아끼고 보살폈다.

셋째 부인. 인원왕후(仁元王后)


인원왕후 김씨 - 배우 오연서

(1687년-1757년. 향년 71세)


숙종의 계비로는 두 번째 계비이다.

인현왕후와 장희빈 사망 1년 후

1702년(숙종 28) 10월 3일에

16세의 나이로 숙종의 나이 42세 때, 세 번째 왕비로 책봉되었다.

숙종과 나이 차는 26살

숙빈 최씨인 동이보다는 17살 아래였다.


경종이 즉위한 후엔 1살 위의 왕대비가 되었고,

영조 즉위 이후에는 7살 연상의 대왕대비가 되었다.


처음에는 소론이었으나

남편숙종과 연잉군 때문에 노론으로 당색을 바꿨다.

특히 연잉군를 아꼈는데 
연잉군도 인원왕후를 친어머니 이상으로 따랐다고 한다.
자기보다 1살 아래인 경종보다는 7살 아래인 연잉군을 아꼈다고 한다.


경종 1년(원년, 1721년),

연인군의 생모인 동이가 1718년 사망하고 3년째 되던 해에
동이의 아들인 연인군을 왕세제로 등극시키고,

자신의 양자로 입적시켰다.


인원왕후는 훗날 연잉군이 임금으로 등극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무덤은 서오릉의 하나인 명릉(明陵)이며

 숙종, 인현왕후와 함께 묻혀 있다.

아들(양자) : 21대왕 영조 (숙빈 최씨 소생)



넷째 부인. 희빈 장씨(장옥정)

희빈 장씨 - 배우 이소연

(1659 -1701. 향년 43세)

아들 경종이 임금이 되는 것을 못 보고

43살이란 젊은 나이에 사약을 받고 비명으로 간 여인

장남 경종(제20대 임금)

차남 성수
정파는 남인


숙빈 최씨보다 11년 연상이다.

숙종은 오래도록 아들을 얻지 못하다가

마침내 장씨와 사이에서 왕자 윤(景宗)을 낳았고

1689년(숙종 15) 1월 윤을 원자로 책봉하였다.


이에 따라 소의 장씨는 희빈에 오르고,

세자 책봉은 불가하다고 상소한

서인의 거두 송시열은 유배되어 사사(賜死)되었으며
나머지 서인들도 유배되어

남인(南人)이 정권을 잡게 되었다.(기사환국 己巳換局).

 

이 해 5월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출하고

희빈 장씨를 왕비로 올리자

서인 박태보(朴泰輔) 등 80여 명이

이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참혹한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1694년(숙종 20)

서인의 김춘택(金春澤) 등이

남인들을 역모로 고발하였고
마침내 서인들이 정권을 잡았다.(갑술환국 甲戌換局)


숙종은 인현왕후를 복위시키고

장씨를 희빈(후궁)으로 강등시켰다.


1701년(숙종 27) 인현왕후가 죽자

희빈 장씨가 자신의 거처인

취선당(就善堂) 서쪽에 신당(神堂)을 차려 놓고

인현왕후를 저주한 것이 원인이라고 지목되었다.

장희빈의 오빠 장희재(張希載)가 처형되고

곧이어 숙종으로부터 자결을 명령받아 죽임을 당했다.

흔히 알고 있기로
인현왕후가 1694년 왕비로
복귀하고

장희빈이 바로 죽은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는 장희빈이 1701년에 죽었으니

인현왕후가 왕비로 복귀하고도 7년 후에 죽는다.

인현왕후는 1667년생으로

장희빈이 인현왕후보다 8년 연상이다.



경종[景宗

장희빈의 아들 경종 - 배우 윤찬 

경종(1688~1724. 향년 37세). 재위(1720∼1724)


어머니 장희빈이 1701년 죽고난 뒤

19년 후인 1720년에 임금이 되고 4년 후 1724년에 사망했다.

실제 역사는 드라마의 내용과는 달리

훗날 어머니 장희빈이 사약을 받고 죽자

그 충격으로 말더듬이 증상까지 보이면서

병을 얻어 자식을 낳지 못하게 된것으로 되여 있다.


야사에서는 장희빈이 죽으면서

세자의 불알을 움켜쥐고 잡아당기며

죽는 바람에 아이를 낳지 못했다고도 전해내려오고 있다.

하여간에 장희빈이 죽은 뒤에 얻어야 할 병을

'동이' 드라마에서는

장희빈이 죽기도 전에 이미 앓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즉 제2의 연산군이 될 수 있는 사건을 겪었지만

원래 심성이 착한 경종은

숙빈 최씨를 잘 모셨다고 한다.


경종재위기간 4년 동안은 노론, 소론의 당쟁이 절정기였다.

경종의 사망에 대해서는 독살설이 많았다.


1. 게장과 생감.
게장과 생감은 상극인 음식이라

한의학에서는 함께 먹는 것을 꺼린다.

왕세제 연잉군(영조)은 병석의 경종에게 이 두 음식을 함께 올렸다고 한다.


2. 인삼과 부자.
게장과 생감을 먹은 뒤 병세가 급격히 나빠진

경종에게 연잉군이 이번에는 인삼과 부자를 올렸다고 한다.

독성이 강한 약재인 부자.

이를 두고 당시 어의는 크게 반발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경종의 이복동생인

제21대 영조는 재위기간 내내 이복형인 경종 독살설로 시달렸다.



다섯째 부인. 화경숙빈(和敬淑嬪) 최씨(崔氏)


동이. 최복순 - 배우 한효주

(1670-1718. 향년 49세)

남편 숙종의 사랑을 받았으나

아들(영조)이 임금이 되는 것을 못 보고 눈을 감은

파란만장한 생을 살다가 간 여인


중전 인현왕후보다 3살 연하이고,

장희빈보다 11년 연하이다.
조선 제19대 왕 숙종의 후궁이자, 제21대 왕 영조의 어머니이다.


무수리로 궁궐에 들어와 인현왕후를 섬기다가

인현왕후 폐출 후 숙종의 승은을 입어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낳았으며 정1품 숙빈에 봉해졌다.



아들 연잉군(제21대 영조)

(1694-1776 . 향년 83세)


숙빈 최씨의 아들 연잉군(재위 1724-1776 ) - 배우 이형석 

어머니 사후 6년 뒤에 임금이 된다.


장희빈의 아들 경종의 죽음을

둘러싸고도 독살설이 제기되는 이유는
당시 노론, 소론 두 서인 계열간의 대립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경종시대에 대거 소론에 의해

노론이 한바탕 정치적 숙청을 당하는 일이 있었고.
당시 왕세제였던 영조가 세제의 자리는 물론, 
목숨까지 위태로웠을 정도였다.

따라서 이러한 시련을 딛고

왕위에 오른 영조에 대한 후대의 평가가
영조를 위시한 노론들이 경종을 독살했다는 설이 나온것이다.


훗날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의 눈에는
정치적 대립 끝에 왕위에 오른

자신의 아버지(영조)를 보는 시각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래서 사도세자는

아버지와 달리 반노론 성향을 가지게 된다.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기도 하였다.


이것이 구실이 되어 사도세자가

모함을 받아 죽게 되는 결정적 원인이 된 것이다.

결국 사색당파 싸움의 희생물이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실제로 드라마의 동이는 어떤 여인이였을까?

드라마의 주인공이 동이 최숙빈이니

주인공을 나쁘게 그릴 수는 없겠죠.

실제 최숙빈이 어떤 인물이었을지는 당시 기록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최숙빈이 사망한 후에 쓰여진

"숙빈최씨신도비"에서는

최숙빈의 성품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남의 장단점을 말하기 좋아하지 않으셨다.

곁에서 모시는 자가 혹시라도 말하면 그때마다 가르치고 꾸짖으셨다.

궁내에서 모두 칭찬하고 찬미했다.

숙빈은 품행이 부드럽고 아름다웠으니,

그 성품은 맑고 신중했으며 그 행동은 도탑고 무거웠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두드러지게

나서는 것을 경계하는 신중하고 차분한 성품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최숙빈이 남긴 족적은 이런 평가와는 자못 상반됩니다.

최숙빈은 인현왕후의 깊은 총애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숙종과의 만남도 인현왕후와 관련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인현왕후가 폐비되어 쫓겨난 지 3년째 되는 해인

1692년 음력 4월 22일, 숙종이 늦은 밤에 궁을 거닐고 있었는데,

마침 지나던 궁녀 처소 한 곳에서

불빛이 새어 나와 호기심에 들여다 보니

궁녀 하나가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상 앞에 꿇어 앉아 있더랍니다.

왕이 이상히 여겨 뭐하느냐 물으니, 궁녀가 대꾸하길,

"소녀는 중전의 시녀로서 특별한 총애를 받았습니다." 라며,

폐비된 인현왕후의 생일이라

생신상 차려 놓고 진상례를 올리고 있었다고 대답하였답니다.

이 궁녀가 바로 최숙빈이고 숙종은

그런 최씨의 충정을 가상히 여겨 가까이 두게 되었다는 일화입니다.


이는 당대 기록인 수문록에 기록된 일화로서

최숙빈의 등장이 인현왕후와

서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짐작케 하는 일화입니다.

이렇게 숙종의 총애를 입기 시작한 최숙빈은

신도비에 기록된 내용과는 상반되게도

끊임없이 인현왕후의 무고함을 주장하며

장옥정의 패악을 진언하였고,

숙종 역시 그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최숙빈의 가장 큰 공로는 장희빈을 결정적으로

중전의 자리에서 끌어내린 갑술환국이 그녀의 입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장희빈(당시 중전)이 최숙빈(당시 숙원)을

독살하려 했다는 소문이 돌아 정국을 들쑤셨는데

결정적으로 최숙빈의 입에서

남인(장희빈)이 자신을 독살하려 했다는 고변이 나온 것입니다.

숙종이 대로했고, 사건 정황을 제대로 파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체

남인을 숙청하기 시작합니다.

장희빈은 폐비되어 다시 희빈이 되었고,

폐비였던 인현왕후는 복위되어 돌아오는 상황이 최숙빈의 입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최숙빈의 고변은 이로서 끝나지 않습니다.

인현왕후가 복위되고 7년 후 갑자기 병을 얻어 사망하게 되는데

인현왕후가 사망하기 전부터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돕니다.

이 소문 역시 최숙빈의 입을 통해 숙종에게 전해지고

역시 대로한 숙종은 장희재와 장희빈을 한 달 터울로 죽여버립니다.


여기서 위의 신도비문은.

최숙빈이 사망한 때는 숙종 재위 연간인 숙종 44년(1718)입니다.

한창 서인이 정국을 주도할 때였으니,

서인정국에 공로가 있는

최숙빈을 나쁘게 말할 때가 아니였습니다.

최숙빈의 성격은 다분히 포장되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악하고 간교한 성격이었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최숙빈은 최선을 다해

정적이자 연적이었던 장희빈을 제거했습니다.


장희빈과 최숙빈은

서로를 죽여야만 살 수 있는 관계였습니다.

오히려 인현왕후보다 장희빈과 악연으로 엮인 것은 최숙빈입니다.

최숙빈 때문에 장희빈은 폐비되었고,

종국엔 죽어야 했으며, 그 아들 경종의 왕위 역시

최숙빈의 아들 영조에게 빼앗겨야만 했으니

역사적 라이벌로 꼽으라면 장희빈 최숙빈을 꼽아야 할 것입니다.


(위의 사진들은 역사 설명을 쉽게 하기 위해

드라마 '동이'의 사진을 빌려온 것이다.)

편집 유유자적

참고로 한씨 성 가진

미녀 스타연예인이 엄청 많다.

헷갈려서 아는 대로

한씨 집안 따님들의 이름을 적어 본다

한가인(나쁜남자)
한고은(명가)
한예슬(타짜)

한은정(구미호)
한지민(이산)
한지혜(에덴의 동쪽)

한채영(본명김지영.쉬즈올리브)
한혜진(주몽)
한효주(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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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의 '이산' 드라마에서 이서진+한지민 커플과

숙종대왕의 '동이'에서 지진희+한효주 커플의

스토리가 너무 비슷하고

출연한 여자주인공 이름도 한씨라 헷갈렸다.^^




출처: http://elitehcs3.tistory.com/195 [낙화유수(落花流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