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주역의 대가 이응문 "주역은 역지사지 가르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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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바람이 불지펴 집안 밝게 정제하는 ‘風火家人’ 괘…내부 화평과 안정 힘써야”
"무술년(戊戌年)은 다섯 번째 천간(天干)인 무(戊)와 열한 번째 지지(地支)인 술(戌)을 합친 간지이다. 무(戊)는 상괘로 ‘손풍(巽風ㆍ☴)’인 장녀에 해당한다. 술(戌)은 하괘로 ‘이화(離火ㆍ☲)’인 중녀에 상응한다. 장녀(長女)가 위에 있고 중녀(中女)가 아래에 있다. 상하 위치가 올바르고, 밖으로부터 집에 들어와(☴) 등불을 밝히고(☲) 가족을 만나는 형상이다. 무술년 한 해는 여자가 집안의 살림살이를 주관하는 ‘풍화가인(風火家人)’의 괘로 볼 수 있다."주역(周易)의 대가 청고(靑皐) 이응문(李應文·58) 동방문화진흥회 회장의 2018 무술년에 대한 괘 풀이다. 그는 한국에서 주역학의 법통(法統)을 이은 인물이다. 주역학으로 일가를 이룬 야산(也山) 이달(李達·1889~1958)의 친손자이고, 『대산주역강의』 등 저서와 강의를 통해 주역을 대중화한 대산(大山) 김석진(金碩鎭·91) 문하에서 공부했다. 대산은 자신이 맡아온 동방문화진흥회장 자리를 그에게 물려줌으로써 수제자로 인정했다.
서울 대학로 흥사단 본부에 가면 어쩌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되었을 시민강좌를 만날 수 있다. 주역과 유학(儒學) 경전, 천자문 등을 강의하는 동방문화진흥회가 그곳에 있다. 1986년 첫 강의를 시작했다고 하니 30년을 넘었다. 2000년대 초 사단법인이 된 동방문화진흥회 이응문 회장은 2017년 3월 자신의 ‘30년 공부’를 담은 책 『세상을 담은 천자문 자해(字解)』(담디 펴냄, 전 2권)를 펴냈다. 2016년 주역으로 천자문을 푼 『주역을 담은 천자문』을 낸 데 이어, 천자문 각 글자의 생성 원리를 주역으로 푼 자원(한자의 원리) 해설서를 낸 것이다. 뜻글자인 한자를 역(易)의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시도는 예전에도 있었으나, 1000자나 되는 천자문 각 글자를 역의 원리로 해설하려는 시도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또 대구시 대명동에 대연학당(大衍學堂)이 있다. 2002년부터 이 회장이 주역을 가르쳐온 학당이다. 요즘 세상에 이런 공부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다소 낯설기는 하지만, 한때 주역은 동양 학문의 제왕(帝王)으로 대접받았다.
"올해는 바람이 불지펴 집안 밝게 정제하는 '風火家人'괘…내부 화평과 안정 힘써야"
이 회장은 2018년 주역의 점괘를 얻고 해석하는 과정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모든 사물 현상에는 조짐과 기미라는 것이 감춰져 있다. 이를 파악하는 방편 중 하나가 그해의 간지(干支)를 주역으로 풀어보는 것이다. 천간과 지지의 순서대로 상·하 괘(卦)를 정하고, 그 수를 합해 효(爻)를 정한다…" 이런 식의 설명은 아무리 친절해도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같다. 그래서 과정은 생략하고 결과만 듣기로 했다.
-올해는 '풍화가인(風火家人)' 괘라고 했는데, '바람ㆍ불ㆍ집사람'은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
“‘풍화가인’의 괘는 바람(☴)이 불(☲)을 지피는 것으로 집안을 밝게 정제하는 형상이다. 이 가운데 '가인(家人)'이란 괘명은 집안 식구를 다스리는 제가(齊家)를 의미한다. 집안에서 불이 나면 바람을 타고 밖으로 번져나간다. 집안에서의 바른 언행, 가정 평화와 안정이야말로 치국(治國)의 바탕이 된다. 이 괘를 구성하는 효사(爻辭) 중에는 '부가대길(富家大吉)'이 나온다. 집을 부유하게 해 크게 길하다는 뜻이다.“
-2018 무술년 국운이 좋은 쪽으로 해석된다는 것인가?
"국내외 상황에 비춰볼 때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주역 괘의 순서로 '가인(家人)'은 37번째다. 바로 앞에는 '밝음이 상한다'는 ‘명이(明夷)’가 있다. 바로 뒤에는 '서로 뜻이 어긋나 싸운다는 '규(睽)‘가 있다. '명이'는 땅속에 해가 들어가 밝음이 상한다는 뜻이다. '규'는 불이 연못 위에 있어서 물(水)은 불(火)을 끄려 하고, 불은 물을 말리려 하는 물불 안 가리는 반목과 질시를 의미하기도 한다. 명이와 규, 그 어디에도 기울지 않게 가인의 도를 잘 행해야 한다."
-'가인(家人)'의 도를 잘 행해야 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올해는 특히 내부의 화평과 안정, 내치(內治)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언행(言行)을 함부로 하지 말고 내부 민심이 동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반 국민은 수신(修身)에 바탕을 두고 제 직분에 충실해야 한다."
-올해 남북문제는 어떻게 될까?
"'가인'에는 '불은 불대로 물은 물대로 상하가 나뉜 화수미제(火水未濟)'란 괘가 들어 있다. 괘의 해석만으로 올해에는 남북 관계가 크게 진전이 없을 것 같다. 남북한 관계를 전체적으로 풀어보면 '뇌산소과(雷山小過)'라는 괘다. 이는 물이 땅 밑으로 흘러가듯 조금씩 점차적으로 진행된다는 뜻이다."
-작년(2017년)의 경우에는 어떤 괘가 나왔는가?
"정유년은 '뇌택귀매(雷澤歸妹)'라는 괘였다. 안 따져보고 서둘러 시집을 가는 괘인데, 주로 여자가 어려움을 겪는 괘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관계있었는지… 이런 얘기는 그만 하겠다."
그러면 내년(2019년)은 어떠한가?
"앞에서 말한 '서로 뜻이 어긋나 싸우는 규(睽)'의 괘가 들어 있다. 조심해야 될 것 같다. 하지만 어려움에는 어려운 대로 길이 있다. 혼란한 시기를 통과하는 해결책으로 주역에서는 마른 버들에서 싹이 나오는 '고양생제(枯楊生稊)'를 제시하고 있다. 어려운 때일수록 근본으로 돌아가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주-역은 지금부터 3000년 전 중국 주(周)나라(B.C. 1046∼B.C. 771) 때에 완성됐다. 주역으로 보는 이런 점(占)이 지금의 세상에서 얼마나 들어맞을 것으로 보나?
"한번 생각해볼 만하다는 것이고 참고 자료일 뿐이다. 반드시 꼭 그렇다는 게 아니다. 물론 객관적 조짐을 보여주는 면은 있다고 본다. 이율곡 선생이 '10만 양병설'을 내놓을 때도 주역의 괘를 얻었고, 이순신 장군이 해전(海戰)에 나설 시기를 정할 때마다 주역 이치로 점을 쳤다고 나온다. 하지만 어떠한 점괘가 나와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노력에 의해 흉(凶)을 피할 수도 있고 보완할 수 있다. 주역은 결코 결정론의 세계가 아니다."
-점괘를 뽑는 방식은 댓가지 50개나 혹은 8개를 이용하거나 글자 획수 등에서 숫자를 얻 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회장은 점을 얼마나 자주 보나?
"나는 세상 일을 점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나 자신을 닦기 위한 '위기지학(爲己之學)'으로서 주역을 공부해왔다. 주역은 자연의 이치와 인간 존재의 관계를 탐구하는 심오한 학문의 세계이다. 주역을 단지 점치는 것로 받아들일까봐 염려된다."
세-간에는 주역 공부를 점치는 공부로 여기고, 실제 주역으로 점을 치고 있지 않은가?
"나의 스승인 대산(大山) 선생님은 매일 점괘를 뽑았다. 그날의 괘를 보고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경지에 훨씬 못 미친다. 사실 주역에는 '점(占)'이라는 글자가 딱 한번 나올 뿐이다. '혁(革)'괘에서 '대인은 점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언급해놓았다."
-주역에 나오는 '혁'은 과녁을 뜻하는가?
"그렇다. '혁(革)‘괘는 활로 정확히 과녁을 맞히듯이 알맞은 시기에 제도나 법령을 고쳐 바꾼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 안에 '대인호변 미점유부(大人虎變 未占有孚)'라며 점이라는 글자가 나온다."
-'대인은 호랑이처럼 변모해 점을 안 쳐도 신망이 있다'는 뜻인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 털갈이하는 범의 위용은 빛난다. 대인이 때맞춰 공정한 개혁을 단행하면, 국민은 그 위엄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니 굳이 길흉(吉凶)을 점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주역에서 점치는 목적은 자신을 혁신하고 세상을 바르게 개혁하는 데 있었다."
-세상이 어지럽거나 자기 결정을 스스로 못 하는 사람일수록 점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회장은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점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지 부정하지는 않는다. 점(占)을 문자 구조로 보면 천지 이치를 관통해(丨) 사람이 나갈 바를 점찍어(丶) 가르쳐준다는(口) 뜻이다. 사물을 관찰·궁리하는 격물치지(格物致知)가 점이고, 사물을 바라보는 초점·관점·시점이라는 게 다 점인 것이다. 나아갈 때인지 물러날 때인지, 그렇게 해서 흉함을 피하고 길한 데로 나아가는 것이다. 점은 때를 알아 변통할 줄 아는 '지시식변(知時識變)'인 셈이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점과는 해석이 다른 것 같다. 그렇지만 점은 결국 과학적 근거 를 댈 수가 없지 않은가?
"나는 점을 '문답(問答)'이라고 생각한다. 하늘에 묻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묻는 것이다. 우리 성품 안에도 천명(天命)이 있으니까. 결국 자신을 바르게 한 뒤 스스로에게 묻고 답을 얻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문답한다. 그렇다면 세상에 점치지 않는 사람은 없는 셈이다."
-그렇게 보면 인간에게는 주어진 운명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운명(運命)이 정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운명이란 예를 들어 운전을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자동차를 몰고 가지만 1차선으로 가느냐, 2차선으로 가느냐 하는 문제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다."
-이 회장이 공부해온 주역의 핵심 이치는 무엇인가?
"세상은 음양(陰陽)으로 이뤄져 있다. 음양이 서로 배타적이고 대립 관계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림자의 반대편에는 빛이 있고, 빛에는 그림자가 따른다. 다시 말해 음(陰)에는 양(陽)이 들어 있고, 양에는 음이 이미 들어 있다. 음양은 상호 의존적 관계라는 뜻이다. 해가 어디를 비추느냐에 따라 음은 양으로 변하고, 양은 다시 음으로 바뀐다. 그래서 주역에선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강조하고, 선악(善惡)을 구별하지 않는다."
-역학으로 문자 설명도 가능한가?
“한글 창제의 원리가 역학과 밀접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세종대왕이나 정인지 같은 분들은 한글 이전에 한자의 생성 원리에도 역학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고대 동아시아에서 탄생한 한자는 동이족, 화족, 강족, 묘족 같은 다양한 종족들에 의해 만들어져 중국 한(漢)나라 때 오늘날과 같은 문자로 체계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거꾸로 한자라는 문자에는 우리 민족을 포함한 다양한 민족의 생활과 사상이 담겨 있다는 뜻이다.
한자를 역학으로 설명하려면 문자학과 주역 두 가지에 모두 정통해야 가능할 것 같은데, 이는 쉬운 일 같지 않다.
“한자에 수많은 역학적 요소들이 있다는 것은 이미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억지스런 해석도 적지 않게 발생한다. 하지만 그런 장애에 계속 발목이 잡혀 있기보다는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놓고 전문가들의 냉정한 평가를 받고 싶었다.”
-알기 쉬운 예를 한 가지만 들어본다면?
“하늘 천(天) 자는 사람을 뜻하는 큰 대(大) 자에 머리 위를 뜻하는 한 일(一)을 그어 하늘을 표시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만으로는 이 글자가 지금과 같은 문자로 자리 잡는 과정을 다 말하지 못한다. 역학적 관점에서 이 글자는 하늘과 땅을 뜻하는 두 개의 가로 획(二)으로 하늘과 땅의 교합(工)을 표시하고 거기서 사람(人)이 생성되었다고 하는 사상이 아우르고 있다. 천(天)이란 글자 속에 천지 음양이 만물을 조물(造物)하는 이치까지 함께 담아 놓은 것이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2017년에 펴낸 저서 『세상을 담은 천자문 자해(字解)』는 일반인보다는 한문을 비롯해 동양 고전을 가르치는 선생님들과 어느 정도 역에 대한 이해를 갖춘 분들을 대상으로 썼다. 미진한 점에 대해서는 진지한 토론과 비판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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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연·혈연·혼연도 ‘주역’으로 똘똘 뭉친 이응문 회장
이응문 회장의 집안은 ‘주역 가문’이다. 조부는 주역학의 일가를 이룬 야산 이달이고, 그의 부모도 주역을 공부했다. 그가 두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떴다. 그는 모친과 함께 서울 인왕산 밑에 있는 암자에서 생활했다. 그는 법조인의 꿈을 갖고 경희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던 중 '과연 법이란 무엇인가? 내가 대체 뭘 배우고 있나?' 하는 근본적 물음에 직면했다고 한다. 대학을 중퇴하고 1985년 대산(大山)의 문하로 들어가 주역 공부의 길을 걸었다. 그의 아내도 대산 문하에서 주역을 공부했다.
차세대 대표 주역학자의 한 사람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 회장이 주역에 입문하는 과정도 예사롭지 않다. 재수까지 하면서 법대(경희대)에 들어갔는데 마음은 자꾸 다른 곳으로 흘렀다. 어느 날 친구의 소개로 흥사단 대학아카데미에 들어가 시국에 눈을 뜨고, 다시 구로동 야학 활동으로 이어졌다. 4년간의 야학 교사 시절은 그가 가르친 공부보다 몇 배나 많은 세상 공부를 하게 해주었다. 그래도 연원을 알 수 없는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결국 졸업을 앞둔 5월에 학교에 자퇴원을 내고 “참된 이치를 찾아서” 길을 나섰다.
이 회장에게 주역은 가학(家學: 집안 대대로 전해오는 학문)이다. 근대 주역의 대가로 홍 역학(洪易學) 창시자로 유명한 야산 이달이 그의 조부이다. 그가 한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 와 2016년 돌아가신 어머니는 야산 문하에서 함께 주역을 공부하다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그가 20대 때 주역을 배우기 위해 찾은 사람은 야산의 제자로서 생존하는 대표적인 주역학자의 한 사람인 대산 김석진옹이다. 야산의 거의 유일한 여제자였던 어머니는 홀몸이 되자 서울 홍제동 인왕산 아래에 ‘함장사(含章寺)’란 작은 암자를 짓고 불경(佛經)과 주역을 가르치는 것으로 생계를 삼았다. 그때 어머니에게 주역을 배우겠다고 찾아온 약사가 이 회장의 부인 오금지씨. 오씨는 몇 해 전부터 약국을 접고 남편과 함께 대구와 서울에서 주역을 가르치고 있다. 학연(學緣), 혈연(血緣), 혼연(婚緣)이 모두 주역으로 맺어져 있다.
이 회장은 대산의 주역 강의가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면서 홍역학회가 성립되던 1980년대 중반, 흥사단에서 마련한 강좌를 통해 강백(강사)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2008년부터 회장으로 있는 흥사단 본부 4층 동방문화진흥회 강의실은 적잖은 학자와 명사, 재야의 역학자들이 거쳐 가면서 주역 연구의 주요 문파(門派)를 이루고 있다.
약사 출신 주역의 대가 오금지씨는 이응문 회장의 부인
부창부수(夫唱婦隨), 아니면 운명일까? 2016년 7월22일부터 대구 남구 대명동 대연학당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해서 열리는 '주역으로 풀어보는 천자문' 강좌를 맡은 강사 덕천(德川) 오금지(吳金芝·58)씨. 그가 이에 해당하는 주인공이다. 대연학당은 주역의 산실이다. 여기서 주역을 강의한다는 것은 그 강사가 주역에 관한 한 대가(大家)임을 일컫는 말과 다름없다.
오씨는 약으로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는 약사이다. 그러나 그는 마음의 병을 고쳐주는 사람이 되고자 도전했고, 마침내 그런 성취의 첫 발을 내디뎠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천성적으로 '배움'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고 했다. 경희대 약대를 졸업하고 서울 한남동에서 약국을 경영했던 오씨가 주역에 입문한 것은 1985년. ‘주역을 공부하면 자연의 이치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마침 서울 홍제동에 있는 함장사에서 주역 강의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곳의 강사는 2016년 80세로 작고한 함장(含章) 김옥임(金玉任·)씨. 주역의 대가인 야산 이달의 며느리이자 6명의 여제자 중 수제자였다.
함장의 강의는 그의 생애 첫 강의이기도 했다. 여기에는 오씨를 비롯한 젊은 여성 2명과 남성 1명 등 3명이 첫 강의를 들었다. 이 가운데 남성은 강사인 함장의 아들 이응문 회장이었다. 그는 2015년 주역학의 본산인 동방문화진흥회 회장으로 이름을 올린 주역의 대가다. 오씨도 역시 첫 제자. 약국을 경영하면서 저녁에는 주역을 듣는 힘든 과정에도 불구하고 "배움의 기쁨에 힘든 줄 몰랐다"고 회상한다.
이렇게 3명으로 시작된 주역 강의 수강생은 나중에는 20명으로 늘어났다. 6개월 정도 강의를 듣고 주역의 첫 장인 상경(上經)을 모두 뗐다.강의 진도가 예상보다 빨리 나가자 함장은 "아무래도 나의 역량으로는 너희들을 가르치기가 벅차니 대산 선생을 모셔와야 하겠다"고 했으며, 대전에 있던 대산 김석진 옹을 서울로 모셨다. 대산 역시 야산의 수제자이자 함장과는 동문수학하던 사이였다. 오씨는 그때부터 3년간 대산으로부터 주역을 공부해 주역을 모두 뗐다.
약국도 함장사가 있는 홍제동으로 옮겼다.그 이후 오씨의 인생도 달라졌다. 같이 주역을 공부하던 야산의 손자인 이응문 회장과는 평생을 해로할 배필로 백년가약을 맺었다. 야산의 친손부(親孫婦)가 된 것이다. 야산의 제자가 오씨의 시어머니이고, 시어머니의 제자가 아들과 며느리였으니 주역의 적통(嫡統)이 대를 이어 전해졌다고도 할 수 있다.
결혼 전 대산은 "두 사람은 인연이니 꼭 결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오씨는 결혼 후 아이를 낳고 기르는 한편 남편 뒷바라지에 약국경영까지 하느라 주역 공부는 거의 손을 놓게 됐다. 물론 약국 경영 하는 틈틈이 혼자 주역을 공부하는 짬은 냈다.주역을 본격적으로 다시 접한 것은 남편 이 회장이 2002년 대구로 옮기고 나서도 한참이 흐른 2007년 12월. 대구로 와서도 약국을 계속 경영했던 오씨는 평생의 바람으로 생각해 왔던 주역공부에 매진하기 위해 드디어 약국을 그만두었다.
"이제 마음껏 주역을 공부할 수 있어 너무나 좋아요. 부러울 게 없습니다."
학문하는 즐거움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오씨는 2016년 2월 처음으로 일반인들을 상대로 '주역입문' 강의를 하는 것으로 생애 첫 강의에 나섰다. 얼마나 강의에 온 힘을 집중했으면 일주일 동안이나 몸살을 앓았을까.오씨가 강의한 '주역으로 풀어보는 천자문'은 오래전 남편인 이응문 회장이 사단법인 동방문화진흥회 회지인 '同人(동인)'에 시리즈로 기고했던 것. 천자문을 동양학에 쉽게 접근하도록 하기 위해서다.주역 강의에 나선 오씨의 각오는 남달랐다. "천자문에 내포돼 있는 우주의 원리와 인간사의 진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어려운 한자로 인해 선뜻 마음을 내지 못하는 분들이 동양학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했습니다."동서고금(東西古今)을 관통하는 활달한 강의내용은 물론 인성교육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그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헤아려 보는 '충서(忠恕)' 사상(논어에 나오는 문구)이야말로 요즘 들어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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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原典 강의하는 부부…대구 대연학당 이응문·오금지씨…也山·大山 맥 이어
'주역(周易)' 원전(原典)을 강의하는 국내 첫 부부가 탄생했다. 청고(靑皐) 이응문(李應文) 동방문화진흥회장과 덕천(德川) 오금지(吳金芝)씨 부부(사진)다.주역은 '동양학의 제왕'으로 불리는 학문으로, 내용이 난해해 원전(原典) 전체를 강의하는 이는 국내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이응문 회장은 15년 전부터 원전을 강의했다. 스승인 대산 김석진 선생의 강의를 물려받았다. 대구 대연학당에서 금요일, 서울 동방문화진흥회(흥사단 건물)에서 월·화요일, 김천에서 수요일마다 가르치고 있다.
부인 오금지씨는 원전 강의가 처음이다. 2015년 6월17일부터 서울 동방문화진흥회에서 수요일, 그리고 대구 대연학당에서 토요일에 강의하며, 총 2년 과정이다. "하나둘씩 강의를 맡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원전 강의는 남편이 권해서 결심하게 됐습니다." 동갑인 부부는 첫 인연 자체를 '주역'으로 맺었다.
이 회장의 조부는 '근대 주역의 종장(宗匠)'인 야산 이달이고, 재야 사학자 이이화씨가 숙부이다. 어머니인 함장 김옥임 여사는 야산의 제자이자 이 회장의 스승이다. 이 회장은 법대 3학년 때 동양학의 뿌리를 찾고 싶어 중퇴하고 '주역'에 입문했고, 약대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약국을 운영하던 오씨도 그즈음 '자연의 이치를 알고 싶어' 주역 공부에 들어갔다. 둘의 첫 스승은 나중에 오씨의 시어머니가 된 김옥임 여사다. 동문수학(同門受學) 학문적 동반자로 출발해 결혼과 함께 삶의 동반자가 된 것이다. 이후 둘 모두 대산에게 직접 배웠으니 야산·대산으로 이어진 '주역'의 적통 계승자이기도 하다.부부 모두 통강(通講·완벽하게 외우고 이해하며 스승의 질문에 막힘이 없음) 과정까지 통과했다. 국내에서 통강 절차를 마친 이는 30여명에 불과하다. 둘은 대구 대명동에 대연학당을 설립해 '주역'의 산실로 키워왔고, 부인 오씨는 '주역'에 매진하기 위해 2007년 약국 문도 닫았다.
"나는 청고 선생의 '아바타'예요. 남편이 '심화반'이라면 저는 '중급반' 정도로 보면 되겠죠. 여성적 섬세함을 잘 살려서 강의하고 싶어요."
이런 오씨의 말에 이응문 회장은 "덕천의 강의는 처음 듣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자상하면서도 핵심을 잘 짚어준다"고 했다.
<문윤홍·시사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