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안도현 시인과 국민참여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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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3.11.14 19:24
안도현 시인과 국민참여재판
지난달 28일 전주지법의 배심원 7명은 안도현 시인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전원 일치의 무죄 평결을 했으나 법관은 자신의 판단과 다르다고 하면서 일방적으로 지난 7일로 선고를 연기하고는 끝내 일부 공소사실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이를 계기로 국민참여재판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배심재판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배심재판의 역사적 시초는 고대 아테네이다. 개혁가 솔론은 기원전 594년 아테네의 모든 시민(공적 채무가 없는 30살 이상의 남자)에게 판결에서 투표할 권리, 곧 배심원 자격을 처음으로 부여했다. 아테네의 10개 부족은 600명씩 추천한 6000명의 배심원단 가운데 무작위 추첨으로 뽑힌 200~500명의 배심원에게 재판권을 주었다. 배심재판이 도입된 이후 아테네 귀족과 장군 상당수는 민중들이 던진 ‘투표용 조약돌’에 ‘맞아서’ 목숨을 잃거나 추방됐다. 마라톤 전투의 장군 밀티아데스도, 살라미스 해전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도 배심재판을 피할 수 없었다. 솔론의 사법 개혁 이전에 아테네에서도 재판권은 테스모테타이라는 직업 관료의 전유물이었다. 아테네는 왜 재판권을 전문 관료가 아닌 법률에 무지몽매한(?) 시민들에게 넘겨주게 되었을까?
솔론 이전에 아테네는 가난한 자들의 부채(빚)가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였다. 부채 때문에 자식과 아내가 외국으로 팔려 가는 상황에서 민중들은 전문 관료에 의한 판결에 대해 강한 불신을 보이며 토지 재분배 등의 급진적 요구를 하게 된다. 이에 대한 타협책으로 솔론은 테스모테타이의 판결에 불복해 상소할 권리와 상소심 재판의 판결권을 민중에게 부여했던 것이다. 물론 귀족 지배층이 이를 가만히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귀족들은 기원전 411년(400인 과두정)과 404년(30인 참주정) 두 번의 쿠데타에 성공함과 동시에 곧바로 배심재판을 폐지했다.(30인 참주정 당시 재판도 없이 1500여명을 처형) 그러나 아테네 민중들은 그때마다 쿠데타를 즉각 물리치고 아테네의 배심재판과 민주주의를 회복시켰다.
근대 배심재판의 효시라고 하는 영국의 배심재판도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1670년 12명의 배심원은 집회 선동의 혐의로 기소된 퀘이커교도 윌리엄 펜 등에 대한 유죄 평결을 거부하고 무죄를 주장했다. 이에 재판관은 배심원을 모두 감금하고 음식과 음료수 등을 지급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래도 배심원들이 무죄 평결을 철회하지 않자 재판관은 배심원들에게 벌금을 납부해야만 석방되는 징역형을 부과했다. 그러나 4명의 배심원은 벌금 납부를 끝까지 거부하고 항소심 법원에 인신보호영장을 신청했다. 결국 법원은 배심원 4명에 대한 석방을 명했다. 이로써 영국의 배심재판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확고한 시민의 권리로 자리를 잡았다. 미국에서도 배심원들은 도주노예법(남북전쟁 이전에 도망간 노예를 체포해 노예주한테 반환하는 법)의 적용을 거부해 ‘반역죄’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 무죄 평결을 했다. 또 금주법이 시행되던 시기에 술을 판매한 피고인이 실정법을 위반했는데도 유죄 평결을 거부했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배심재판을 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배심재판을 받을 권리는 정부권력의 억압으로부터 피고인을 보호하기 위해 인정되는 것이다. 비슷한 수준의 ‘이웃사람들’(peers)로 구성된 배심에 의해 재판을 받는 것은 부패하거나 욕심이 넘치는 ‘검사’로부터, 정부권력에 순응하거나 편견을 가지고 있거나 괴팍한 ‘판사’로부터 피고인을 방어해주는 소중한 보호장치인 것이다.”(덩컨 대 루이지애나 사건)
배심재판이 최선의 재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시민 가운데 무작위로 선출된 9명의 판단은 1명의 직업적 법관에 의한 판결보다 ‘상식’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배심원의 ‘전원 의견 일치’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무시하는 것은 국민주권 이념과 민주적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매우 위험하다. 배심원 선정 절차에 대한 개선책은 별론으로 하고 적법하게 선정된 배심원의 전원 일치 의견 자체를 지역감정으로 치부하는 것은 또다른 지역감정 선동에 불과하다. 시급히 배심원 평결에 기속력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국민참여재판법이 개정돼야 한다. 그것이 바로 배심재판을 도입하고 유지하는 데 헌신한 고대 아테네와 영국, 미국의 양심적 배심원들에게 우리가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길이다.
변영철 변호사